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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재 탈당과 명분
<기자수첩> 바른정당 패닉 사태, 정치인의 뚝심을 보고 싶다
2017년 05월 01일 (월)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바른정당 탈당 기자회견하는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 ⓒ뉴시스

“정치는 명분입니다, 형님. 명분이 있으면 돈도 사람도 따라오고, 명분을 잃으면 정치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동교동계 제일의 전략가이자 정치판의 마당발, 후농으로 더 유명한 김상현 전 국회의원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했던 이야기다. 최근 바른정당의 혼란을 보며 이 고언이 떠올랐다.

바른정당은 패닉상태다.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사퇴를 전제한 단일화 요구로 당내서 유 후보를 압박하고 있다.

유 후보가 28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저를 도울 생각이 없다면 최소한 흔들기는 안했으면 좋겠다”며 “자기당 후보를 가지고 어디에 팔아넘기고 이런 것은 옳지 않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지난 21일엔 바른정당 내 20여 명의 의원들이 3자 후보 단일화 요구와 관련된 입장문을 냈다. 이 중에서 이은재 의원(서울강남구병)은 가장 먼저 탈당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며 한국당으로 돌아갔다.

현 시점에서 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바른정당이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한국의 보수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친박청산이 채 끝나지도 않은 자유한국당이 또다시 보수를 대표하고 있다. 바른정당 의원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고 또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바른정당 의원들의 유승민 사퇴론이다.

우선 바른정당의 탄생을 살펴보자. 현 자유한국당의 친박계 세력,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보수층의 분노를 대변하며 탈당한 것이 현 바른정당이다. 정치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당적을 바꾼 적 없는 홍문표 의원이 움직였을 만큼, 바른정당은 나름의 확고한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따뜻한 집’ 새누리를 박차고 나온 집단이다. 그런데 ‘좌파 집권’을 막겠다면서 다시 자유한국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자는 주장이야말로 진정성을 의심받고, 창당의 의도와 스스로의 행동을 전부 훼손하는 행위다.

다음으론 정당 민주주의의 문제다. 애초에 유 후보를 경선에서 뽑지 않았으면 모른다. 당내의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자당의 후보로 선출해 놓고, 지지율을 이유로 사실상의 사퇴요구를 하는 것은 기회주의, 반(反) 민주적인 행태로 비치기 쉽다. 긴급 의원총회라는 최소한의 절차로 그래도 체면은 챙겼다.

선거비용과 같은 실리적 이유가 문제였다면, 애초에 미리 당내 의견 조율을 거쳤어야 한다. 일각에선 유 후보의 선출로 바른정당이 여전히 ‘TK 패권론’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고전중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를 후보로 만든 것 역시 바른정당이다. 그 책임조차 지기 싫다면 공당으로서의 격은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스타정당’인 바른정당 의원들은 벌써부터 2018년 지방선거나, 멀리는 다음 총선이 걱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명분을 내세운 그간의 모든 정치행위가, 사실은 오직 권력을 잡기 위한 일종의 ‘쇼’였음을 고백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했다. 유승민 후보의 완주 중단이 이뤄진다면, 오직 이 역시도 정당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유 후보와의 합의하에 이뤄져야 한다. 심지어 고전 와중에도 나름의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유 후보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먼저 아닐까.

유 의원이 완주를 하고 안하고의 여부에서 어느 쪽이 옳은지 기자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자유한국당과 바른 정당 중 어느 쪽이 정의인가도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현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이 보여주는 정치행태는 볼썽사나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고 비판했던 정당조차 궁색한 변명을 만들어 다시 들어가려는 모습이, 권력을 쫓으려는 기회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국민들이 바른정당을 향해 ‘배신’이 아니라 ‘선 긋기’나‘용기 있는 모험’으로 더 많은 박수를 보냈던 것은 그 나름의 명분이 합당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심지어 불의가 아닌 낡은 이념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좌파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는 무리한 명분으로 거짓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 사람, 이 의원은 이미 돌이키기 힘든 그러한 길로 가 버리고 만 것 같다. 명분을 잃은 정치인은 더 생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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