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 “개헌 문제, 있는 헌법 잘 지킬 생각부터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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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 “개헌 문제, 있는 헌법 잘 지킬 생각부터 해야”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05.16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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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03)>박찬종 법무법인 유담 대표변호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5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금은 법무법인 유담의 대표변호사이자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찬종 변호사의 강연은 유쾌한 ‘셀프 디스’로 시작됐다 ⓒ 시사오늘

“내가 그때 대통령이 됐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때 나는 대통령이 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지금에서야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국가가 잘 돌아갈지 좀 알겠는데, 이제는 누가 나한테 대통령 하라고 하겠나.”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5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금은 법무법인 유담의 대표변호사이자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찬종 변호사의 강연은 유쾌한 ‘셀프 디스’로 시작됐다. 제14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제3자의 눈으로 정치권을 바라보며 듣고 깨친 지금에서야 ‘바른 길’을 알게 됐지만, 대통령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박 변호사가 깨달은 정치의 본질은 후배들의 ‘길잡이’가 된다. 〈시사오늘〉은 지난 2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을 찾아 ‘한국정치의 개혁방향’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박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헌법 위반한 대통령 옹호, 보수가 할 일 아니다”

박 변호사는 한국 정치의 기본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는 ‘보수·진보’ 이념부터 테이블 위로 끌어냈다. 그는 보수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대한민국의 보수·진보 정의는 잘못된 이분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부터 보자. 이 단어들이 남용·오용되고 있다.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헌법에 규정된 정신과 체제를 지키자는 이념이 보수다. 즉, 보호할 가치가 있는 체제를 지키자는 것이 보수의 정신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 권한 행사가 이만하면 잘 되고 있다, 정당이 이만하면 헌법에 규정된 취지에 맞게 제대로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헌법 제46조에 규정된 대로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고 있다, 삼권분립이 톱니바퀴처럼 잘 되고 있다’라고 하면 지킬 가치가 있으니까 이것을 유지하려는 이념이 보수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에 지킬 가치가 있나.”

그러면서 그는 헌법·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보수라고 할 수 없다며, 언론의 잘못된 구분이 보수를 ‘부정적 집단’으로 인식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 그는 헌법·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보수라고 할 수 없다며, 언론의 잘못된 구분이 보수를 ‘부정적 집단’으로 인식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 시사오늘

“보수가 없는데 진보가 어디 있나. 정치학자들은 보수의 가치를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경제, 국가안보라고 한다. 진보는 여기에 공정과 공평이 보태진다고 한다. 이런 논리라면, 보수는 공정과 공평을 무시해도 되나. 정의 자체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언론들이 ‘보수단체가 대한문 광장에서 집회를 했다’고 보도했다. 대단히 기분 나쁜 일이다. 대한문 광장에서 집회를 한 게 보수 단체인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을 옹호하는 게 보수란 말인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은 그들을 보수라고 칭한다. 그러니까 보수가 낡고 병들고 부패한 것으로 치부된다. 대단히 잘못된 이분법이다.”

“지역주의와 정당 부패, 한국 정치 좀먹어”

용어부터 정리한 박 변호사는 곧이어 한국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를 소개했다. 특히 그는 지역주의와 정당의 부패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우선 지역주의가 문제다. 경상도·전라도 지역주의 갈등은 과거 군사정부가 정권의 유지·연장·확보를 위해 악용한 것이다. 기성 정치인들은 이것을 이어받아 적과 동지를 가리지 않고 교묘하게 지역주의를 이용해왔다. 지역주의 위에는 진보·보수 논쟁이 덧씌워졌다. 지역주의 논쟁 역시 한국 정치가 앞서 언급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정당의 부패도 빼놓을 수 없다. 각 당의 후보 선출 과정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게 탄생하고 있다. 정당이 계파투쟁 조직으로 변질됐다. 중앙집권적 관료조직화된 것이 오늘날 유력 정당들의 실체다. 몇몇 사람들이 당론을 만들고, 국회의원들은 정당의 부속품으로 격하시켰다. 지금 국회의원들은 필요할 때 국회에 가서 싸우는 역할만 하고 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 역시 국회의원이 정당의 부속품이라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국회선진화법도 살펴보자. 국회의원이 헌법 제46조에 규정된 대로 각각의 자율권을 행사한다면, 당 소속 국회의원이 거대 정강 정책을 참고만 하고 결정은 민심에 따른다면 국회선진화법은 애당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국회선진화법도 국회의원이 정당의 부속품이라는 전제 하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개개인의 자율권이 보장되면 국회선진화법이 왜 필요하겠나.”

“현행 헌법 지킬 방안부터 마련해야”

박 변호사는 개헌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개헌론이 들끓는 정치권과 달리, 그는 현행 헌법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개헌론이 들끓는 정치권과 달리, 박 변호사는 현행 헌법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시사오늘

“요즘 보면 ‘개헌을 통해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상한 이야기다. 지금의 혼란은 대통령이 헌법대로 안 해서 일어난 것이다. 왜 개헌을 하나. 개헌을 하려면 차라리 ‘헌법 제46조를 침해한 자는 징역에 처한다’처럼 처벌 조항을 넣는 개헌을 해야 한다. 현행 헌법을 두고도 얼마든지 대연정을 할 수 있고, 삼권분립을 할 수 있다. 헌법을 안 지키는 것이 문제인데, 왜 자꾸 기본법에 손을 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헌법을 지키기 위한 법률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경제개혁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119조를 보자. 제1항에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돼있고, 제2항에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있다. 그냥 이대로 하면 된다.
헌법은 자유·창의·시장경제 원리를 천명하면서도, 시장경제 원리만 갖고 자유를 무제한으로 허용하면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엇박자가 일어나니까, 산더미처럼 커지는 사람도 있고 짓밟히는 사람도 생기니까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는 2항을 만들어서 필요한 규제와 조정을 하게 했다. 헌법만 지켜도 경제개혁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노력이야말로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임원과 직원의 격차 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헌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헌법 정신을 어떻게 지킬지에 대한 구체적 수행 로드맵이 없는 것이 문제다. 헌법 제119조가 지켜지도록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밤새 토론해본 적이 있나. 그런 기록은 하나도 없다. 국회가 노력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법률은 다 국회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 마음이 다 콩밭에 가 있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니까 일이 안 되고 국민만 곯는다. 개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헌법 정신을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노력하는 것이 먼저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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