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지만 진 한국당, 졌지만 이긴 바른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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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지만 진 한국당, 졌지만 이긴 바른정당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05.19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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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비박 갈등 재현된 한국당, 하나로 뭉친 바른정당…‘실버크로스’ 가능성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예상 밖으로 선전한 한국당은 당권을 둘러싼 내홍과 지지율 하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반면, 득표율 한 자릿수에 그친 바른정당은 빠르게 제 자리를 찾으면서 보수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른정당 탈당 사태’가 보수진영의 운명을 바꿔놓는 ‘역사적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 지난 대선에서 예상 밖으로 선전한 한국당은 당권을 둘러싼 내홍과 지지율 하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 뉴시스

내홍 빠진 한국당, 지지율도 하락세

한국당은 당권을 둘러싸고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시작했다. 방아쇠는 ‘대선 후보’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당겼다. 홍 전 지사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한국의 보수주의는 신보수주의로 나가야 한다”며 “귀국하면 신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국민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사실상 당권 도전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16일에는 “대선 때 치솟았던 지지율이 이렇게 폭락한 것은 대선 패배도 원인이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당 쇄신이 되지 않아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자유한국당을 새로운 신보수주의 정당이 아닌 실패한 구보수주의 정권세력들의 연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날인 17일에는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간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자들”이라며 친박(親朴)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여전히 한국당의 주류(主流) 세력인 친박에게 선전포고(宣戰布告)를 한 셈이다.

이러자 친박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여태껏 낙선한 대통령 후보들은 대개 자중하거나 정계 은퇴를 했다는 점을 인식하라”며 홍 전 지사를 비판했다. 홍문종 의원은 홍 전 지사의 ‘바퀴벌레 발언’에 대해 “낮술을 드셨냐”며 “홍 전 지사가 상황이냐. 자기가 뭐라고 얘기하면 그게 법이고 지침이냐”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당권을 놓고 홍 전 지사를 위시한 비박과 ‘당권 사수’를 목표로 하는 친박이 정면충돌한 모양새다. 

▲ 득표율 한 자릿수에 그친 바른정당은 빠르게 제 자리를 찾으면서 보수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뉴시스

화기애애한 바른정당, 실버크로스 노린다

반대로 대선에서 6.8%를 얻는 데 그친 바른정당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비박을 중심으로 구성된 정당인만큼 상대적으로 계파 갈등에서 자유로운 데다, 12명이 탈당하면서 ‘합리적 보수’라는 색채가 더욱 강화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탈당사태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상승하며 ‘보수 세력 교체’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다.

‘포스트 대선’ 준비도 차곡차곡 이뤄지고 있다. 바른정당은 지난 15~16일 열린 연찬회에서 6월 안으로 당헌·당규에 따라 새 지도부를 뽑기로 했다. 또한 바른정당의 ‘투톱’으로 꼽히는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은 차기 전당대회에 나서지 않고 ‘백의종군(白衣從軍)’ 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뒤로 한 발 물러난 상태다. 김 의원과 유 의원의 ‘2선 후퇴’ 아래, 새 인물들이 당권 도전에 나서면서 분위기를 일신(一新)하는 모습이다.

자연히 지지율도 상승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수행해 15일 발표한 조사에서, 바른정당은 대선 이전보다 0.9%포인트 상승한 8.3%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더불어민주당(44.7%)과 한국당(13.0%), 정의당(9.6%), 국민의당(8.8%)에 이은 5위지만, 2위 한국당에 오차범위 내로 따라붙으며 ‘실버크로스’까지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기자들 사이에서는 “30석짜리 바른정당보다 20석짜리 바른정당이 훨씬 강해 보인다”는 말이 돈다. 

▲ 이처럼 대조적인 양당의 분위기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탈당사태가 상황을 뒤집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뉴시스

패배로 뭉친 바른정당, 승자의 역설 빠진 한국당

이처럼 대조적인 양당의 분위기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탈당사태가 상황을 뒤집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명의 탈당이 적잖은 아픔이기는 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이 사건이 바른정당에게 이득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창당 직후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을 위협하기도 했던 바른정당 지지율은 날개 꺾인 새처럼 추락했다. ‘개혁 보수’ 깃발을 내걸었지만, 선거연령 하향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의 개혁 법안에 반대하면서 국민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두언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른정당이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뭐가 다른가. 선거연령 인하를 반대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도 반대하고. 그러니까 지지율이 5%도 안 되는 것”이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12명 탈당 이후 바른정당은 ‘개혁 보수’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유승민 의원이 강조했던 ‘합리적 보수’ 기조 아래, 문재인 정부에게 ‘견제할 것은 견제하되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비박을 교집합으로 함께 했으나 철학이 달랐던 의원들이 탈당한 후, 바른정당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정치인들로 뭉친 ‘진짜 정당’이 됐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반대로 한국당은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승자의 저주란,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큰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하는 경영학 용어다. 한국당은 바른정당을 누르고 ‘보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대선 과정에서 비박과 친박을 모두 흡수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비박 대 친박’이라는, 국민이 한국당을 외면하게 만들었던 내홍이 재현되는 조짐이다.

이러다 보니 지방선거를 계기로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20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이길 수 없는 대선에서 홍 전 지사가 욕심을 부려 바른정당 탈당파와 친박 핵심들을 다 받아들이다 보니, 당이 (인명진) 비대위 이전으로 돌아갔다”며 “친박 비박 싸우다가 총선 때 참패한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 당 돌아가는 꼴이 딱 그 때 모습”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가면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다. 정권 초기 선거는 여당이 무조건 유리한데, 친박 비박 갈라져서 싸우면 텃밭도 장담할 수 없다”며 “바른정당이 작은 정당 같아 보이지만, 의원 개개인은 전부 스타급이다. 저 사람들이 뭉쳐서 뛰면 지방선거에서는 바른정당에게도 밀릴 수 있다. 얼른 정신 차리고 뭉쳐야 한다”고 충고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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