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y G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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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My Gat
  • 유재호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6.0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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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은 항상 즐거운 법이다. 어렸을 적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도중, 한 친구의 얘기 중에 아직도 머릿속을 맴도는 부분이 있다. 그는 현재 유명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였는데, 그 날은 거의 강연수준으로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그 친구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친구와 서로의 약점을 잡고 헐뜯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와 친구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옛날을 그리워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던 와중에 라이벌 친구가 말했다.

"솔직히 난 옛날부터 얘가 나한테 하도 '공부 좀해라. 이 무식아.' 라고 해대서 얘가 공부최소한 반에서 20등은 하는지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깐, 내가 42등이고 얘가 38등이었어."
"하하하하하"
아이들의 폭소가 쏟아졌고, 그 친구는 발끈하며 말했다.

"야, 솔직히 너는 그래도 항상 내 밑이었어. 너 유학도 엉아가 가니깐 멋있어서 따라 갔자나."
라이벌이 말했다.
"그래 내가 인정한다. 너를 보고 희망을 얻었지. '쟤도 유학 갔는데 나라고 못 가겠냐'하고 말이다."
아이들은 웃었고, 내가 라이벌 친구를 거들었다.

"그거 기억나? 얘 선생님이 하도 'Oh my God'하고 다녀서, 하루는 아예 칠판에다가 한번 써보라고 시켰어. 근데 얘가 나오더니 'Oh my Gat' 라고 쓴 거야. 그 사건 이후로 애들이 '오마이갯 오마이갯' 하고 다녔자나. 하하하."

역시나 폭소가 터졌고, 그 친구가 또 발끈했다.
"야야, 'Oh my Gat' 가 아니고, 'Oh my Got'이거든?
그러면서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건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치욕인데 어떻게 잊겠냐? 사실 그때 이후로 충격 많이 받고 오기가 생겼어.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격지 않아야겠다고 말이야. 동시에 생각했지. '난 참 영어를 못하는 구나.'라고 말이야."

나도 격분해서 말했다.
"그게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라니까. 미국 학생들도 틀릴 수 있는 Spelling 하나 때문에 반 전체 학생들한테 망신당하는 게 말이나 되냐? 너희들도 알자나. 미국 애들이 Spelling 더 많이 틀리는 거."

"그러게 말이다. 그렇게 유학을 가서도 처음에는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했지. 자신감이 한번 없기 시작하니까, 회복하는데 힘들더군.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계기는 미술 시간이었어. 선생님이 와서 내 그림을 보더니 감탄하면서 말하는 거야 '너 참 그림에 소질 있구나. 계속 그림 그려보지 않을래?' 하고 말이야. 솔직히 놀랐어. 그 때까지는 누군가가 나한테 내 능력에 대해서 그렇게 극찬을 한 적이 없었거든. 그 때 이후로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어. 한국에서도 몰랐던 내 재능을 여기서 발견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 그지없었어.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에 매진 할 수가 있었지."

"와! 그런 놀라운 얘기가 숨어 있었구나. 솔직히 처음에 네가 디자인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거든. 예전에 공부 안하던 모습만 생각났고 또 네가 미술 쪽에 소질 있는지는 더욱더 몰랐고. 얘들아 안 그래?"
내 말에 친구들이 동의했고 그 친구가 이어 말했다.

"사실 내가 그날 그 선생님한테 인정을 받고 칭찬받지 못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지 또 몰라. 그 날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는 Turning Point였고, 그 이후론 정말 즐겁게 공부를 했어."
이 친구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날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칭찬이라는 것이 꼭 어린 학생한테만 국한 된 것은 아니구나. 그 친구가 칭찬에 인색한 한국에서 계속 교육을 받았더라면, 지금처럼 성공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친구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조차 몰랐을지도 모른다. 30등의 '미지근한' 학생이란 꼬리표를 달고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재능을 모른 채, 수능을 치루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대학에 진학해서 본인의 재능과 상관없는 전공을 택해, 흥미 없게 공부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한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바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칭찬 덕분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관심이 학생을 평범한 직장인에서 성공한 디자이너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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