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YS는 광화문서 분신자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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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YS는 광화문서 분신자살할 것”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9.06.11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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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미국을 협박한 최형우

87년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기 몇 달 전 미 정보부와 최형우는 잦은 접촉을 가졌다.
 
야당 대표 자격으로 나선 최형우는 거침없이 미국을 비판하며, 한국 민주화에 미국이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86년 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날이 갈수록 시국이 급박하게 진전되면서 미국 정보부는 YS와 DJ측의 핵심 인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87년 연초부터 마포 가든 호텔에서 민추협 의장이었던 김상현씨와 통일민주당 부총재였던 최형우씨를 만나 시국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국 정보부는 수많은 야당 인사들과 접촉했다.

미 정보부는 그 중에서도 특히 최형우와 많은 접촉을 했다. 최형우는 당시 민주산악회를 이끌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미 정보부의 판단에 따라, 이들 간의 만남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직선제 개헌투쟁에 나서고 있는 김영삼과 최형우가 전경과 대치중에 있다 ⓒ사진제공=김영삼

“YS와 나는 미국 대사관이 잘 보이는
광화문 네거리로 나가 분신자살 할 거요.”


87년 5월 마포의 한 음식점.

미 정보부에서 일하는 제럴드 리와 최형우가 만났다.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최형우는 거침없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전두환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현행 헌법대로 선거를 치러 노태우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준다 해도 그것은 전두환의 장기집권이나 같은 것입니다.”

제럴드 리가 “그렇다고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고 나오자, 최형우는 “그렇게 되면 80년 광주에서 일어난 것보다 수십배, 수백배가 넘는 대규모 시위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현 정권뿐 아니라 미국도 비난하게 될 것”이라며 협박했다.

“YS와 나는 평생 동안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살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하면서 5공과 맞섰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YS에 갖은 회유를 하며 외국에 내보내려 했지만 다 소용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주저하지 않겠다니….”

제럴드 리가 되물었다.

“YS와 나는 미국 대사관이 잘 보이는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 국민과 함께 5공 독재정권과 미국을 규탄하면서 분신자살을 할 거요. 이 땅에 민주화가 회복될 수 있다면 YS나 나나 두려울 게 없습니다.”

최형우는 제럴드 리의 물음에 직설적으로 답했다.
 
“전두환과 짜고 혹 야당을 때려잡으려는 것 아니요.”
 
이후 87년 6월 8일 저녁 9시경.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뒤편에 있는 ‘예촌’이라는 조그마한 카페.

제럴드 리는 미 정보부원 4명과 함께 또다시 최형우를 만났다.

최형우는 약속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미 정보부원들 앞으로 다가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신들 왜 자꾸 나를 만나려고 합니까, 도대체 나한테 알아내려는 것이 무엇이요.”

최형우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미 정보부원들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지난번 당신과 대화를 하면서 한국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최형우는 감정을 자제하지 않았다.

“아니, 당신들이라면 한국 정보기관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는 양반들이, 날 만나서 뭘 알아내겠다는 거요. 혹 전두환과 짜고 야당을 때려잡으려는 것 아니요.”

“아 왜 그렇게 나쁜 쪽으로 보십니까.”

“나쁜 사람들이니까, 나쁘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12?12와 광주사태 때 어땠습니까, 당신들은 그때 전두환을 지지하지 않았습니까.”

최형우는 미 정보부를 향해 막말을 했다.

최형우는 이어 “미국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재정권이 떠오른다는 것을 알고나 있냐”며 미 정보부를 계속 압박했다

최형우가 흥분하자, 그를 진정시킬 요령으로 미 정보부원들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에게도 한계라는 게 있습니다.”

최형우는 그러나 계속해서 미 정보부원들을 향해 협박성의 말들을 토해냈다.
“내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미국이 할 일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직선제로 개헌을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요. 이는 우리 국민의 요구이자, 나와 YS의 생각이기도 한 것이요.”

그렇게 거침없이 막말을 하던 최형우가 갑자기 뒤로 벌렁 나가 자빠졌다. 너무나 흥분해 잠시 기절을 한 것.

그가 심하게 넘어지자 조그만 카페는 난리가 났다.

만약 미 정보부원들이 야당의 지도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면, 이것은 보통일이 될 수 없었던 것.

미 정보부원들은 최형우를 눕히고 얼음과 찬물이 든 물통을 가져와 수건을 적셔 그의 얼굴을 닦아내는 등 법석을 떨었다.

정신을 차린 최형우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 분명히 말하지만, 만약 전두환 정권이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나는 죽음도 불사할 것이요.”

물론 최형우의 미 정보부를 향한 이런 협박들이 당시 국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대화는 이처럼 거침이 없었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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