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어떻게 박정희의 후계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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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어떻게 박정희의 후계자인가˝
  •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
  • 승인 2017.07.16 13: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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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구의 가짜보수비판(14)>조갑제를 비판한다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

2부

이 장대한 비판을 시작한 이유

2013년 7월, 한 언론계 인사가 내게 책 한권을 읽어보라며 전해줬다. 조갑제가 쓴 <한반도의 모든 권력에 도전해온 반골기자 조갑제>라는 책이다. 실력 있기로 소문난 언론계의 중진 중 중진이었던 그였기에 흥미를 가졌다. 그의 책 겉장 뒷면에 적힌 '양심과 사실을 생명처럼 안다'는 명언에 매료되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드는 생각은, '이런 주장을 하는 언론계의 중진도 있구나'하는 한탄이었다. 그의 주장은 두서도 안 맞고 독선과 억지로 채워져 있었다. 너무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그 주장들을 꼼꼼히 읽고 나는 비판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의 책 뒷면에 있는 또 하나의 명언에 따라서다. 그는 '반박되지 않은 거짓말은 사실로 통한다'고 썼다. 그래서 나는 반박키로 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또 언론과는 아무런 연결 고리도 없는 사람이다. 다만 민주주의가 좋았고, 반독재 민주화를 해야한다고 거의 평생을 야당대열의 최전선에 서서 온갖 핍박을 받았던 사람이다. 경찰의 최루탄과 곤봉 그리고 연행 연금 투옥 을 겪고, 유진산(柳珍山)·김영삼(金泳三) 두 분을 존경하고 따르다가 삼당 합당으로 잠시 여당생활을 해본 것이 전부인 말단 정치인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손꼽힌다는 언론인이라는 조갑제의 글이, 그것도 책으로까지 출판된 내용이 사실과 다른게 너무 많음을 깨달았다. 혹시 그가 스스로의 최면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면서, 오직 내가 겪은 일들, 그리고 사실로 확인한 것들만을 토대로 그 책의 내용에 대해 몇 가지 지적을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 번째 착각, 박정희와 김영삼

조갑제는 다음과 같이 민주화에 대해 말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때는 김영삼·김대중씨가 잘 싸웠고, 언론은 반보쯤 뒤에서 이들이 펼치는 싸움을 확대해 갔는데, 야당과 언론의 그러한 공조가 민주화를 가져왔다". 이렇듯 조갑제는 과거 5·16의 박정희와 전두환 등 군사독재정권을 ‘권위주의정권’ 이라고 규정하고, 그 권위주의정권을 타도하는데 앞장선 정치인들을 잘 싸웠다고 칭찬하면서, 언론이 그들을 잘 뒷받침하고 공조하여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러면서 1974년 언론자유운동과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때는 반 박정희 노선에 참여 했다고 도 자랑한다.

그런데 동시에 조갑제는 5·16을 긍정적으로 보고, 한일국교 정상화도 나쁘게 보지 않았다고 모순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자신이 친 박정희가 됐다며 고백을 시작한다.

조갑제는 갑자기 '하루 세끼를 먹게해 준 박정희의 리더십이 좋아서 친 박정희가 됐다'면서 친 박정희로 돌아선다. 유신이 선포됐던 1970년대의 박정희는 너무 강했기 때문에 젊은 우리들은 심정적으로 그를 거부할수 밖에 없었고, 특히 자신은 언론사에서 해직까지 됐으니 그를 좋아 할수가 없어 아주 강하게 저항 할수밖에 없었다고 당시에 자신이 반 박정희가 된 이유를 말하고 있다.

80년대 중반 3공화국 비화를 추적 하면서 박정희는 일본의 일유교육, 미국의 장교  교육을 받은 실용적인 리더라는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리더십으로서는 박정희만 한 인물이 없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박정희의 대변자가 됐다고 말했다. 요약하자면, 박정희는 강권독재자여서 반대를 했는데, 죽고나서 보니까 이유가 있었더라. 그래서 좋아하게 됐다는 말이다.

본인의 호불호야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근거다. 타당한 근거가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조갑제가 말하길, 우리 국민들이 하루 두끼밖에 못 먹었는데, 박정희가 쿠테타를 이르켜 한끼를 더 먹게 해줬다, 국민의 허기를 채워 줬다, 경제를 일으켰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배가 부르니까 민주화도 된 것'이라면서, 잔소리 말고 박정희를 고맙게 알고 떠 받들어야 한다고 소리친다.

백번 양보해서 국민의 허기를 채워 주기 위해서,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다고 치자. 그래서 박정희는 총·칼로 국민을 위협하고, 비상조치·긴급조치·위수령·계엄령·유신 등을 통치수단으로 하여 국민들을 괴롭혔는가. 무지한 국민을 깨우치기 위해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동원하고, 사회안정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 이 모두가 불가피하게 취한 박정희의 애국적인 정당한 행위였다고, 공로라고 치켜 세운다. 

정말 그런가. 조갑제는 역사 공부는 하지 않는 모양이다.

심지어 조갑제는 김영삼이 박정희의 계승자나, 후계자인 것 처럼 말했다. 이와 관련, 원래 '친 YS'던 조갑제가 문민정부가 열린 뒤 '반(反) YS'가 된 과정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2년 대통령 선거때 조갑제는 김영삼을 밀었다. 그의 땅굴과 이선실 간첩 사건 보도는 김영삼 후보에게 유리한 기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뒤 조갑제는 조갑제는 김영삼이 박정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서 김영삼을 비판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박정희와 김영삼의 화해"(월간조선 93년 11월호)란 제목의 기사를 써가며 문민정부를 공격한다. 이 기사에 대한 반발은 안팎에서 밀려왔지만 대신 조갑제는 '친 박정희''반 북한'세력을 월간조선의 주 독자 층으로 끌어들였다.

일단 여기까지만 봐도 그는 김영삼과 박정희에 대하여 그들의 인간성, 그들의 정치 철학과 신념, 그리고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박정희를 띄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소설을 쓴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쓰면서 진실인양, 사실인양 오리발을 내미는 그의 독선과 오기가 너무도 천연덕 스러워 내가 아는 사실을 적어본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은 했지만, 박정희의 5·16 군사쿠테타로 시작하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져온 32년간의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군사독재 정권’을 종식하고, 그들과 전혀 다른 정통 민주주의의 본질을 회복한 민주국가를 건설 하는것이 목표였고 꿈이었다. 총칼과 부당한 금권(金權)을 앞세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작정치로 정권유지에만 급급한 그들의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수단방법에 대항하기 위해선, 정상적인 민주적 절차와 수단으로는 그들을 물리칠 방법이 없었다.

김영삼은 목숨도, 가족도,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린다는 각오로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호랑이 굴에 들어가 맨손과 빈손으로 호랑이를 잡은'것이다. 본래가 의회주의자 였고 민주주의 철학이 확고한 김영삼에게 처음부터 박정희는 타도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삼당합당을 이유로 김영삼을 박정희의 계승자나 후계자라고 생각했다면, 조갑제가 언론계에서 쌓은 경력과 명성에 비하여 너무 순진한 착각이다.

두 사람은 박정희의 집권 18년 동안 피나는 싸움을 한 물과 기름이었다. 박정희는 김영삼을 눈에 가시처럼 여겨 틈만 나면 탄압하고 없애려고까지 했고, 김영삼은 한번도 박정희를 인정하거나 머리를 숙인적이 없다. 서로의 인성과 철학이 전혀 달라 융합이나 타협이 불가능한 사이였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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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 2017-08-23 23:31:57
나는 박정희와 김대중이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적에 김대중이를 찍었다.그후 진산파동을 보면서 나는 그를 거짓말쟁이라 하였다.거짓말을 한다고 거짓말쟁이가 아니고 남이 할 수 없는 거짓말을 하는 자가 거짓말쟁이다. 그의 자서전에 교통사고는 뺐다 더라

김성엽 2017-07-17 09:52:28
아니 YS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데 감히 나라의 수치이자 친일파의 핵심 글고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랑 비교하는것도 수치스러운건데 YS가 박정희의 후계자..?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