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소기업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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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소기업에 다닌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08.08 13: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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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낮을 뿐만 아니라 근무환경도 열악
대기업 하청구조…‘사다리’ 역할도 못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금 중소기업은 인력난이다. 대기업·공기업만 바라보면서 취업 안 된다고 징징대지 말고 중소기업에 가면 되지 않나.”

혹자는 말한다. ‘눈높이를 낮추라’고. 그러나 정작 눈높이를 낮춰 직업을 얻은 사람들은 충고한다. ‘절대 내려오지 말라’고. 한쪽에서는 ‘취업할 곳이 없다’고 절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호소하는 이 지독한 불균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시사오늘〉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현실을 알아보기 위해 모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A(30·남)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 기사는 인터뷰·추가취재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한쪽에서는 ‘취업할 곳이 없다’고 절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호소하는 이 지독한 불균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 뉴시스

빚쟁이 인생

200만 원.

내 근로계약서에 적힌 월급 액수다. 여기에는 시간외근무수당과 식대, 차량유지비 등이 포함돼 있다. 그나마도 이런저런 세금을 떼고 나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19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 돈으로 밥값도, 교통비도 해결해야 한다. 중소기업 입사를 결심했을 때 ‘돈 욕심’은 내려놨다. 하지만 지금 내 연봉은 ‘인간다운 생활’ 자체를 위협한다. 대기업 같은 사내식당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으니 한 끼 6000~7000원 짜리 밥을 사먹어야 하고, 커피라도 한 잔 하면 하루 만 원 이상이 빠져나간다. 월세와 식비, 교통비만으로 한 달 월급의 60%가 사라진다.

어디 월세, 식비, 교통비뿐인가. 통신비, 전기세, 가스비, 수도세 등을 내면 10만 원 이상이 훌쩍 없어진다. 학자금 대출도 아직 남아 있다. 내가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30만 원도 안 된다. 옷 한 벌·신발 한 켤레는 물론이고, 샴푸·린스와 스킨·로션 사기도 부담스럽다.

사정이 이러니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 잔 하려면 그야말로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여자친구와의 데이트코스는 재미보다 ‘돈 안 드는’ 것이 우선이다. 입고, 먹고, 자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삶이다.

얼마 전 TV에서는 대기업 4년대졸 정규신입직 초임이 3855만 원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중소기업 4년대졸 정규신입직 초임은 2523만 원이라는 말도 들렸다. 연봉 1332만 원 차이. 월급으로는 111만 원 차이다. 한 달에 111만 원. 가벼워진 스킨통 무게에 가슴 떨리지 않아도 되는 ‘대기업 인생’은 어떤 기분일까.

불만족의 축제

사람들은 말한다. “작은 회사니까 가족 같은 분위기겠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사장님이 직원 개개인의 이름을 다 외우고 불러주는 일은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작은 회사’라는 단어는 ‘돈 없는 회사’의 듣기 좋은 표현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돈 없는 회사에서는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우선 잘 짜인 교육 프로그램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입사 즉시 현장에서 뛰면서 알아서 깨쳐야 한다. 게다가 직원 수가 적기 때문에 ‘내 일 네 일’이 따로 없다. 어떤 날은 공장에 가서 생산관리를 하던 직원이, 어떤 날은 마케팅 회의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 중소기업 사원의 생활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전문성’을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주먹구구식 ‘요령’만 쌓여갈 따름이다.

인력이 부족하니 야근도 많다. 물론 야근수당은 없다. ‘야근수당을 줄 만큼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말은 만능키다. 야근을 해도, 휴일에 나와서 일해도 ‘회사 사정이 안 좋으니’ 수당 청구는 생각할 수 없다.

지난해 6월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퇴사했거나 퇴사를 계획하는 이유로 가장 많은 22%가 ‘근무 여건이 불만족스러워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물론 어느 회사도 직원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중소기업은 근무환경도, 연봉도 대기업보다 ‘매우 불만족스러울’ 확률이 높다. 

▲ 〈잡코리아〉에 따르면, 대기업 4년대졸 정규신입직 초임은 3855만 원, 중소기업 4년대졸 정규신입직 초임은 2523만 원이었다. 연봉 1332만 원 차이다 ⓒ 잡코리아

참아도 좋은 날은 오지 않는다

“계단 올라가듯 차근차근 가면 돼. 중소기업에서 능력 인정받으면 대기업도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입사 후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러나 이 ‘계단론’은 현실과 지독히 동떨어진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지난해 9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청년층 대졸자의 초기 일자리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300명 미만 중소기업에서 첫 경력을 쌓은 청년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비율은 4.8%였다. 중소기업 직원 100명 중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은 채 5명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한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 탓이 더 크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부분은 대기업의 하청기업이다. 핵심 기술은 대기업이 갖고, 단순 작업이나 생산만 하청기업에 위탁하는 구조다. 즉 대기업에서 기획하고 연구·개발해 놓으면, 중소기업은 ‘시킨 대로’ 업무를 받아서 생산·납품하면 그만이다. 이런 구조에서 중소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으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모든 것을 다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회사 같은 작은 기업이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성공시키는 것은 로또를 맞을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기업의 납품을 따내고, 기한 맞춰 차질 없이 생산해 대기업으로 올려보내는 일 뿐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기는 것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동등한 경쟁관계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기는 어려워. 이직이 잘 되는 직무가 있는데, 극히 일부지. 대기업 직원이 해야 하는 일과 중소기업 직원이 해야 하는 일은 완전히 달라. 대기업 입장에서는 차라리 신입을 뽑아서 트레이닝 시키는 쪽이 훨씬 리스크가 적지.”

입사 초, 대기업 인사팀에 다니는 한 선배는 술자리에서 ‘좀 더 참고 대기업에 계속 도전하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시간이 아깝다”면서 “중소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하는 인재가 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없는 소리였구나 싶다. 만약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몇 년이 걸리더라도, 빚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대기업에 가려고 기를 쓰지 않을까. 

▲ 통계청은 2016년 혼인건수가 30만 건 이하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2017년 혼인건수는 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통계청

중소기업 다녀서 죄송합니다

“자네, 그 돈으로 생활이 되겠나?”

누군가 말했다.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말은 거짓말도 욕설도 아닌 진실이라고. 여자친구 부모님 앞에 선 나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월급 200만 원.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이 돈으로 가정을 꾸리겠다는 건, 나 스스로도 염치없다고 생각한 일이다. 여자친구 부모님의 말씀이 가슴에 꽂힌 순간, 내 혀는 마비된 것 같았다.

대학 시절 만난 여자친구는 4년 넘게 내 곁을 지켜줬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미래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둘 다 직장인이 되고, 돈을 벌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된 후, 우리는 미래를 의심하게 됐다. 행복한 가정을 만든다는 것은, 마음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통계청은 2016년 혼인건수가 처음으로 30만 건 이하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2017년 혼인건수는 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 근로자의 88%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그들의 초임은 2500만 원을 겨우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을 할 수 있는 청춘남녀는 대기업·공기업에 다니거나, 집안의 지원을 받는 일부 사람들밖에 없다. 그렇다. 지금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판타지다.

“죄송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을 꺼내놓고 침묵을 버텨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대체 나는 무엇이 죄송했던 것일까.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적도, 법을 어긴 적도, 예의에 벗어난 일을 한 적도 없다. 아, 단 한 가지. 나는 중소기업에 다닌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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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2017-08-09 14:47:20
미안해 내 사랑 너의 자랑이 되고 싶은데 지친 내 하루 위로만 바래
날 믿는다 토닥이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취한 한숨에 걸터앉은 이 밤

해낼게 믿어준 대로 하나뿐인 걸 지금까지 내 꿈은 오늘 이 기분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어
비교하지 마 상관하지 마 누가 그게 옳은 길이래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좋은 그곳이 나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