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타자 이종범 ‘역사를 훔치고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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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타자 이종범 ‘역사를 훔치고 달리다’
  • 최진철 기자
  • 승인 2009.06.16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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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KIA, 상승세 이끈 ‘관록 야구’로 09‘ 프로야구 접수
'이종범 효과'가 KIA를 상승세로 이끌고 있다.
요즘 이종범(39)의 플레이를 본다면 전성기 시절은 아니지만 엄청난 에네르기를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종범이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팀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팀에 미치는 효과가 한 두가지 아니다. 이종범 효과가 6월 KIA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종범은 지난 5월27일 문학 SK전부터 10경기 연속 안타를 생산하고 있다. 6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10경기 타율만해도 4할3푼2리(37타수16안타)에 이른다. 타점도 9개를 올리고 있다. 전체타율은 2할9푼까지 끌어올렸다. 현재로서는 팀내 최고 타자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이종범이 올리는 타점을 결정타가 대부분이었다. 5월31일 잠실 LG전은 선제타와 결승 쐐기 2타점을 올렸고 6월3일 두산전에서도 2타점을 올려 팀 승리를 이끌었다. 7일 삼성전에서도 연장 12회 동점타를 터트려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2500루타, 500도루,1000득점 고지도 차례로 밟았다.

팀내 최고참선수인 이종범의 활약이 두드러진 최근 10경기에서 KIA는 7승3패의 호조를 띠고 있다. 6월들어 4승2패의 상승세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4번타자 최희섭과 3번타자 홍세완의 부진으로 클린업트리오가 부실해졌지만 이종범의 활약이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고 있다.
이종범의 활약은 비단 성적 뿐만 아니다. 팀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예년만해도 부진한 성적 때문에서 후배들을 제대로 지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후배들에게 따끔한 소리도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그라운드에서는 타격, 수비, 주루에서 생각하는 야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덕아웃에서 화이팅을 이끌어내고 어린 후배들과 교감을 통해 팀 분위기를 이끈다.

이종범의 성적보다 더욱 중요한 기여점이다. 더욱이 만년 2할 타자 김종국도 1군에 올라와 큰 힘을 보태고 있다. KIA 덕아웃의 힘이 젊은 선수에서 노장선수들로 넘어갔고 제법 무게감과 질서가 생기고 있다. 모두 이종범 효과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KIA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완벽한 야수

'전설의 1번 타자'답게, 통산기록에서 그의 이름이 가장 높이 자리하는 부문은 도루다. 548개를 기록하며 아직도 달리고 있는 전준호에 이어 494개로 2위. 2년 늦은 데뷔와 3년간의 일본생활을 생각하면 아깝기도 하지만, 여전히 한 시즌 최다도루 기록인 84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과, 전준호를 비롯해 20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들 중 유일하게 성공률 8할을 넘어선 것이 이종범이라는 점을 덧붙여 놓는다면(통산 도루성공률 .821) '도루의 1인자'라는 표현도 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종범을 전준호·정수근 같은 전형적인 1번 타자들과 단순히 비교할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들보다 한 차원 높은 타격 능력과 타점 생산능력 때문이다. 원년 백인천을 제외하고 4할 타율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393의 시즌 타율기록과 아직 깨지지 않고 있는 196개의 시즌 최다 안타기록, 삼진보다 100개 이상 많은 4사구.

비록 최근 3년간 1할대와 2할대를 오가며 까먹고도 3할을 웃돌며 역대 8위에 올라있는 그의 통산 타율(.302)과 600점이 넘는 타점(637), 그것은 여느 붙박이 중심타자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통산기록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홈런타자의 면모다. 그가 97년에 두 개가 모자라긴 했지만, 시즌 막판까지 이승엽과 끈질기게 홈런왕 경쟁을 벌이며 30개의 홈런을 날린 적이 있을 만큼 강한 타자였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의 통산홈런은 181개에 달하며, 그의 이름은 통산홈런 순위에서 한대화, 심재학, 김성래, 김경기 같은 내로라하는 홈런타자들의 이름보다도 훌쩍 높은 곳에 걸려있다. (통산 18위)

거기에 더해, 지금에야 유연성이 떨어졌다는 둥 정면 타구에 오히려 실책이 많았다는 둥 흠을 잡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지만, 그저 야구장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소름 끼치고 가슴 뛰게 하는 묘기 자체였던 수비. 더 세밀하게 흠을 찾아낼수록 날카로운 비평이 된다고 하더라도, 김재박·유중일·박진만을 제외한다면 누구와의 비교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이종범의 유격수 수비능력이었음을 부정할 이들은 많지 않다.

3할 이상의 타율, 20개 이상의 홈런, 50개 이상의 도루. 그리고 리그 최고 수준의 내야 수비능력. 그 중의 한 가지만이라도 꾸준히 기록해줄 수 있는 선수라면 충분히 톱 클래스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네 가지를 동시에, 그리고 넘치게 충족시켰던 것은 최소한 프로야구 출범 이후로만 한정짓자면, 이종범 외에는 그 앞으로도 뒤로도 없었다. 
 

 
모범 보인 이종범 ‘17년 관록의 힘’
1970년 출생인 KIA의 이종범은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그 나이에 코치가 아닌 선수로 뛰는 그에게 전성기 때처럼 ‘야구천재’란 별명을 붙이긴 어색하다. 그래서 팬들은 광주구장 더그아웃을 꿋꿋하게 지키는 그에게 ‘종범신(神)’이란 애칭을 붙였는지 모른다.
이종범은 요즘 정신적인 버팀목 역할뿐만 아니라 실제 몸으로 후배들을 리드하고 있다.
 
이종범은 지난해 KIA가 6위로 시즌을 마치자 후배들과 함께 홈페이지에 사죄의 글을 올렸다. ‘다시 살아난 이종범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4강에 진출하지 못해 맏형으로서 큰 책임감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KIA는 올해로 한국 나이 마흔이 된 이종범에게 ‘은퇴 후 코치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이종범은 거절했다. 부진한 모습으로 은퇴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의 이종범은 오로지 팀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종범은 자신이 뛸 때나 안 뛸 때나 공수 교대 때 바쁘다. 경기흐름에 맞춰 후배들에게 적절한 플레이 요령을 적시해 주기 위해서다. “세밀하게 볼 때 점수차에 따라 그리고 몇회냐에 따라 수비와 공격하는 요령이 다를 수 있다. 젊은 후배들은 이 사실을 잊고 스피드있게 경기해야할 때 느슨하게 하고 오히려 조금 편안하게 아웃카운트를 잡을 상황에서 급하게 수비하다 실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점을 공수교대 때 알려주고는 한다”는 게 이종범의 말이다.

선배의 원포인트 레슨에 후배들은 항상 귀를 쫑긋하고 기울인다. 그래서 이종범은 그라운드에 나서지 않더라도 벤치에서 경기흐름에 자신의 감각을 싣기 위해 최대한 집중한다. 상대투수를 나름대로 분석해가며 타석에 나서는 감각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 코치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하는 코치급 활동이다. 조범현 감독은 “이종범이 많이 달라졌다. 개인훈련량도 많았고 후배들을 이끄는 부분도 많이 좋아졌다”며 흡족해한다.

경기에 나가지 못할 때 이종범은 더 바빠 보인다. 올해 들어 부쩍 말이 많아졌다. 훈련 때는 앞장서고 끊임없이 후배들과 대화하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경기를 앞두고 긴장한 후배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다. 경기 중에는 박수도 치고 소리도 지르는 등 분위기 메이커로 변신한다.

나이를 잊고 녹록지 않은 기량을 유지하면서 주전으로 나설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베테랑들이 할 몫은 있다. 이종범이 그런 모범사례가 되는듯하다.
자신의 신세한탄만 하고 불만만 늘어놓아서는 팀에서 더이상 살아날 길이 없다. 선수들에게는 저마다 나름대로의 몫이 있다. 그 몫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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