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호텔] 김대중의, 김대중에 의한, 김대중을 위한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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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서울호텔] 김대중의, 김대중에 의한, 김대중을 위한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08.11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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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기수론’ 동참 거절했던 DJ…김상현과 뉴서울호텔서 만난 뒤 마음 바꿔
대선 경선서 YS에 역전승…박정희와 대선에서 맞붙어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1970년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승리한 후 환호하는 DJ ⓒ 김대중 평화센터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수많은 선택(Choice)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신(神)이 아닌 이상, 모든 선택을 옳은 방향으로 할 수만은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운명의 순간, 단 한 번의 결정이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당선, 노벨평화상 수상 등 수많은 업적을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마찬가지다. ‘촉망받던 젊은 정치인’이었던 DJ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박정희 후보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며 단숨에 ‘거물 정치인’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DJ라는 ‘스타 정치인’의 탄생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뉴서울호텔’의 ‘그 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위장된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다. 빈사상태에 빠진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다.”

1970년, 당시 신한민주당(신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영삼 의원은(YS) 무기력했던 신민당에 폭탄 하나를 떨어뜨린다. 40대 중반에 불과한 자신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는 것이었다. YS는 차기 총선에서 싸울 여당 정치인들의 평균 연령이 야당보다 훨씬 젊다는 점, 야당 지도자들의 노쇠와 장애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기 직전 좌절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40대 기수론’을 주창하고 나섰다.

이러자 신민당 원로들은 YS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수였던 유진산은 구상유취(口尙乳臭)라는 표현을 동원해가며 YS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구상유취란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말과 행동이 어리고 하잘것없음을 이르는 사자성어다. 

▲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맞붙은 DJ의 포스터 ⓒ 김대중 평화센터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YS는 조윤형을 보내 DJ에게 40대 기수론에 동참할 것을 부탁했다. 조윤형은 DJ를 만나 야당이 살아나려면 보수의 벽을 허물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YS와 DJ가 함께 경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DJ는 아직 당이 40대 기수론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은 데다, 자신의 목표는 1975년 대선이라는 이유로 40대 기수론 동참을 거절했다.

하지만 얼마 후, DJ는 40대 기수론의 한 축으로 우뚝 선다. DJ의 생각을 바꾼 사람은 김상현이었다. DJ의 정치적 동지였던 김상현은 ‘뉴서울호텔’로 찾아가 DJ에게 ‘반드시 40대 기수론에 참여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김상현은 지난 2009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DJ와의 만남을 회고했다.

김상현 - 반드시 40대 기수론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번에 동참하지 않으면 앞으로 지도자 대열에서 영원히 탈락할 수 있습니다.

DJ - 아무런 준비도 안 됐는데 어떻게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김상현 - 선언이 곧 준비입니다. 40대 기수론에 참여해야 정치적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DJ - 하루만 생각해 봅시다. 내일 점심을 같이 하도록 하지요.

▲ DJ와 김상현이 만났던 ‘뉴서울호텔’의 현재 모습 ⓒ 시사오늘

다음 날, DJ는 '풍림'이라는 한정식 식당에서 김상현을 만나 40대 기수론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1970년 1월 24일, 뉴서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 후보 지명전’ 출마를 선언했다.

YS, DJ, 그리고 이철승까지 세 명의 40대 정치인이 뭉친 충격파는 생각보다 컸다. 40대 기수론은 야당 돌풍의 진원지가 됐고, 40대 기수론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높아지자 유진산은 대선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DJ는 드라마 같았던 대선 경선에서 YS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후보직을 거머쥔다. 대선에서는 박정희와 맞붙어 불과 95만 표 차이로 패배,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거물 정치인으로 발돋움한다. 김상현과 마주한 ‘뉴서울호텔’에서의 하룻밤이 DJ의 정치 인생을 크게 바꿔놓은 셈이다.

한편, 1969년에 개장한 ‘뉴서울호텔’은 지금도 광화문 서울 파이낸스센터 뒤편에서 고객들을 맞고 있다. 2001년 10월에는 베스트웨스턴 브랜드를 달고 재단장, 지금은 ‘베스트웨스턴 뉴서울호텔’로 불리고 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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