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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이아이피>, 감독의 Very Invaluable Preciouses
<김기범의 시네 리플릿>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있는 이야기
2017년 08월 17일 (목) 김기범 영화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기자) 

   
▲ 영화 <브이아이피>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13년에 개봉한 <신세계>는 개인과 조직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진솔한 내러티브로서 얼마나 관객들에게 흡입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며 한 각본가의 역량을 확인시킨 전환적인 작품이었다. 

악당 못지않은 음모를 꾀하는 정의의 경찰과 사회악이지만 피보다 진한 형제애를 보이는 조폭 집단은 선악의 이분법적 체계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관객들에게 브로맨스라는 매혹적인 개념을 선사한다.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배신과 암투의 선상에서 모호해지는 선과 악의 자리다툼만큼이나 우리가 사전적으로 배웠던 정의는 오히려 지극히 비열해야 할 불의의 집단에서 구정물의 연꽃처럼 진한 동지애로 피어오른다. 

늘 인생살이가 그러하듯 각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펼쳐지는 사건과 서로 충돌하는 캐릭터는 우리가 꿈꿔 왔던 신세계란 결국 온갖 추잡한 권모술수가 교직하는 아수라장이요, 축생도일지도 모른다는 소름 끼치는 암운만을 드리운다. 

비록 홍콩 영화 <무간도> 의 기시감을 떨쳐 버리긴 힘들지언정 <신세계> 는 스크린 전반에서 내뿜은 공감각적인 미장센뿐만 아니라, 조직원으로서의 인간적 비애를 폭력 미학으로 승화시키며 박훈정 감독에게 진정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위상을 부여한 발단이었다. 

그러한 영화 <신세계> 가 개봉했던 2013년을 필두로 시작되는 박훈정의 신작 <브이아이피> 는 네 남자를 서사의 기본 축으로 설정하되 이들 간의 적절한 역할 배분을 도모하는 세심함을 잊지 않는다. 

여기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북아 이해 당사국들의 각축만큼, 진실 규명과 이를 은폐하려는 국가 기관 간의 힘겨루기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와는 결이 다른 작품임을 과시하려 한다. 

무엇보다 현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김정일 사망 당시 북한 권력지형도의 변화에 따른 동북아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장성택이라는 과거 북한 정권 2인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그 주변 인물들을 이야기의 시발점으로 삼은 것은 기존 북한 소재 영화에선 보기 드문 경우로 박훈정 감독의 야심이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국가 체제의 명실상부한 법과 제도의 테두리 밖에서 기생하며 축적되고 있는 특정 계층의 명징한 존재는 각 사회의 자기모순과 또 하나의 고어(gore)한 폭력성을 은유한다. 

그러나 엄혹하게 따져 <브이아이피> 는 감독의 열정이나 타고난 재능이 만개하여 그 절정에 이른 작품이라기보다는 기존 필모그래피를 응축시킨 영화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 속에서 스파이의 첩보 활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에스피오나지(espionage) 장르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고뇌나 비애를 그려내기 보다는 진실을 파헤치거나 은폐하며 범인을 장악하기 위한 힘겨운 과정을 액션물로 소화시킨 영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익히 익숙해진 범죄 스릴러와 첩보물의 사이에서 일반 관객들이 일체의 정치적 함의나 분단 현실의 암울함조차 기계적으로 느껴 보기에도 그 지지대가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네 남자의 역할 배분은 너무나 공정한 나머지, 영화를 이끌어가는 추동이 되기 이전에 캐릭터의 갈등이나 케미스트리가 옅어지는 패인이 되고 만다. 

국익에 함몰되어야 할 국정원 직원과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범인 색출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찰, 그리고 반인민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고위층 자제에 대한 복수심에 몸서리치는 북한 보안성 공작원의 활동은 강대국의 강압을 대변하는 CIA 요원과의 대치와 맞물려 스토리의 구성과 연출에 따라선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안보와 치안을 위해 공조가 이루어져야 할 각 국가기관 간의 알력 다툼은 서사 구조의 안전장치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관객들의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는 데에는 역부족의 재료이기도 하다. 

더구나 범죄자를 응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북한 공작원의 암약과 CIA 의 어설픈 대응은 영화의 스타일에 중후함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영화가 중점을 두고자 했던 개연성 부분에선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브이아이피> 는 국제정치의 현실주의 논리와 남북한 분단 현실의 아픔을 절실하게 조망하기 보다는, 차라리 폐쇄된 독재 사회의 VIP 라 불리는 한 인간의 악마성과 이를 둘러싼 여러 인간 군상들의 갈등에 균등한 힘을 실은 영화다. 

그러한 의미에서 행동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귀족적인 얼굴 뒤에 숨겨진 악마적 속성을 그려낸 이종석의 서늘한 감성 연기는 이 영화가 만들어낸 유일한 성과다. 

국가 관료주의의 폭력성을 느와르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박훈정의 전작인 신세계의 DNA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브이아이피> 는 박훈정 감독이 각본을 맡았던 작품들의 또 다른 체세포 분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 공권력을 쥐고 있는 각 기관들 간의 분쟁과 신경전은 검찰과 경찰 간의 부패한 먹이사슬 구조를 그려낸 <부당거래> 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며, 보는 이에 따라선 설득력 없는 살인을 연쇄시키는 이종석의 모습에선 수 년 전에 감독이 각본에서 탄생시켰던 악마를 또다시 보게 만든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세 남자가 핏빛 광기를 선보였던 <혈투> 에서의 살이 에이도록 시린 맨 땅이 다시 느껴진다면, 그 영화로 자신을 세상에 처음 알렸던 한 이야기꾼에 대한 세밀한 애정이 충만한 매니아일 것이다. 

그러나 <신세계> 처럼 스크린을 가득 채운 선홍빛 피의 끈적임은 스토리를 이끄는 중심인물 간에 충분히 작용하지 않는다. 

단선적인 플롯만큼이나 아쉽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스타일리시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연관성에 방점을 찍으며 하나의 반전을 지나 관객을 속이려는 트릭으로 삼으려 했다면 더욱 그렇다. 

8월 24일 개봉한다.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와 청소년 관람 불가다. 

 

뱀의 발 : 영화에 나오는 북한 보안성의 정확한 명칭은‘인민보안성’으로서, 과거 사회안전부로 불리며 우리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공안기관이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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