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일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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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홍의 대변인]공공기관 채용비리 논란…'인간 본성이 다 그런 거지'
2017년 10월 27일 (금)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사람은 똥을 싼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면 변(便)을 본다. 아마 배변할 때만큼 인간에게 자신이 평등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은 없으리라.

그러나 손과 입으로 똥을 싸는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고, 시쳇말로 '빅똥(大便)'을 쌌을 때는 사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도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순간의 빅똥으로 평생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면 이 또한 옳지 않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다.

<시사오늘>의 '박근홍의 대변인'은 우리 정재계에서 빅똥을 싼 인사들을 적극 '대변(代辯)'하는 코너다.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공공기관들을 위한 최종변론

27일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 비리 관련 관계 장관 긴급 간담회'를 열고 공공기관 채용 비리 조사 대상을 기존 중앙정부 산하 330개 공공기관에서 지방 공공기관, 유관단체 등을 포함한 2243개 기관으로 확대키로 했습니다. 또한 '채용 비리 특별 대책 본부'를 구성해 주무 부처 전수 조사를 시행한다는 방침인데요.

이는 지난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반칙과 특권의 상징이다.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채용비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라"며 공공기관 채용비리 척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힌 데 따른 조치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나 처리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청탁자와 채용비리를 저지른 공공기관 임직원들에 대해 엄중한 형사책임과 민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문 대통령이 직접 공언한 만큼, 앞으로 비리 관련자와 공공기관을 강도 높게 제재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공공기관 채용비리 논란은 분명 지탄 받아 마땅한 사안입니다. 실업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청년세대의 꿈과 희망을 꺾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에 위화감까지 조장하고 있으니 참 나쁜 사람들이지요. 그들을 향한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과연 공공기관과 인사채용 담당자들을 문책하는 게 합당한 조치일까요? 기득권을 쥔 파워맨들이 권력과 자본을 내세워 인사를 청탁하는데 여기에 포섭 당하거나 굴복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애초에 인간은 권위에 복종하는 본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진화를 거치면서 갖게 된 일종의 생존본능이지요.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복종해야 한다는 훈련을 오랜 시간 동안 거친 결과입니다.

이 같은 본성은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 체제가 확립된 이후 오히려 더욱 강해졌습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일부 정치인과 자본가들의 권세가 극에 달했으니까요. 권위에 못 이기는 척하면 짭짤한 떡고물도 떨어지고요. 그래서 '인간은 법과 정의보다 권위를 더 선호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채용비리에 연루된 공사 직원뿐만 아니라, 이를 수사한 검찰 수사관까지 금품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과정에서도 거액의 금품이 오간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발(發)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역시 대가성 금품이 오갔는지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공공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 적폐다, 뭐다 해서 성과급도 깎이고, 복지수준도 떨어지고, 뒷돈도 마음대로 못 받는데, 집에 들어가면 마누라가 바가지 긁고, 애들은 아우성이니 얼마나 살림살이가 힘들겠습니까.

자식농사 잘못 지은 기득권층의 인사 청탁을 받아주고 챙긴 돈으로 자기 자식농사를 지어야 하는, 참으로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 문재인 정부가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인사·채용비리 근절 관계장관 긴급 간담회를 열고 이에 대한 조치 방향을 밝혔다. (왼쪽부터)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 뉴시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초래한 이들이 과연 누구입니까? 제 생각에는 누가 누구를 탓하거나 할 자격이 없어요. 바로 나 스스로가 불행한 대한민국을 만든 거니까요.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보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더 관대합니다. 공익을 위해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포기하고 불이익을 감수한 내부고발자들에게 돌아가는 거라고는 '배신자'라는 낙인뿐입니다. 영웅 취급을 받아야 하는데 되레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땅콩회항'을 폭로한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차량 결함을 고발한 현대자동차 김광호 전 부장입니다. 박 전 사무장은 대한항공 동료들로부터 '도움이 안 되는 관종(관심종자)은 좀 꺼지길'이라는 비난을 들었다고 합니다. 김 전 부장은 현대차로부터 영업비밀을 누설했다며 고소를 당하기도 했지요.

공공기관 채용비리 문제는 대부분 내부자들의 고발이 있어야 세상에 드러납니다.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실정에서 어떻게 이를 폭로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모른 척하고 떡고물이나 챙기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마냥 청탁을 거부하고 버티기도 어렵습니다. 인사상 불이익뿐만 아니라, '쟤는 왜 저렇게 고지식하냐'는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합니다.

함부로 나서지 말고, 튀지 않아야 오래 살아남는다. 이것도 어쩌면 인간 본성에 기인한 생존본능일지도 모르겠네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대한 정부 조치를 살펴보면 윗물을 정화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논란의 시작은 강원랜드 채용비리였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권선동 의원, 같은 당 염동열 의원이 몸통으로 지목됐고, 김기선·김한표·한선교 의원도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제보도 있었습니다. 지난달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강원랜드 직원은 "실제로 국회의원 보좌관이 청탁을 하는 걸 현장에서 목격했다. 지금 민주당이다"라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그 라디오 방송 제작진은 해당 부분을 다시 듣기 서비스에서 삭제했습니다.

이쯤 되면 공공기관 전수조사가 아니라,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요? 왜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는지 의문이 듭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아들 특혜취업 의혹에 대해 단 한 번도 직접 사과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사실 여부를 떠나서 논란이 무척 컸던 만큼, 대선 전후로 합당한 해명이 필요한 대목이었는데 말이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채용비리와 관련된 공공기관, 그리고 연루된 관계자들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고, 그에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건 너무나 불합리합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공공기관 채용비리 문제로 부정청탁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머리를 때리지 않고 꼬리만 자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모쪼록 이 같은 점들을 헤아려주셔서, 보다 우리 사회를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방향으로 현명하게 판단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가 준비한 최종변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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