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4 일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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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 散策] 이성헌 ˝한국당, 현역 기득권과 영남 의존 버려야˝
자유한국당 이성헌 서대문구갑 지역위원장
1985년 12대 총선, 역사적 분기점
한국당, 처절한 내부혁신만이 답이다
당내민주주의 후퇴…지구당 부활해야
정치인은 국민들 실은 ´버스운전사´
2017년 10월 28일 10:02:55 글=이성헌/정리=정세운 기자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이성헌 전 국회의원/ 정리=정세운 기자 김병묵 기자)

수 년 간 많은 질문을 받았다. 왜 박근혜 정부의 개국공신이면서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이명박(MB) 정권에서 정치보복을 당했는데도 왜 당에 남아있었느냐고, 자유한국당이 상황이 어려운데 당을 옮길 생각은 없느냐고 물어왔다. 24일,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로 찾아온 기자들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이를 계기로 내가 정치인으로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변들을 찾았다. 그래서 잠시 지면을 빌려 정치인 이성헌이 걸어온 시대, 그리고 이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당시 학생운동은 이념적 색채도 없었다. 민주주의 쟁취와 평화통일이 최고의 목표고 또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교내에선 아주 활발했지만, 대중성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권으로 가서 그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나도 많은 고민 끝에 정계에 입문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학생운동의 대표에서 상도동계의 막내로

 1983년 연세대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을 하던 때다. 당시 학생운동은 고립된 상황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 3주년 기념식을 준비하면서 제도권 정치인들을 초청하려 했다.

여권에선 김상협 전 총리를, 야권에선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초청했다. 그런데 김 전 총리는 와병 중이라 불참을 통보했고, YS는 ‘여러분들을 돕고 싶지만 정치인들이 학생들을 선동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고사했다. 나는 YS를 직접 찾아가서 한 시간 반 동안 설득했다. 우린 모두 아예 이 초청 강연이 끝나면 감옥에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집을 나와 여관에서 숙식하며 행사를 준비했다. 이런 이야기까지 설명하자 결국 YS가 수락을 했는데, 경찰들이 집을 에워싸서 오지 못했다.

그래서 노천극장에 모여 있던 약 1만여 명이 그냥 해산했었다. 나중에 이것이 계기가 되어, YS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김덕룡(DR) 당시 비서실장과 최기선 당시 공보비서관 등을 자주 보내서 많은 도움을 줬다. 뉴욕타임즈의 동경특파원이 오면 꼭 우리를 소개시켜주곤 했다. 그렇게 교류를 이어가다가 1985년에 YS가 ‘정치권 밖의 평론가보다, 발목에 직접 때를 묻힐 사람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일해보는게 어떠냐’고 권유해서 상도동계 비서진 막내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시대의 분기점이었다. 당시 학생운동은 이념적 색채도 없었다. 민주주의 쟁취와 평화통일이 최고의 목표고 또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교내에선 아주 활발했지만, 대중성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권으로 가서 그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나도 많은 고민 끝에 정계에 입문했다. 김영춘 당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비롯해, 서울대의 이정우나 성균관대의 윤태일 등이 나와 함께 활동하던 학생운동의 대표들이다. 우리의 신상명세가 이미 공개돼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현장으로 가기도 어려웠다. 내가 들어간 뒤 김영춘 현 해양수산부 장관도 상도동 비서실에 막내로 들어왔고, 이후 나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로 지내게 됐다.

 내가 정계에 입문한 1985년, 그 12대 총선이야말로 한국 역사의 큰 기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망명 중이었고, 재야에 문익환 목사나 박형규 목사 같은 분들이 민주화를 주장하던 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총선 참여를 거부했다. 독재정권이 치르는 선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YS의 생각은 달랐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 이뤄지는 거라고 했다. 전 국민이 참여하는 건데 우리가 그것을 외면해선 안 된다, 민의를 받아서 정권을 심판해야 된다고 설득했다. 그 결과 YS의 신민당은 돌풍을 일으켰고, 민한당을 사실상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개헌투쟁의 동력으로 이어졌고 대통령 직선제를 가져온 것이다. 만약 이 때 선거를 보이콧했다면 민정당과 민한당이 여당, 제1야당을 나눠먹으면서 형식상이든 어쨌든 양당제가 됐을 것이고 간선제도 유지됐을 거라고 본다.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선거였고, YS는 시대를 읽는 안목이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계에 입문한 데는 YS의 그러한 매력도 한몫 했다.

문민정부와 민주계의 분열

 김영춘 장관은 나와 오래된 사이다. 학생회장을 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냈고, 내가 DR에게 추천해서 상도동계에 들어왔다. 함께 비서실에 있었고, 문민정부가 열린 뒤엔 함께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있었다. 나는 1996년까지 청와대에 있었는데, 김영춘은 나보다 좀 먼저 청와대를 나가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 15대 총선에서 나란히 떨어지고 나서 함께 미국 유학하던 시절엔  콜럼비아 대학교서 1년 간 룸메이트로 지내기도 했다. 나와 함께 상도동에서 정치를 배웠고, 형제처럼 막역한 사이였다. 장관이 된 것도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당이 다르지만 언젠간 함께 일할 날이 오지 않겠나 싶다.

아주 가끔 만약 DR이 대통령이 됐다면, 이성헌과 김영춘은 지금쯤 더 정치적 입지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DR은 문민정부 때 강력한 견제를 받으면서 대권이 멀어졌다. 이는 민주계의 분열과 관련이 있다.

 문민정부 이후 YS의 차남인 김현철 교수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DR을 많이 견제했다. 김동영 의원, 최형우 장관, DR이 삼분하던 민주계에서 김동영 의원이 돌아가시고 최형우 장관이 쓰러지면서 견제할 사람이 DR만 남은 것이다. 당시 이원종 정무수석이 DR과 경복고 선후배고, 십 수년 간 함께 비서실 생활을 했던 친한 사이였다. 계파색도 전혀 없이 일만 열심히 하던 사람이고. 그런데 이 수석도 눈치가 보여서 DR과 좀 소원해 졌다고 할 정도로 심한 견제를 당한 것이다. 게다가 YS가 후계자를 정확하게 지목하지 않으면서 차기 주자들이 난립했다. 그게 소위 ‘신한국당 9룡’이다.

애초에 민정당이 의석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민주계가 당을 장악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는 또 성향이 다르다. YS의 기반은 PK인데, 민정계는 TK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라 경쟁과 갈등이 늘 존재했다. 그런 가운데 97년 대선에서 DJ가 당선됐고, 야당이 되면서 이제 포지션이 바뀐 것이다.

게다가 YS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사조직을 해체하라고 하면서 민주계는 자발적으로 사조직을 모두 해체했고, 내부적으로 다시 통합할 수 있는 계기나 조직을 갖지 못했다.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리드해 나가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도 부재했다. 김영춘은 그런 상황에서 당을 나갔고, 나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 "이제 강경 보수 세력만 가지고 집권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을 품어야 한다. 이념적으로 진보냐 보수냐, 우파냐 좌파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층이 있다. 사안별로 어떤 사안엔 보수, 어떤 사안엔 진보일 수 있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을 갖추지 않고선 집권은 요원하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탄핵역풍과 정치보복

 김영춘이 김부겸 등과 열린우리당으로 갈 때 나는 당에 남았다. 그리고 17대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3월 21일, 박근혜 의원을 당에서 대표로 추대했다. 그리고 24일 박근혜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와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당의 성공을 위해서는 현역 의원들이 많이 도와주셔야 한다면서 설득을 했다. 대선을 치러본 내가 꼭 좀 도와줬으면 한다는 거였다. 이미 지난 12월부터 공천심사위원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구에 신경을 좀 더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고민을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공천심사를 하니 지역구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던 거다.

하지만 탄핵 역풍으로 당이 위기였기 때문에 결국 승낙했다. 그런데 상황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3월 초까지 여론조사 결과가 우상호에 비해 약 15%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탄핵 역풍이 불면서 19%지는 것으로 나왔다. 지역구 어느 아파트 상가 단지에 알고 지내던 약사가 계셨다. 그 분이 인사를 드리러 가니 내 명함을 찢어버리면서 나가라고 하시더라. 충격이 컸다. 사태의 심각성이 와 닿았다. 그래도 열심히 뛰다보면 이기겠지 싶었지만 결국 1800여 표 차이로 졌다. 박근혜 대표는 선거 자체를 선방하면서 주가가 올랐다. 하지만 나는 낙선했다. 당을 위해서 일하다 그랬다는 말은 누구에게 말할 수 있었겠나. 이 선거는 한나라당에게 기사회생의 계기를 줬고, 결국 이명박(MB)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나는 원외인사가 됐다.

 선거에 진 뒤, 비서실장직에 사표를 내고 사무부총장을 맡아서 일했다. 2년 3개월간 네 명의 사무총장을 모시면서, 당의 일을 모두 도맡다 시피 하면서 와신상담해 18대 때 국회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당내에서 MB와 박근혜 대표 간 치열한 경선전쟁이 벌어졌다. 그 때 나는 박근혜 진영의 조직 담당을 맡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MB쪽이 나를 원수로 여기며 미워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면서 첨예하게 싸웠다. 풍문으로 들은 얘기지만, 19대 선거 전에 날 잡으라고 청와대 하명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검찰이 나를 조사한다는 보도가 9시 뉴스에만 5번이 나갔다. 전부 무죄로 나왔지만, 내겐 부패한 사람이라는 누명이 붙었다.

밖에선 상대후보가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공격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우상호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편 적이 없다. 그런데 17대 때 부터 전주이씨 종친회 건물이 내 부정축재라고 나를 공격했다. 아버지가 종친회장을 하시던 때라, 건물 명의가 아버지 이름으로 된 것은 가지고 선거사무실서 교육까지 시키면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법정에서 우상호 본인은 빠져나가고, 그 보좌관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낙선에 대해선 내가 부족했다, 더 노력해야지라고 자성하면서도, 안팎의 적과 싸워야 했던 것이 일견 억울한 감도 있었다.

국회의원 기득권과 영남 중심주의가 문제

 20대 총선서는 공천파동이 터지면서 수도권 지역에서 궤멸했다. 새누리당이 그나마 서울에서 건진 몇 안되는 의석은 전부 국민의당이 만 여 표 이상 얻으면서 삼파전이 벌어진 곳이다. 서대문구는 해당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여론조사는 앞서 있었는데 속수무책이었다. 당 지도부에서 공천 내분으로 다투는 게 매일 언론을 장식하는데, 지역구에선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 분당사태가 벌어지고, 지금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 때 최고위원 출마를 했다. 당을 개혁하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기 위해서다. 대의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요새 걱정이 많다.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중심인데, 스스로를 점점 좁히고 있다.

 이제 강경 보수 세력만 가지고 집권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을 품어야 한다. 이념적으로 진보냐 보수냐, 우파냐 좌파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층이 있다. 사안별로 어떤 사안엔 보수, 어떤 사안엔 진보일 수 있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을 갖추지 않고선 집권은 요원하다. 

 그런데 당은 여전히 혁신에 실패 중이다. 혁신위가 있지만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문제는 두 가지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과, 여전한 영남 중심의 소극적인 구심력이다.

국민들이 한국당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기득권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고, 책임만 돌린다. 당협위원장들에게 전부 사퇴를 하라고 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당의 위기에 가장 책임 있는 사람들은 바로 현역 의원들 아닌가. 원외위원장들은 사무실도, 후원금도 없이 고군분투중인데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 것을 혁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구당을 없애자고 했던 장본인인데, 낙선 후 얼마 전엔 지구당 부활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원외가 아니라 원내에 있는 국회의원 스스로 혁신이 필요하다. 자기희생의 면모를 보이지 않고, 변죽만 울려서 되겠는가.

   
▲ "한국당은 여전히 혁신에 실패 중이다. 혁신위가 있지만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문제는 두 가지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과, 여전한 영남 중심의 소극적인 구심력이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또 다른 과제로, 영남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는 문화와 패턴을 바꿔야 한다. 영남을 챙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수도권의 정서를 제대로 읽으면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영남만 잃지 않으면, 마치 보수층이 다시 모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 지구당 조직을 만들어서 당원이 몇 명인지 보고하라고 하고, 당원들의 아들 딸 가입시켜서 명단을 올리라고 하던 시절은 끝났다. SNS를 통해서 여론을 수렴하고, 또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는지 SNS를 통해 직접 홍보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수도권에선 더더욱 그렇다.

 예산을 이런 곳에 배분하고, 전문인력을 뽑고 해야 한다. 그런데 지구당을 없애고, 거기 내려가던 예산을 중앙당에서 독식하면서 영남만 바라보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수도권에서 완전히 뿌리가 뽑히고 지방정당으로 전락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자유한국당, 내부 혁신이 정답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당에서는 실망과 배신감을 느낄 법 한데 탈당을 고려한 적은 없냐고 묻는다. 청와대는 내가 부족해서 들어갈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제안이 왔더라도, 내가 아마 정중히 고사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랐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서다. 여당 국회의원으로, 의회에 들어가서 도울 일이 더 많다고 봤다. 야당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탈당에 대한 내 입장은 더욱 확실하다. 단언컨대, 개혁이 어렵다고 버리고 나가는 것은 쉽다. 내부에서 뼈를 깎는 혁신을 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대신에 효과는 확실하다. 바른정당이 당을 박차고 나갔는데, 그들이 진짜 보수라고 해서 보여준 것이 뭔가. 아무것도 없다. 무슨 개혁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 자기가 마시던 우물물에 침 뱉고 나가는 것이 개혁인가.

 그건 아니다. 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거기 책임이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가. 그 당의 중진들 아니냐. 바른정당의 구성원을 보면 거의 다 중진급 의원들이다. 그 사람들 중 일부가 돌아와서 지금 다시 요직을 맡고 있다. 한국당에 베테랑이 없어서다. 초선 의원들이 80여명 가까이 된다. 정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운영을 아는 사람들이 없으니 결국 돌아온 중진들이 맡고 있다. 심지어 통합파라고 해서 그들이 바른정당에 있는 몇몇과 당 대 당 통합까지 논하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나는 당을 내부에서 혁신하려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어서다.

 지금의 한국당이 총체적 난국인 것은 맞다. 처절한 개혁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친박을 축출하는 것이 바로 개혁인가. 난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그 전까지 같이 정치하던 사람들과 완전히 소통 통로가 끊겼다. 정치 스타일도 변했다. 그 자체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결국 탄핵되고 지금 감옥에 있지 않나. 그런데 함께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그것을 미루고 희생양을 만들어서 어물쩍 넘어가보려 한다. 심지어 현실적이지도 않고, 소모적이다. 윤리위원회에서 결의를 해도, 의원총회에서 결국 부결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 시절 기소가 되면 자동으로 제명되는 규칙을 만들었다. 그래서 어차피 본인은 자동 제명이다. 그런데 현실 가능하지도 않은 친박 출당을 하겠다고 분란을 일으키고, 내부 싸움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지금 소위 ‘진박’ 이라고 했던 원내 인사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 공천심사 때, 공천심사위원 명단을 청와대에 보여줬더니 현기환 정무수석이 ‘이 사람들 안 되겠다’면서 다른 사람 이름 여섯 개를 적어서 들이밀었다는 것 아닌가. 물론 그 명단대로 했을 지는 모르지만, 결국 공천과정서 사달이 나면서 당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천 자체가 엉터리로 됐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때 공천 받은 사람들은, 특히 학계나 행정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친박이나 친이, 그런 계파 개념도 없다. 싸워야 할 순간, 싸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럴 의지도, 방법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은 침묵하고 있고, 서청원 의원이나 최경환 의원 같은 사람들에게 총대를 지우고 빠져나오려 하는 것이다.

 이정현 의원 같은 경우 잘못하긴 했다. 정무수석, 홍보수석도 했던 사람이 언론과 소통하려 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걸고 직언을 하고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잖나. 그런 책임을 묻는 것이라면 또 모르되, 친박 출당 퍼포먼스는 성공할 수 없다.

당내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정치가 후퇴했기 때문이다. 당내 민주주의적 측면에서 더욱 후퇴했다. 과거엔 총재라는 존재가 있었어도, 당무회의나 정무회의가 있었다. 30~40명이 자기 의견을 각자 개진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자리였다. 총재가 최종결정을 내리긴 해도 그 목소리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총재에 권력이 집중됐다고 해서 집단지도체제로 바꿨는데, 이는 사실상 최고위원회의에서 9명이 모두 결정하는 구조다. 그나마도 합의도 아니고 협의제기 때문에, 결국은 대표최고위원 마음대로나 다름이 없다. 더욱 권력이 집중된 셈이다. 당대표 1인 체제로 당내 의사결정구조가 퇴보돼 있다.

 형식적으로 상임전국위원회가 있는데, 이게 분기별, 혹은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 열린다. 이게 실질적으로 의사결정구조가 되겠나. 지금 체제에서 매번 선택을 잘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당이 망하는 거다. 그런데 아무도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의 당 개혁에 대해선 모두 입을 닫고 있다.

   
▲ "궁극적으로 정치라는 것은, 거창할 것 같지만 사실 상당히 단순한 일이다. 다만 책임이 있는 자리다. 정치인은 대형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라고 보면 된다. 그 안에 탄 승객들이, 잠도 자고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최대한 편안해야 하는 것이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인명진 비대위원장 시절 내가 뼈를 깎는 혁신을 주문했다. 당사를 옮기자고 수 차례 건의했다. 지금 정당 보조금이 전부다 당사 건물 임대료, 사무처 직원들 월급으로 나간다. 사무처 직원들이야 필요하다 치더라도, 당사 건물이 왜 꼭 여의도 비싼 빌딩에 있어야 하나. 내가 김포에 싸게 빌릴 수 있는 넓은 유휴지도 알아봤다. 기자들이 오기 불편하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당이 위기던 시절, 먼지가 풀풀 날리던 천막당사를 치고 있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때도 견뎌냈다. 그냥 귀찮은 것이다. 천막당사 시절엔 국민들이 그래도 우리가 반성하고 있다고 알아 주셨지 않나. 당내 민주주의가 실종되니 당을 개혁하자는 목소리도 작아지고, 결국 대표에게 의존하는 퇴행적인 상태가 됐다. 그러니 무엇인가 변화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 아닌가.

 정치인은 대형 버스의 운전사

궁극적으로 정치라는 것은, 거창할 것 같지만 사실 상당히 단순한 일이다. 다만 책임이 있는 자리다. 정치인은 대형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라고 보면 된다. 그 안에 탄 승객들이, 잠도 자고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최대한 편안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 운전을 해야 한다. 많은 승객을 태울수록 책임은 더 커진다.

 그런데 난폭운전을 하거나 불안감을 주면 어떡하나.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와 현 정치권에 우려가 많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지만, 안보 문제, 원전 문제 등에서 지금 급격한 운전으로 승객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치라는 것이 여야가 나뉘고 서로 경쟁도 하고 비판도 하면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결국 국익을 앞세워서 크게 보고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너무나 당파적 싸움에 물들어있다. ‘3김 시대’에 정치를 배운 마지막 사람으로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엄밀히 말하면 나도 책임이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래서 더더욱 내 손으로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 지역구인 서대문구에도 할 일이 산적해 있고,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해야 할 과업으로 통일도 남아있다. 내 정치의 마지막 목표는 그런 것이다. 국민들을 모시고 운전을 잘 하는, 그런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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