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학이 남긴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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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학이 남긴 ‘적폐’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7.11.16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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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적법(適法)의 다른 말은 정의(正義)가 아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 정부가 적법 운운하며 홍 후보자를 품는 논리는, 그동안 부의 대물림을 ‘적폐’로 규정하며 재벌을 비판하던 모습이 말 그대로 ‘정치보복’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증명할 뿐이다. 적법을 핑계로 감싸는 것이야말로 정수(正手)는 무시당하고 꼼수가 선호되는 세계의 일그러진 표상, 다시 말해 그들이 청산해야 할 적폐에 가깝다.ⓒ시사오늘 김승종 그래픽디자이너

당동벌이(黨同伐異).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같은 편이면 무작정 돕고 상대는 배척하는 모습.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집약한 표현으로 이보다 적당한 말이 없는 듯하다. 청와대와 여당은 ‘홍종학 구하기’에 몰두한 나머지 허물 감싸기에 급급하고, 야당 또한 ‘홍종학 낙마’에만 혈안이 돼 문제가 없는 가족의 재산 규모를 공개하고 나섰다.

‘홍종학 논란’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당시 만 13세였던 홍 후보자 딸은 8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증여받고, 이에 부과된 증여세 2억 2000만 원을 내기 위해 모녀간 차용계약을 맺었다. 딸은 현재 중학생 신분으로 부동산 임대료를 통해 어머니에게 빚 이자를 갚고 있다. 이후에도 홍 후보자와 아내는 처가로부터 억대의 부동산을 물려받았고, 이를 또 모녀가 여러 차례 쪼개 나눠 받은 바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대를 건너뛰며 증여하면서 1억 가까이 세금 줄였다는 분석이다.

홍 후보자는 중학생 딸이 내야 할 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모녀간 차용거래’라는 국민 정서와 어긋난 ‘꼼수’를 사용한 것이다. 국세청이 이를 절세 방법으로 추천했다곤 하지만, 국세청 홈페이지를 뜯어봐도 ‘상속세를 줄일 수 있다’ 정도만 언급되어 있을 뿐 자녀에게 큰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쓰라고 말하진 않았다. 이 꼼수는 상속 및 증여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적법하지만, 법망의 허술함을 파고들어 생긴 명백한 편법증여다.

이 문제를 두고 절세인가, 탈세인가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순 있다. 또, 자질과 증여 문제는 별개다. 홍종학 후보자가 본인의 소신처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대변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청와대와 여당이 홍 후보자를 품는 방식이다. 법을 어기지만 않으면 문제가 될 것 없다는 이들의 태도는 그동안 무수한 편법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던 재벌들을 향해 ‘적폐청산’의 칼날을 휘두르던 모습과 사뭇 대조되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태도를 보면 적법의 다른 말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 주장대로라면 그들이 비판하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재벌 총수 자리 유지를 위한 출자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당한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것들이 모두 정의가 되어버린다. 이것들이 민주당이 늘 외치는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는, ‘부정의’라고 해도 말이다.

정부가 적법 운운하며 홍 후보자를 품는 논리는, 그동안 부의 대물림을 ‘적폐’로 규정하며 재벌을 비판하던 모습이 말 그대로 ‘정치보복’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증명할 뿐이다. ‘정의로운 경제’를 주장하던 당의 정치인이 절세를 위해 편법을 사용한 것도 충분히 국민들의 배신감을 살 만한 일인데, 이를 적법이니 괜찮다며 감싸는 것이야말로 정수(正手)는 무시당하고 꼼수가 선호되는 세계의 일그러진 표상, 다시 말해 그들이 청산해야 할 적폐에 가깝다.

조세정의(租稅正義)라는 말이 있다. 국가는 세금을 모아 법을 만들고, 정책을 실현하며, 국가의 복지와 경제를 책임진다. 즉 조세는 모든 사회시스템의 근본이자 국가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그게 바로 조세 뒤에 정의라는 무거운 단어가 붙은 이유다.

편법 증여는 조세정의에 어긋난다. 그리고 이를 ‘적법’이라며 문제를 외면한 정부는, 출범 시 조세정의를 통한 소득 재분배와 복지 확대를 내세운 정부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정부가 적폐의 길을 선택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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