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합당이 양당제 구도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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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합당이 양당제 구도를 만들었을까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7.11.20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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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거대양당구도 부른 것은 ´소선거구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1985년의 김영삼(YS)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대중(DJ) 전 대통령. ⓒ뉴시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 한국의 양당제 구도를 불렀을까.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오늘날 거대양당 체제를 고착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1990년 3당 합당”이라며 “13대 총선에서 국민이 만든 4당 체제가 90년 3당 합당을 통해 양당체제로 재편된 것”이라고 적었다. 하 의원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YS의 길보다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길을 가고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 의원의 이 주장은 ‘팩트’로 보기 어렵다. 안 대표의 행보가 YS인지, DJ인지는 지금 시점에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지적할 수는 없다. 그러나 13대 국회의 4당 체제를 국민이 만들어준 것인가와, 3당 합당이 양당체제를 부른 것이 아니라는 점은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듀베르제의 법칙’에 따르면 소선거구제 하에선 양당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이론을 꺼내지 않아도 한국의 정치 상황은 기본적으로 두 세력 투쟁의 구도였다. 정당의 개수와 무관하게, 민주화 이전에는 군부정권과 YS, DJ를 중심으로 한 야당 간의 전투였고, 그 이후에는 YS와 DJ, 영남과 호남의 경쟁이었다. 그리고 후자가 고착화되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3당 합당이 아닌 소선거구제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 보자. 하 의원이 이야기하는 13대 총선과 1990년 3당 합당이 일어나기 전 상황이다.

1987년 대선 때 단일화에 실패한 YS와 DJ는 완전히 갈라섰다. 13대 총선이 다가오자, 야권이 분열돼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양 진영은 야권통합을 시도했다. 당시 야권통합의 조건으로, 평민당을 이끌던 DJ 측의 요구는 소선거구제로의 전환이었다. 최측근이었던 김덕룡(DR)과 차남 김현철이 YS를 속리산까지 쫓아가며 '소선거구제로 총선을 치를경우 민정당 평민당에 이어 3당이 될 것'이라며 말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YS는 야권통합을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선거구제로 전환은 이뤄졌지만, 결과적으로 YS와 DJ의 통합은 실패했다.

솔직히 말해 대권을 눈앞에 둔 두 야권 정치 거물의 다툼으로, ‘별 수 없이’ 4당 체제가 이뤄진 것이 13대 국회다. 이로 인해 다시 군부세력이라 볼 수 있는 민정당과 공화당이 13대 국회에서 다시 야권을 제치고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YS는 ‘군정종식을 위한 차선’으로 3당합당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에도 꼬마민주당을 비롯해, 자민련 등 다당제로 가는 듯한 시도들은 이뤄졌지만 결국 양당제로 회귀했다. 이와 관련, 대구를 지역구로 둔 유성환 전 국회의원은 “소선거구제가 양당제와 지역주의를 고착시키는 주범”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YS는 정권을 잡기 위해 3당합당 카드를 꺼냈지만, 소선거구제는 원치 않았다. 그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군정은 종식됐고, 소선거구제는 남아서 다시 군소정당들을 향해 ‘거대 양당 구도’를 촉구 중이다.

하태경 의원에게 되묻고 싶다. 3당합당 없이 군정을 종식시킬 수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거대 양당구도의 핵심 원인이 소선거구제가 아닌, 3당합당에 있다고 생각하는지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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