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영삼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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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김영삼계 안한다”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9.03.25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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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김대중 거치며 정치활동
8대 총선 거치며 'YS 맨으로'

①만남의 시작 

김영삼의 뒤를 이어 김대중과 이철승이 잇따라 ′40대 기수론′에 동참하며 차기 대통령후보 경쟁의 열기가 무르익던 70년 5월. 

‘4.19, 6.3 범청년민주수호투쟁위원회’ 멤버인 최형우가 신민당 울산 울주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됐다.

▲ 한국조사연구소에서 김영삼과 최형우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뒤에 조병옥 박사의 그림이 이채롭다.
패기로 똘똘 뭉쳐진 최형우는 위원장에 당선된 후 울산의 태화강변에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한다. 계획을 세운 최형우는 부산 경남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던 김영삼 참석을 권유하기 위해 서울 무교동 광남빌딩으로 향했다. 

광남빌딩은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치르기 위한 김영삼의 개인사무실. 사무실을 찾은 최형우는 김영삼의 비서인 김봉조에게 간곡한 어조로 청했다.

″태화강변에서 대규모 단합대회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총무(김영삼)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꼭 나오도록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최형우는 김봉조에게 ′꼭′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말하며 김영삼의 참석을 부탁했다.
″알았소, 내 총무님께 전해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김봉조 비서는 김영삼에게 최형우의 부탁을 전달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참석할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참석하고 싶지만 그날은 다른 일정이 잡혀 있어서 어렵겠습니다.″ 
″뭐라고, 나 김영삼계 안한다. 너희들끼리 잘 해봐.″ 

화가 난 최형우는 소리를 지르며 광남빌딩 사무실 문을 발로 박차고 나갔다. 

″최형우 지역구는 무조건 가야 한다″

그리고 최형우는 곧바로 광남빌딩 건너편의 삼흥빌딩 11층 김대중 사무실로 찾아갔다.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 원외위원장이 상대편으로 가자, 김영삼 캠프는 난리가 났다. 

김영삼은 최형우의 동국대 동문이자 ‘4.19, 6.3 범청년민주수호투쟁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박희부를 급히 불러 최형우 설득을 부탁했다. ″박동지,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최형우를 한번 만나 주시오.″

김영삼의 밀명을 받은 박희부는 최형우를 급히 만났다.
″형님(최형우), 이럴 수 있소, 가만히 있지는 못할망정, 김대중 캠프로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야, 너도 봤잖아. 내가 단합대회를 한다는데 김영삼이 못 온다고 하잖아. 무슨 놈의 정치를 그렇게 하냐. 난 앞으로 김영삼계 안한다.″ 

최형우가 거칠게 받았다. 하지만 박희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형님, 그렇다면 앞으로 얼굴 서로 보지 맙시다. 이 길로 서로 끝입니다.″ 

박희부가 대들자 최형우가 한발 물러섰다.
″알았다, 내 생각해 보지. 하지만 김영삼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김영삼계 한다, 안한다′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갈등을 겪어오던 최형우가 완전한 김영삼 사람이 된 것은 국회의원 8대선거를 앞두고다. 

최형우의 지역구인 울산 울주는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정성을 들이던 곳이었다. 때문에 신민당 자체 조사에서도 최형우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로 조사됐다.

8대 총선이 본격화된 어느 날, 신민당 고위당직자 회의. 

″시간이 없습니다. 당선이 가능한 곳으로 지원유세를 하셔야 합니다. 김영삼 후보는 울산 울주 내려가 지원유세 할 생각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을 한 번이라도 더 가셔야 합니다.″ 

이에 김영삼은 단호했다.
″최형우 지역구는 무조건 가야 합니다. 최형우의 당선이 곧 나의 당선입니다.″ 

김영삼은 고집을 부렸고, 고집대로 최형우를 지원유세 했다. 이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결국 8대 총선에서 36살의 최형우는 이후락의 텃새를 이겨내고 금배지를 달았다. 그의 국회 입성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김영삼의 헌신적인 지원유세 때문이었다. 

이로써 그는 진짜 김영삼 사람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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