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의 풍수야화>명당도 주인 만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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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의 풍수야화>명당도 주인 만나야
  • 조광 풍수연구가
  • 승인 2010.11.2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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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막대 잡고 또 한 손엔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터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백발가」 우탁)   
 
옛날 법도에 의하면 집안 어른이 나이 육십, 즉 환갑에 이르면 자식들은 으레 어버이를 위해 미구에 떠날 준비를 한다. 행자목을 켜서 관곽을 짜고 그 위에 새까만 옻칠을 두어 차례 거듭 덧칠을 붙이고는 유지로 정성들여 싸서 뒷켠 처마 밑에 매달아 둔다고 했다. 
 
 
철쇠에 손이 찰싹 붙는 겨울철 한밤중에 그 널찍한 관이 탕 하고 자지러질 듯 갈라지고 나면 그 몇 달 뒤나 그 당년에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시게 된다는 미신을 믿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요즘은 웬만하면 보험을, 그것도 종신보험을 들어놓고 자식의 준비가 아닌 자기 스스로 죽을 날을 기다린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한 지인으로부터 죽음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라는 질문을 받자 “죽음이란 모차르트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라며 황량한 대답을 했다.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이들을 묘 앞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그가 전혀 연고가 없더라도 그의 삶이 궁금해지곤 한다. 묘의 관리 상태를 보면 그의 삶도 얼추 그려지기도 하지만 풍수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묏자리로 그의 살아 생전의 삶이 대개나마 추측이 가능하다.

경기도 북한강변엔 막내딸을 왕에게 시집 보낸 한 아버지의 묘가 있다. 왕비는 임금인 남편 앞에서 아버지의 묘가 없다며 슬퍼하자 곧바로 묘를 쓰게 했다고 하는데 명당이라 하여 자리를 잡았을 그 묘에 앉아 있자니 마음이 편키는 커녕 불편하기까지 했다.
 
물론 앞이 탁 트이고 양지바른 곳이라 시선으로는 전혀 답답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수십 기의 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묘는 썰렁했고 넓은 터는 오히려 지나치게 넓어서 더 황량했다. 집터도 마찬가지지만 묘 또한 넓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명당은 느낌으로 우선 아늑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곳이어야 한다. 더욱이 그림의 이 묘는 혈 뒤로 맥이 시원칠 못하다. 좌청룡 우백호는 안으로 잘 감싸고 있지만, 음택지 보다 양택지로 더 적합하다.
 
마침 앞 강 건너 안산(묘의 앞쪽에 있는 산)은 부봉사로 가마솥을 엎어놓은 듯한 형상을 가지고 있어, 이 자리는 식당이 들어앉으면 손님을 많이 끌을 수 있는, 재물을 모으는 터다. 아무리 좋은 터라 해도 그 땅이 제 주인을 만났을 때 비로소 그 기운은 더 힘이 넘친다. 마음이 편치 못했던 이유는 이래서였다.

다음까페 조광의자연풍수 (http://cafe.daum.net/mirpoong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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