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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녀, 1987년 이전 체제에서 키우시겠습니까?
<기자수첩> 군사정권에 대한 ‘향수’는 반민주주의 ‘악취’를 풍긴다
2018년 01월 11일 18:18:22 한설희 기자 sisaon@sisaon.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1981년, 당신의 자녀가 지난 밤 독서모임을 하던 중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체포됐다. 경찰은 당신이 평생을 바쳐 키워온 아들딸들에게 손가락질하며 ‘빨갱이’라고 한다. “제 새끼는 빨갱이가 아니에요”라는 말만 반복하던 당신은 며칠 후 잔혹한 고문으로 인해 피멍이 든 자식과 조우한다. 경찰이 증거라며 내민 서적에는 황망하게도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역사학의 교과서,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 포함돼 있었다. (1981년 9월 부림사건)

비단 그 시절뿐일까. 그보다 10년 전이었던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난데없는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당신의 자녀는 ‘빨갱이’라며 소리 소문 없이 ‘고문기술자’에게 끌고 갔다. 옆집 아들은 술자리에서 김일성 이름 석 자를 말했다고 끌려갔고, 앞집 딸은 군인에게 희롱당했다. 아들들의 머리는 강제로 깎였고, 딸들의 치마길이는 무릎 위 20㎝를 넘길 수 없었다. 자녀가 좋아하는 대중가요엔 금지곡 딱지가 붙었고, 자녀는 침묵과 순응을 강요당했다. (유신체제 긴급조치 9호)

   
▲ 영화 〈1987〉이 흥행하며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제1야당이라는 자유한국당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1987년 이전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낡은 정치를 펼치고 있다. ⓒ시사오늘 그래픽 김승종

영화 <1987>이 흥행하며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1987년 이전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낡은 정치’를 펼치고 있다.

‘보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에 따르면, 보수는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동시에 보수는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과거를 그리워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의 기성 보수층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통치와 고문이라는 만행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해졌고, 그의 철저한 계획 하에서 이뤄졌던 빠른 경제성장만을 되새김질하게 됐다.

문제는 한국당이 이를 말리고 새로운 보수로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자극하며 부추기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 ‘힘들었지만 경제적 보답이 있었던’ 박정희 시대에 대해 극히 단면적인 부분만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친박 청산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고, 마치 당시의 정권을 계승한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박정희의 초상화를 당사에 걸었다.

대체 언제까지 반자유주의·반민주주의의 상징인 ‘박정희’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있을 것인가. 양심에 손을 얹고, 자신들의 자녀를 앞서 말한 시대로 돌려보내 키울 수 있겠는지 되묻고 싶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부영·김정남·안상수 등 1987년의 영웅들 중 한국당의 전신을 거친 사람은 많다. 그들은 하나회를 숙청했고, 군부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던 일원이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재산공개법을 도입한 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때 군부독재에 같이 맞서 싸웠다는 영광스러운 과거는 박정희를 놓지 못하면서 지워졌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국민들, 특히 청년층에게 보수는 권위주의로 회귀하려는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젊은 층이 국내 제1보수당에게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되면서, 주 지지 기반인 노인층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됐고 결국 세대 갈등은 심화됐다. 장년의 보수층은 ‘어버이연합’으로 대표돼 청년들에게 조롱받고, 반대로 진보 청년층 역시 ‘종북 세력’이라는 말로 공격받는다.

계층 간 필요 이상의 갈등은 사회 통합을 방해하고,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 진보든 보수든 좌우 이념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존재한다. 본래의 목적인 '사회 통합과 공동체 구현'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는, 결국 박정희의 유산이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온실 속 화초라 불리던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황야로 나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현실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확고한 보수철학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987년 이전의 낡은 지역주의와 성장 만능주의, 권위주의라는 시대착오적 가치가 2018년 한국에 건재한다는 것은 슬프고도 비참한 일이 아닌가. 1987년 이전 독재 군사정권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보수는, 반민주주의를 선동하는 ‘악취’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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