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문 최고위원께 배신 당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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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문 최고위원께 배신 당한 기분입니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7.29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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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아무도 예상 못한 고흥문의 깜짝 인사

#1. 집단지도체제로 바뀐 전당대회가 끝나고 새로운 인사개편을 하게 되었다. 주류에 있던 고흥문 씨가 비주류인 이철승 씨 쪽에 가세해 이철승 대표최고위원이 탄생함으로써 당연히 고흥문 최고위원의 기세는 돋보였고, 따라서 고흥문 최고위원의 발언권에 힘이 실렸다.

중앙당 집행부서는 최고위원 간에 나눠 가지게 되는데, 그중 총무국장·조직국장·선전국장이 노른자위로 당권파에서 조직국장을 차지하고 다음이 총무국장인데 그 자리가 고흥문 최고위원 몫으로 떨어졌다.
 
계보 내에서나 다른 계보에서조차 먼저 총무 부국장으로 대과없이 자리를 지켜온 내가 당연히 총무국장이 되는 줄 알았는데,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총무국장을 김형중 씨로 바꾸어 발표했다.

나의 정치적 장래를 자기가 책임진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 불모지에서 고흥문 계보를 창설하면서 쌓은 신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기 치듯 깜짝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 나는 고흥문 씨를 만나 말했다.

“어떻게 사전사후에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신뢰를 저버리는 깜짝인사를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오늘부터 정치를 그만두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이 사람아, 그만두다니 내 말 좀 들어보게.”

“듣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이유나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그동안 최고위원님을 위해서 봉사한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 이유는 말씀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사람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말할게. 계보의 일부에서 자네가 김영삼계의 김재경과 가깝고 잘 어울린다고 자네를 의심하는 말들을 해서, 내가 그만 깊이 생각지 않고 하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됐네. 나를 용서하고 다시 한번 나를 도와주면 내가 힘껏 자네를 배려하겠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김재경은 중앙당 민주전선 업무 부국장입니다. 민주전선의 예산문제에서부터 민주전선 신문의 배포에 이르기까지 총무국에 와서 상의도 하고 결제도 받고 업무장 서로 공식 라인을 통해서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입니다.
 
또 아시다시피 김영삼 계보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지 않았습니까? 하루아침에 비주류가 됐다고 그동안 지내온 정리까지 무 자르듯 잘라야 합니까? 그동안 김재경과 친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저를 불러서 물어보시고 잘못이 있으면 추궁하시는 것이 어른 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사도 구별 못하고 김재경과 놀아난다고 보셨습니까? 혹여 김영삼 총재라면 의심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최고위원님에게 철저히 배신당한 기분입니다. 정치 자체를 그만 두고 싶습니다. 잘해보십시오.”

“이 사람아, 내가 잘못했네. 그만둔다는 말은 하지 말고 한 번만 나를 더 믿어주게. 앞으로는 결코 이런 일이 없을걸세.”

그런 들으나 마나 한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 자리를 물러 나왔다. 그 후 한참 동안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는데, 나를 당기위원으로 추천해서 중앙당 당기위원이 되어 있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고르는 것도 잘 골라야 하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르는 데도 철학적인 심사숙고를 하지 않고 눈앞의 돌아가는 형편과 인정, 작은 이익 등 잡다한 항목만을 보고 입에 발린 유혹에 넘어가 따라간 결과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 또 반성을 했다.

내 잘못이다. 내가 모자랐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잘못한 것이 고흥문 씨를 선택한 것이었고, 그 선택이 마지막 나의 희망을 앗아간 결정적인 잘못이었다. 그 시기가 나이로 볼 때 나의 황금기였는데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그 선택을 되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은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도와주시기를 반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너무 상심하지 말고 사업이라도 열심히 해”
 
#2. 김현기 의원 보좌관 심창섭 씨가 전화를 해왔다.
“노 국장님, 힘이 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우리 영감님(김현기 의원)이 내일 아침 불광동 집으로 오셨으면 좋겠다고 연락하라고 하셔서 전화를 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내일 아침 일찍 다녀가시지요.”

그래서 다음 날 김현기 의원댁으로 찾아갔는데, 김 의원은 건강이 매우 나빠 집에서 치료를 받고 요양을 하고 있었다. 김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누운 채로 고통을 참아가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노 국장, 미안혀. 노 국장은 국회에 들어와서 나와 같이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이번 일로 너무 실망할 것 같아서 내가 위로라도 하려고 오라고 했어. 보다시피 요새 내가 건강이 안 좋아서 이리로 오라고 했으니 이해해줘. 노 국장은 다른 사람보다 그래도 사업도 열심히 하잖아? 이번에 너무 상심하지 말고 사업이라도 열심히 혀. 내가 재무위원이니까 그 방면에서는 내가 노 국장을 도와줄 수 있어. 내가 힘껏 도와줄게.”

김 의원은 이런 말로 나를 위로하며 간곡하게 설득했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었다. 김 의원 자신의 생각인지 고흥문 최고위원의요청으로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평소 김 의원과 나의 친분으로 보아 독자적으로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믿고 싶고 또 믿었기에 나는 김 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았습니다. 내 걱정 말고 열심히 조리해서 빨리 건강이나 회복하세요.”
아픈 사람에게 긴말을 하는 것도 실례고 해서 나는 곧 그 집에서 나왔다. 그 후 김 의원은 내가 신월동에서 연립주택 16세대 지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그 당시 나는 기초공사만 시작해도 분양이 끝나 순차적으로 내 돈 없이도 들어오는 분양금만으로 공사를 끝냈는데, 양도 소득세가 부가되는 88투기억제조치의 시행으로 분양이 전혀 안 되어 자금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때 김 의원이 직접 재무부장관에게 부탁해 주택은행을 통해 곧바로 해결해주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재무부장관의 말 한마디에 일선은행에서는 내가 큰 인물이나 되는 양 돈을 내주면서도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군사정부의 관치금융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놀라면서도 나는 그 돈으로 발등의 불을 껐다. 이런 행태를 없애자고 투쟁하는 사람으로서 사업운영을 잘못해 관치금융의 수혜를 직접 경험하면서 나는 나의 미숙과 무능을 자탄하며 한계를 되씹었다.

김영삼 총재와 등을 돌리고 이철승 대표와 손을 잡은 고흥문 씨는 공화당이 유일하게 야당 몫으로 주는 국회 최고직인 부의장을 이철승 씨에게서 지명받아 국회 부의장에 오르며 채규희 씨를 비서실에 앉혀 그나마 원외당원에게 공직의 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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