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게시판, 효과보단 배출구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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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게시판, 효과보단 배출구 역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1.20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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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명 동의 얻은 청원 7건…5건 답변 완료 2건 답변 대기 중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20만 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총 7건으로, 5건에 대해서는 이미 정부의 답변이 등록됐고, 나머지 2건은 답변 대기 상태다 ⓒ 청와대 홈페이지

취임 당시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 철학이 가장 잘 반영된 공간이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다. 청와대는 국민청원 게시판을 열면서,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답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지난 4년간 ‘불통(不通)의 시대’를 지나온 국민은 청와대가 제공한 소통의 기회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지난해 8월 개설된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5개월 동안 9만3000건이 넘는 청원이 등록됐다. 이 가운데 20만 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총 7건으로, 5건에 대해서는 이미 정부의 답변이 등록됐고, 나머지 2건은 답변 대기 상태다.

어떤 청원이 있었나

처음으로 국민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청소년 보호법 폐지’ 제안이었다. 부산 사하구 여중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관심을 받은 청소년 보호법 폐지 청원은 무려 29만6330명의 공감을 샀다.

그러나 정부의 답변은 ‘처벌 강화가 해법이 아니다’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친절한 청와대’ 영상에서 “형벌을 아주 강화한다고 범죄가 줄지는 않는다. 범죄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여러 방식으로 감옥에 안 가고도 교화가 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 모두는 통상 감옥에 보내는 것만 자꾸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청소년 보호법 폐지는 어렵다는 의미였다.

정부가 두 번째로 답변을 내놓은 청원은 ‘낙태죄 폐지·자연유산유도제 합법화 도입’ 제안이었다. 청원자는 “원치 않는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며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유도제 합법화 국내 도입을 부탁한다”고 썼다.

이에 대해 조 수석은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 번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 사건이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답했다. 정부가 앞장서 움직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공론화를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 지난해 8월 개설된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미 9만3000건이 넘는 청원이 등록됐다 ⓒ 청와대 홈페이지

주취감형 폐지와 조두순 출소 반대에 대한 청원도 있었다. 주취감형으로 인해 형이 단축된 조두순이 오는 2020년 출소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취감형 제도를 폐지하고 조두순 사건을 재심하라는 요청이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주취감형 폐지·조두순 출소 반대에 관해서도 조 수석은 “청원 참여자들의 분노에 깊이 공감하지만, 현행법상 재심 청구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재심은 유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알고 보니 무죄거나, 죄가 가볍다는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는 등 처벌받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만 청구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주취감경 역시 “형법상 주취감경 조항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감경사항에 관해 함께 규정하고 있어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중증외상분야에 대한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청원도 20만 명을 돌파했다. 외과를 외면하는 의대생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외과를 선택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청원자의 지적에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답변자로 나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이에 공감하면서 “모든 국민들이 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권역외상센터의 위상에 걸맞게 헌신하고 있는 기관에게는 충분한 보상과 지원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과 전안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개정 청원 역시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정부 답변을 기다리는 상태다.

실질적 효과 없지만…배출구 역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제도나 시스템 변화는 법 제·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행정부에는 그런 권한이 없는 까닭이다. 동의자 수가 20만 명을 돌파한 5건의 청원 중 실제로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중증외상분야 지원 문제뿐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국민청원 게시판이 ‘포퓰리즘’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비판도 내놓는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지난해 11월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해 “청원은 엄연히 법적으로 근거와 제한이 분명한 법제도인데, 기준에 대한 내용은 쏙 빼고 청와대가 뭐든지 이뤄줄 것처럼 과장해 게시판을 운영 중”이라며 “청와대 관계자들이 마치 해결사인 듯 공식답변을 내놓는 것은 소통을 가장한 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민청원 게시판의 긍정적 기능에 주목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지만, 국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場)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는 주장이다.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는 19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분명 부작용도 있지만, 국민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불만을 나타낼 수 있는 배출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본다”며 “게시판에 쏟아지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잘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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