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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천천히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낸시 비에이라의 '최고의 목소리'를
<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25)> 카보 베르데 해방둥이 낸시 비에이라(nancy vieira)
2018년 01월 23일 15:28:26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카보 베르데 해방둥이 nancy vieira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낸시 비에이라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카보 베르데 최고의 목소리'로 평가를 하고 있다.  대단히 정확하고 감정 조절이 뛰어난 가창력 때문에 그런 평가를 하는 듯하다. 또 그녀는 뮤지컬적인 감성이 풍부하여 어쩌면 고전적인 분위기까지 자아내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대체 카보 베르데가 뭐지?"하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카보 베르데(Cape Verde)는 아프리카의 조그만 섬나라 이름이다. 아프리카 서쪽(세네갈) 끝, 베르데 곶 서쪽에 있는 공화국으로 열여덟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생업은 커피 재배와 어업이고, 주민은 대부분 흑백 혼혈이며, 공용어는 포르투갈 어이다. 1975년에 포르투갈에서 독립했고, 수도는 프라이아*이다. 아무튼 이 베르데 곶 근처에는 십 여 개의 아주 작은 신생국들이 밀집돼 있다. 바로 이곳 기니비사우 아래 지역이 요즘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해 수 만 명이 감염돼 수 천 명이 사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에라리온, 기니, 라이베리아 등이 그곳이다.

낸시 비에이라는 1975년 비사우*에서 태어났다. 당시 비사우에서 그의 아버지는 카보 베르데 독립투쟁을 하면서 기니비사우의 독립투쟁 지도자 아밀카르 카브랄*과 합류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같이 활동을 하던 아밀카르 카브랄은 안타깝게도 포루투갈의 식민지를 종식시키는 1974년의 카네이션 혁명* 한 해 전인 1973년 암살됐다. 카보 베르데는 낸시 비에이라가 태어나던 해 독립됐다. 우리나라도 바로 이런 아이들을 일컬어 '해방둥이'라고 했다. 비에이라가 카보 베르데의 해방둥이인 셈이다.

그런데 또 궁금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럼 기니비사우는 또 뭐냐?"라고 말이다. 기니비사우는 세네갈과 기니 사이에 있는 비사우 지역으로 1974년 이곳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아무튼 당시 이곳 아프리카 서부지역은 독립운동 등으로 용광로처럼 끓던 곳이다.

낸시 비에이라가 태어난 후 4개월이 지나 낸시 비에이라 가족은 현재 카보 베르데의 수도인 프라이아로 이주하게 된다. 프라이아는 카보 베르데에 있는 열 개의 열도 중 하나인 Santiago에 있는 수도이다. 낸시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고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하다. 독립 후에 그의 아버지는 교통문화부 장관을 지내다가 10년후 쯤 Barlavento Islands의 주지사가 됐다.

낸시가 14살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포르투갈 대사로 부임하게 되는데 이후 낸시는 리스본 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게 된다. 한 날은 친구들과 어떤 음악 콘테스트에 참여했는데 그녀가 흥얼거리는 것을 듣고 심사위원들이 그녀에게 노래해볼 것을 권유했고 뛰어난 가창력 덕에 그녀는 Disco Norte label의 앨범을 녹음 할 수 있는 부상을 받게 됐다. 이로써 낸시는 1996년 Nos Raca라는 앨범을 내게 됐고 언론에 주목을 받기 시작함으로서 무명의 가수에서 당당히 떠오르는 별이 된 것이다. 8년이 지난 2004년 두 번째 앨범을 낸다. 그리고 2007년 프로 가수로 완전히 전향해 그녀의 놀라운 목소리와 독특한 개성이 담긴 'Lus'라는 대표 앨범을 내게 된다. 낸시는 종종 포르투갈의 파두 가수 Camane와 록 가수 Rui Veloso, 그리고 Alas dos Namorados와 같은 정상급 그룹들로부터 듀엣 요청을 받기도 했다.

   
▲ 카보 베르데 해방둥이 nancy vieira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이렇게 낸시가 카보 베르데의 떠오르는 별이 되는데는 또 다른 자양분이 있었다. 낸시가 다니던 중등학교는 Sao Vicente라는 곳인데 이곳은 포르투갈이 식민통치시대를 영위하고 있을 때 시인이나 모르나* 작가, 그리고 앞서 언급한 아밀카르 카브랄과 같은 탁월한 정치가들이 공부를 하던 이른바 지식의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낸시는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마리아 베타냐*, 까에따노 벨라주, 안젤라 마리아*의 음악은 물론 모르나*와 포르투갈의 파두, 카보 베르데의 전통음악인 콜라데라스(coladeras), 영국 팝, 쿠바의 룸바와 손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 낸시의 음악은 카보 베르데 전통음악 모르나의 '맨발의 디바'라고 일컬어지는 에보라(Cesaria Evora)와 레퍼토리나 음악적인 화음 등은 같지만 그들의 음악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즉 낸시의 목소리는 직접적이고 명쾌한 점이 있어서 껄쭉하면서도 무더운 열기와 같은 에보라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음색과 음악 분위기로 비교되기도 한다. 물론 둘은 살아온 여정도 다르고 사회적 배경도 다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2007년에 발매된 그녀의 세 번째 앨범인 Lus는 명실상부한 카보 베르데 최고의 작곡가들의 곡이 곳곳에 들어있다. 때문에 그녀의 음반 중에는 가장 추천할 만한 음반이라 하겠다. 표제곡인 첫 곡 Lus는 '빛'을 의미하는데 어코스틱 기타와 천천히 뒤따르는 퍼쿠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후반부에서는 퍼쿠션과 보컬과 어울려 동음 반복으로서 특유의 아프리카 정서가 깊이 밴 느낌을 전해준다.

두 번째 곡 'weeping cong'은 어코스틱 기타의 리드로부터 잔잔한 노래가 시작된다. 그리고 각종의 효과음이 뒤따르는 독특함이 있다, 방울 소리, 새가 우는 소리, 쇠줄 소리, 새가 나르는 소리, 목탁 두드리는 듯한 소리 등이 골고루 나온다. 게다가 마치 녹음 잘못인 듯한 '삐ㅡㅡ' 하는 소리가 한 번 들리는데 이것도 효과음으로 넣은 것 같은데 마치 녹음상의 오류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 곡은 아주 재미가 있다.

네 번째 곡은 티토 패리스(Tito Paris)와 같이 부르는 듀엣곡인데 다른 곡들 보다는 약간 스피디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르는 둘의 화음은 아주 뛰어나서 곡의 흐름을 더없이 아름답게 만든다. 아홉 번째 트랙의 'That's morna'는 전형적인 모르나 풍의 노래로 매우 느리고 서정적이다. 반면 10번째 곡과 11번째 곡은 보사노바 풍에 재즈를 가미한 듯하다. 다소 비트가 있고 스피디하다. 거기에 클라리넷 소리가 맛있는 양념을 해놓아 듣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낸시의 노래는 물 흐르는 듯하다. 또 잔잔하게 흐르는 우수가 가슴 깊이 배이게 한다. 정말로 듣는 이를 천천히 빠져들게 만드는 뛰어난 매력이 있다. 즉 낸시의 노래는 서정적인 것은 당연하겠지만 경쾌한 곡까지도 슬픈 정서를 깊이 담아낸다는 것이다. 때문에 쿠바음악처럼 어깨가 들썩거리는데 한편으로 우수에 깊이 빠지게 된다. 그것이 카보 베르데 음악이 가진 본질이면서 또한 낸시의 또 다른 매력인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음반을 가만히 들어보면 세션이 아주 적은 것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세션은 생각보다 꽤나 많다. 어코스틱 기타, 스틸 기타, 12줄 더블 기타, 콘트라베이스, 어코스틱 베이스 기타, 플렛리스 베이스 기타, 바이올린 2, 클라리넷, 피아노, 퍼쿠션 등이다. 물론 총주로 전체가 다 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기는 많다. 백 보컬도 있고 스페셜 게스트도 너 댓 명 되는데 티토 패리스를 제외하고는 잘 구분이 안 된다. 하지만 연주가 절대로 낸시 비에이라 목소리 앞으로 나오지 않고 음량도 절대 낸시 비에이라의 음량을 넘지 않는다. 곳곳에 뒤따르는 어코스틱 기타 소리와 잔잔한 피아노 소리, 그리고 곳곳에 노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효과음 들이 재미를 더한다. 예를 들면 콩을 나무판 위에 놓고 천천히 좌우로 흔드는 듯한 소리나 줄을 흔드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어찌 보면 참 아프리카적인 효과음이다. 기타는 어코스틱 기타를 주로 쓰는데 가끔 곡에 따라 스틸 기타 반주도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녹음 상태는 아주 뛰어나다.

   
▲ 카보 베르데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카보 베르데

이곳은 포르투갈의 항해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발견당시 무인도였으나,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 아랍인, 무어인 및 인근 서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이 섬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후 열대지방으로는 드물게 포르투갈인의 이주가 시작돼 정착촌이 건설됐다. 16세기경에는 노예무역이 번성했으나, 때때로 해적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노예무역의 결과, 아프리카인들이 끌려왔으며, 이들이 오늘날 카보베르데인의 조상이다. 노예무역의 쇠퇴이후는 대서양항로의 중간 거점항, 보급항으로서 번성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아프리카 기니-카보베르데 독립당'이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독립투쟁이 전개됐다. 19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이후, 1975년 7월 5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지리상으로는 아프리카 세네갈의 서쪽 해상 약 450Km 앞에 있다. 10개의 주 섬과 약 8개의 작은 섬으로 군도를 이루고 있다. 크게 북쪽의 바를라벤투 제도(Barlaventos)와 남쪽의 소타벤투 제도(Sotaventos)로 나뉘는데 수도 프라이아는 소타벤투 제도의 산티아구 섬(Santiago)에 있다.

* 기니비사우

정식 명칭은 기니비사우 공화국(Republic of Guinea Bissau)이다.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이며 수도는 비사우이고 공용어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북쪽은 세네갈, 동·남쪽은 기니에 접하며, 서쪽은 대서양에 접해 있다. 1960년대 초 독립전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 독립정부를 구성하고 1974년 포르투갈의 식민정부에서 독립한 나라이다.

   
▲ 아밀카르 카브랄 (Amilcar Cabral, 1924.9.12 ~ 1973.1.20)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아밀카르 카브랄 (Amilcar Cabral,  1924.9.12 ~ 1973.1.20)

바파타 출생으로 기니비사우의 민족 해방 운동가이자 농업경제학자이다. 중등교육을 마치고, 1948년 포르투갈로 건너가 리스본대학에서 농학·수력학을 공부했다. 1952년 귀국해 1954년까지 식민지정부에 근무했고, 그 후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리스본을 거쳐 앙골라로 가서 앙골라해방인민운동의 창설에 참여했고, 귀국해 1956년 동생인 루이스 카브랄(Luis de Almeida Cabral)과 함께 아프리카 기니-카보베르데 독립당(PAIGC)을 창설해 서기장이 됐다. 1963년 PAIGC를 지도해 무장투쟁에 돌입, 국토의 4분의 3을 해방시키는 등 큰 성과를 올렸으나, 독립 직전에 PAIGC 본부가 있던 코나크리에서 암살당했다. 그가 죽은 뒤 동생인 루이스 카브랄이 PAIGC의 지도자가 돼 독립을 선포한 뒤 기니비사우의 초대 대통령이 됐다.

   
▲ 카네이션 혁명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카네이션 혁명

1974년 일어난 포르투갈의 무혈 민주혁명을 일컫는다. 많은 시민들이 꽃 시장에서 사온 빨간 카네이션을 거리의 군인들이 들고 있는 소총에 달아줬다. 빨간 카네이션은 거의 완전한 비폭력 혁명을 상징하게 됐다. 우파 독재정권의 카에타누는 브라질로 망명했으며, 존경받는 장교 안토니오 스피놀라 장군이 집권했다.

카네이션 혁명 이전 포르투갈은 거의 40년 가까이 안토니오 살라자르가 세운 '신 국가' 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제국에 집착한 이 체제는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의 게릴라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좌파 청년 장교가 주축이 돼 일으킨 바로 이 카네이션 혁명 이후, 좌파 과도 정권은 1976년 민주적으로 정권 이양을 한다.

   
▲ 모르나 (Morna)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모르나 (Morna)

포르투갈에 바다의 애환을 담은 노래 파두가 있다면 카보 베르데에는 모르나가 있다. 본래 카보 베르데는 포르투갈 식민지를 거치면서 가난과 바다라는 두 가지 명제를 안고 지금까지 지내왔다. 섬나라이기는 하나 척박한 땅과 작은 영토, 그리고 40 여 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인구 때문에 커피 재배와 어업에 매달려 살고 있다. 따라서 바다는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고 그 바다에 얽힌 역사와 조상의 노예 생활, 그리고 이별, 사별, 향수 등이 애잔함으로 절절이 묻어나는 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처절하거나 궁상스러운 가락이 아니라 아프리카 특유의 경쾌한 리듬과 파도가 출렁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르나의 가수로는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가 유명하다. 그녀는 카보 베르데 항구인 민델루(Mindelo) 출신으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 밑의 7남매 중 하나였다. 12세에 결혼을 했고 17세부터 선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3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지내온다. 그러던 중 45세 때 프랑스의 프로듀서 겸 기타리스트인 호세 다 실바(Jose da silva)에게 발탁돼 세계적인 가수가 된다. 그녀의 노래는 이 책에서 소개한 또 다른 음반 '월드 뮤직 Greatest Hits Vol 2'의 '마리아 엘레나'가 있다.
 
한편 젊은 모르나 가수 세대로는 티토 파리스(Tito Paris)라는 남자 가수가 있는데 낸시 음반 중에 피처링(Featuring)으로 들어있다. 

또한 세네갈 다카르에서 태어난 마리아 데 바로스(Maria de Barros)가 있다. 바로스는 모르나에 살사와 라틴음악을 더해 또 다른 색깔의 모르나 감성을 전한다. 바로스는 2003년 첫 음반 'Nha Mundo'를 냈고, 2006년 미리암 마케바 음악상을 받았다. 또한 2008년 카보 베르데 예술훈장을 받기도 했다. 낸시의 노래와 비교하면 바로스의 노래가 더 애잔하고 소울(Soul)에 가까운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  

   
▲ 마리아 베타냐 (Maria Bethania)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마리아 베타냐 (Maria Bethania)

까에따노 벨라주의 여동생이다. 아무리 남매지간이기는 하지만 이목구비를 보면 까에따노 벨라주와 완전 붕어빵이다. 1963년 까에따노 벨라주의 제의로 음악을 시작했다. 1960년 대 후반 까에타노 벨라주, 질베르투 질과 갈 코스따와 함께 브라질의 대중음악 MPB(Music Popular Brasileira)에 일대혁신을 가져오는 이른바 '트로피칼리아` 운동을 했다. 시적인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음악적으로는 재즈, 보사노바, 삼바, 영어권 음악인 록 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브라질 정서에 담아 크게 성공한 여가수이다.

   
▲ 안젤라 마리아 (Angela Maria)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안젤라 마리아 (Angela Maria)

1950년대 브라질에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 라디오 시대에 크게 성공한 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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