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8 목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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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전·현 대통령 충돌 國格훼손, ´진실’만이 解法
후진적 정치문화…선진형 환골탈태 계기로
MB, ´사실관계´ 언급없는 ´정치보복´ 함정
´법 앞의 만인평등´ - 철저 수사로 구현돼야
2018년 01월 27일 10:01:16 이병도 시사평론가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시사평론가)

한국 政治는 정권의 전환기 때마다 산고의 진통과 新·舊 대통령간 갈등, 대립, 정치보복 政爭 등 험난한 헌정사를 기록해왔다.

그 격동의 배경에는 항상 좌·우익, 진보·보수 등 정치 이념의 대결이 있었고, 수시로 부정부패 문제가 내재되었다. 이로인한 정치권의 요동으로 국운의 성쇄와 상관없이 국민은 언제나 불안했다. 대통령들의 인생도 거의 불행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화려하게 출범했지만, 말년에는 한결같이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그들은 망명지에서 쓸쓸히 임종하거나, 부하의 총에 맞아 죽고, 다음 정권에 의해 귀양가거나 감옥살이를 했으며, 탄핵도 당했다.

그같은 불행들은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 재임기간 동안 뿌려놓은 씨앗들 때문이었다. 헌정을 파괴하거나, 최고권력을 돈이나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삼은 업보(業報) 탓이었다. 당사자들은 모두 '정치보복'의 희생자라고 주장하지만, 그들 스스로 그 보복극의 주역이었음은 셈하지 않는 자기변호일 뿐이었다.

때문에 한국 정치도 그 전체가 좋은 점수를 받을 수도 없었다. 민주화가 된 후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을 108개 회원국 가운데 14번째로 정치불안정성이 높은 나라로 분류했다. 뿐만 아니라 148개 나라 가운데 72번째로 사회 불안정성이 높은 나라로도 지목했다. 사회 불안정성은 정치 불안과 직결되기에 국민들의 불안 강도도 그만큼 높았음을 입증한다.

우리의 정치불안정(Political Instability) 지수가 시리아 에티오피아 자이르 수준으로 분류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했고 여야 수평적 정권교체도 이뤄낸 한국의 정치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은 아직도 대외적으로 민망하기 그지없는 상태임을 의미한다. 더욱이 한국은 이제 쿠데타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라다. 그런데도 왜 정치 후진국으로 분류됐는가. 바로 여야의 죽기 살기식 정쟁들과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보복 시비가 그 빌미를 준 것에 다름없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대통령간의 '정면충돌' 현상도 이러한 후진적 정치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지목치 않을 수 없다. 한국 정치의 성장을 위해 그 실상과 배경, 역사적 경험 및 교훈을 살펴본다.

고강도 충돌수위, 영향권 확산 가능성

국정원 특활비 의혹을 비롯 국정원 댓글 조작 지시와 다스 실소유문제 등을 줄기차게 추적받아온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실로 오랫만에 직접 성명서를 발표, 자신과 측근들을 향한 사정수사가 '정치보복'이라며 정면 반발했다. 그는 이 성명에서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데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집사격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자 측근 회의를 거쳐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수사의 칼날이 이 전 대통령 턱밑까지 들이닥쳐 궁지에 몰린데서 나온 반응이라고 해도, 본인이 직접 성명서를 읽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한 것은 도를 넘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그 다음날 이 전 대통령의 성명에 극력 반발,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MB가 현 검찰수사를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라고 한 부문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는 놀라울 정도의 고강도 메시지로 받아쳤다. 이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모독이자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정부 모욕’ ‘사법질서 부정’ '정치 금도' 등의 표현을 써가며 노기(怒氣) 서린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현 정권과 전전 정권이 정면으로 충돌한 양상이다. 당장 검찰 수사는 물론이고 6·13 지방선거 판도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와 맞물려 있는 정치 사안에 대해 직접 의견을 표명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하필 그 내용이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니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간 정면충돌이라는 점에서 국민으로서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불행한 사태를 또 맞은 셈이다.

충돌의 여진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반박성명을 낸 그날에도, MB 정부의 청와대 등에 있었던 측근 인사 몇몇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 "현 여권의 요직을 차지한 여러 인사가 반 공개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수를 갚겠다는 말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우리라고 아는 게 없겠느냐" 같은 폭로성, 위협성 발언을 계속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잘못을 보여주는 파일을 공개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거듭된 MB반발, 舊여권과 동행

관점에 따라서는, 이 전 대통령도 당사자로서 해명하고 반박할 수는 있다. 그러려면 분명한 사실관계부터 얘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전대통령은 이번 성명에서 핵심 측근들이 구속된 특활비 문제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법원이 혐의를 인정했는데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면, 아니라는 얘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무조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수사상황을 ‘정쟁의 늪’으로 끌고 가려는 속내가 엿보이는 성명일 뿐이다.

MB의 반발은 이번 뿐이 아니다. 지난 해 9월에도 MB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대국민 인사말 형식을 통해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한다”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의 반발은 자유한국당 등 구 여권이 文정부의 대대적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최근 여권에서 검찰을 앞세워 벌이는 MB정부에 대한 수사는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 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었다. “5년도 남지 않은 좌파정권이 앞서간 대한민국 70년을 모두 부정하고 나선 것”이라고도 했다. "보수 궤멸에 적폐청산 목표가 있다(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는 주장도 나왔었다.

물론, 검찰 수사와 더불어민주당의 폭로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거 정권 적폐 들추기에, 정치보복 성격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명백히 드러난 위법과 비위 의혹을 덮어버리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실을 밝혀 위법에 대해서는 응분의 벌을 받게 하는 최소한의 조치는 불가피하다.

특히 MB정권 당시 국정원의 특활비 예산남용 실태 및 노골적 선거 개입, 야권 지방자치단체장 사찰과 탄압, 방송 장악 시도 등 제기된 불법행위 의혹들은 매우 엄중하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당당하게 진실규명에 협조하고 책임질 것은 지겠다는 자세가 국민에 대한 예의다. 이와 함께 청와대와 여권도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여론몰이가 아니라 엄정한 법 절차에 따라 진실 규명과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불필요하게 진보·보수 편 가르기나 진영 싸움으로 번지는 정치적 행동은 늘 경계해야 한다.

文 임기중 전 대통령 2명 사법처리 조짐 

문 대통령 입장에선 운명적 관계인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언급된 것에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음직하다. 거론한 이가 이 전 대통령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친노 진영에선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 배경에 이명박정부의 무리한 검찰 수사가 있었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을 딛고 정권을 잡은 만큼 적폐청산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고 주장해온 배경도 깔려있다. 현재의 수사상황은 이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론 다섯 번째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쪽으로 한 발짝 더 접근한 모양새다. 문 대통령 임기중 전직 대통령에 이어 전전 대통령까지 두명이 사법처리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와 자살은 정치 진영을 떠나 한국 정치사에서도 가슴 아픈 한 페이지였다. “논두렁 시계를 운운하며 전직 대통령을 치졸한 방법으로 망신을 줬어야 했느냐”는 자성과 함께 “정치보복은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사건이었다. 그런데 적반하장식으로 이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의혹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하니, 문 대통령은 대통령 이전에 개인적으로도 울분이 터질만 했다. 더구나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적폐청산 작업을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대목에서는 정권을 흔드는 중대 사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치보복' 시비와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재판 도중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며 국정농단 수사와 재판을 정치보복으로 몰았다. 이어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물어라”라고도 했다. 이 전 대통령도 “검찰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강조했다. 그 역시 “나에게 (책임을) 물으라”라고 해 두 사람의 입장 표명은 마치 짜맞춘 듯 똑같다. 부정·부패·비리 척결을 정쟁으로 만들고 본질을 잊게 만드는 패턴의 반복이다. 이제는 이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민주화 이후 '최대 부패정권' 정황들

MB정권이 민주화 이후 가장 부패한 정권이었다는 사실은 현재까지 나타난 수사 결과의 정황으로만 봐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의 재임 중 형 이상득과 멘토라는 최시중, 친구 천신일은 이미 모두 영어의 몸이 됐다. 이밖에도 청와대 참모·가신, 대통령직인수위·안국포럼·서울시 출신, 손위 동서에 처사촌 등 친·인척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법원이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을 구속한 것은 법과 원칙에 따른 당연한 결정이었다. 음습한 정치보복이나 정략적 판단이 담길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정치보복 타령을 하기 전에 시민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다. 하지만 그는 특수활동비 상납 등 분명한 권력형 비리조차 진영간 이념갈등으로 몰아갔다. 법치를 모욕하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검찰수사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혐의점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MB 측근이었던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진술을 했다. 2008년 특수활동비를 김 전 기획관에게 전달한 후 MB를 독대해 "청와대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으면 향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직언했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 전 대통령이 알았다는 뜻이다.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진술은 더 구체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에서 받은 특수활동비를 영부인 김윤옥 여사 측 행정관에게 전달했고, 방미 직전인 2011년 10월에는 국정원 자금 수천만 원을 달러로 바꿔 이 전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한때 MB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김 전 비서관을 '성골 집사'라고 하면서 그의 구속으로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언론에 말했다. 핵심 측근들의 이런 진술과 제기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 MB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조건 정치보복이라고만 하니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나올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검찰이 공정한 수사로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다.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법적 절차대로 하겠다"고 했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여기에 정답이 있다. 수사의 기본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의혹의 당사자를 불러 진위를 밝히고 실정법을 위반한 부분은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상황은 이미 핵심 측근의 진술이 이 전대통령의 직접적인 뇌물 수수를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부른다면 그럴 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여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검찰에 나가 해명하는 것이 온당하다.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 중 쿠데타로 처벌받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빼고 유일하게 남는 한 명이 이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할 당시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두  대통령이 국가 대사를 앞두고 성공적 개최를 위해 손을 맞잡아도 부족할 판에 정면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니 국격(國格)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 지난 18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성명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 입장을 밝히고 있는 박수현 대변인. ⓒ뉴시스

문 대통령 인식과 '신중 자세' 필요성

현재 사태는 전직 대통령이 이미 서거한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을 공방에 끌어들이고, 현직 대통령은 그런 전직 대통령에게 분노에 더해 모욕감까지 드러낸 양상이다. 김영삼(YS) 정부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 이름 아래 시작된 검찰 수사에 반발하면서 ‘골목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성명과 브리핑으로 이처럼 정면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충돌사태와 관련된 문 대통령의 추가 가담 자세는 정국전체를 ‘현 정권 대 전전 정권’, ‘문재인 대 이명박’ 구도로 만들어 형사 사법적 단죄를 정치적 이슈로 돌려보겠다는 술수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정치권과 검찰 등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의 인식에 우려되는 부문도 적지는 않다. MB정권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가 '정치보복'이었다는 문 대통령의 확신은 매우 강하고 오래됐다. 이미 자신의 회고록 '운명'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을 회고하며 노 전 대통령 수사가 ‘참여정부에 대한 증오심과 적대감에서 시작된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면서  “정치 보복의 시작은 참여정부 사람들에 대한 치졸한 뒷조사였다”고 기록했다. 관련 부분 제목부터 '정치 보복의 먹구름'이었다.

그 뿐 아니었다. 차기 대선 주자였던 더불어민주당 대표시절에도 문 대표는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행사에서 “MB 정부는 참여정부에서 외곽 위원회라도 참여했거나, 공공기관·공기업에서 임원이라도 한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탄압을 가했다”며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 취임 뒤 권력 비리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문 대표가 집권하면 당한 만큼 돌려주는 ‘한(恨)풀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는 것이 당시 언론들의 분석이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할 대목이다.

실제 이 전 대통령 시절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는 정치 보복이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에 나오는 이 두 줄에서 그가 퇴임 뒤에 겪어야 했던 압박과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헤아려 볼 수 있다. 그 핵심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관련한 권력비리 의혹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노 전 대통령의 가족은 사실상 폐족되는 멸문지화를 당했고,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정을 맞았다.

비리가 먼저 있고 징벌이 뒤따르는 것이 상례지만, 박씨 사건은 철저하게 그 반대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노무현 제압하기’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권력기관이 거기에 십자포화를 날리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된 것이다. 당시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평가가 파다했던 것도 국세청과 검찰이 박씨 사건과 관련해 벌인 ‘이상한’ 행태에서 기인하는 바가 컸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죄보다 사람을 미워한 이명박 정권이 만들어낸 한국사 최대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공명정대 수사로 '정치보복' 사슬 끊어야

그러나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직접 충돌하는 모양새는 국민통합이나 정치적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권교체기마다 되풀이되는 정치보복 논란의 사슬을 이제는 끊어낼 때가 됐다. 개인 비리는 단죄하되 관행은 제도 개선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분노’와 ‘모욕’이라는 감정적 표현을 쓴 것은 신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청와대가 뒤에서 검찰 수사를 조종해 정치 보복 또는 정치 공작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전직 대통령에게 보낸 분노의 메시지는 자칫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더이상의 언급은 자제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검찰에 강경한 수사를 주문한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급은 되도록 피해야 하며 오직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검찰에 맡기는 게 옳다.

전·현 정권의 충돌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물론이고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도 진영간 대결과 대립을 부추기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는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문 정부 출범 후 진행하는 과거에 대한 정리와 단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치소에 가둬둔 채 계속중이다. 여기에 더해 전전 대통령 코앞까지 수사의 칼끝이 다가섰으니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검찰에 불려다니는 헌정사의 불행이 고스란히 재연될 지경이다. 명백하게 죄를 지었다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책임을 물어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하지만 그러려면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공명정대 해야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런 불행을 되풀이하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이 참으로 착잡할 것임을 배려해야 할 정도가 돼야한다.

헌정혼란 배경 - 당리당략 이념政爭

그런 배려의 방향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지난 1993년 김영삼(YS) 정권시절 강력한 사정작업이 국민들에게 개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져 YS정부의 인기를 유지하는 원천이란 순기능적 기능이 있었던 반면, YS정부의 '개혁'이 '사정'과 동의어로 고착되는 바람에 정치권 금융계 군 등 사회의 주요 안정축들이 흔들리고 '정치보복 혐의'를 자초하는 역기능 우려도 적지않게 이어졌다. 사정기관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과거비리 찾기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YS정부를 '두얼굴'로 비치게 한 셈이었다.

때문에 그 때 청와대는 비리는 파헤치되 그것이 그동안 구조화된 각 집단의 비리를 한꺼번에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돌출되는 '시범 케이스'를 중심으로 정리해 나가기로 기본적 방향을 재설정 했었다.

또한 이번 MB의 반발 성명과 관련, 지난 1995년 12월에 YS정권때 벌어졌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골목성명' 사례도 다시 참조할 필요가 있다. 당시 그는 "과거정권을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운동방향"이라며 당시 YS정부 통치이념의 투명성을 문제삼고 나섰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었다. 모든 국민들이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장본인이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자신에 대한 응징을 거꾸로 좌파음모로 몰아붙이려는 방자한 태도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당리당략에 눈이 먼 정치권의 중구난방식 주장과 집권당의 일관성없는 언행이 빚어내고 있는 정국혼란을 틈타, 물귀신작전에라도 매달려 보려는 얕은 속셈에 다름아니었다. 이번 MB성명의 실질 목표와 비슷하다는 평판이 나올만도 한 대목이다.

5공 수구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이념논쟁까지 들고 나왔다는 것은 그들이 퇴진 후에도 구시대의 향수에 젖어 있음을 말해줬다. 그들은 지난날 툭하면 공안정국을 조성, 공포분위기속에서 민주인사들을 좌경 용공세력으로 몰아붙이며 탄압을 일삼았다.

원래 좌와 우는 가변적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때 과격좌파였던 프랑스혁명기의 자코뱅당도 20세기에는 자유주의 우파로 낙착되고,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도전자에게 전날의 좌파자리를 내주고 만 예를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전씨 일당은 사실 아무리 우파의 탈을 쓴다고 해도 집권야욕에 불타던 한낱 폭력세력이었을뿐 이념집단 일 수는 없는 것이다.

회개(悔改)없는 전직 대통령들

文정부 출범 후 2명의 전직 대통령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고 있는 점도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역시 YS집권 당시 법위에 군림하던 전직 대통령을, 그것도 하나도 아닌 전두환. 노태우 2인을 거의 동시에 구속 기소한 사실은 한마디로 권력에의 무조건적 맹종이라는 후진적 의식구조에서 벗어나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근대적 사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조치였다. 국민 법감정에 수용되지 않고는 결코 단행할 수 없는, 한국 정치사상 일대 역사적 사건임이 분명했다. 우리 국가사회 정신이 그만큼 앞으로 전진하고 있음을 뜻했다. 이번 박근혜 전 대통령과 MB정권에 대한 수사도 그런 방향성을 교훈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존경할 전직 대통령이 없어 불행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거기에는 물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권에 대한 정치적 보복,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폄하(貶下)가 반복된 탓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집권과정의 정당성 문제나 재임중의 독재 또는 부정부패와 실정, 독선, 오만 등으로 민심으로부터 거부당한 것이 주요인이다. 퇴임 후 추종세력과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행세하려는 언동으로 눈총을 받는 일도 잦았다.

특히 생존한 전직 대통령 4명 중 전두환.노태우씨는 사법부가 군사반란과 내란으로 판결한 12·12와 5·18사태,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으로 중형을 선고받아 옥살이까지 했다. 만약 그들이 그 후에도 겸허한 회개의 자세로 국정의 후미진 곳, 사회의 그늘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재임시의 허물과 상관없이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위의 법치…진실규명으로 이념대립 극복을

지금 한반도는 각계에서 '6·25 이후 최대 위기'라 했던 북핵 시한폭탄이 결정적 시점으로 가고 있다. 미국 국방장관이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심각하다. 그러면서, 한국사회 내부적으로는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르고, 일자리는 사상 최악이고, 젊은이들은 가상 화폐에서 미래를 찾고, 영세업체와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후폭풍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그토록 힘들여 유치한 동계올림픽도 곧 열린다.

그럼에도 정국은 현(現)+전전전(前前前) 대통령 패와 전(前)+전전(前前) 대통령 패로 나눠서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싸움에 여념이 없다. 세계의 이목이 쏠릴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또 한번 전직 대통령의 망신과 불행으로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양측 모두 나라를 위해 정치사회적 긴장과 파장을 최소화하며 상황관리에 나서야 마땅하다.

MB사태의 경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듯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죄가 있다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진실 규명을 외면한 채 정치적, 이념적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라디오방송 등에 나와 현 정권과 검찰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앞으로는 그런 행동을 삼가야 한다. 청문회에 나오라면 나가서 떳떳하게 입장을 밝히면 될 것을 '보복'이라고 원망할 일이 아니다.

지금 진행되는 검찰 수사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미래로 가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언사로 적폐청산 작업을 가로막으려 해도, 진실의 수레바퀴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건 '촛불'의 명령이기도 하다. 이 전 대통령은 구차하게 책임을 피하거나 ‘정치보복’으로 돌리려 하지 말고, ‘진실의 법정’에 서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전직 대통령들의 잇따른 불행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수록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더욱 엄정해야 한다. 정치논리가 들어설 여지를 차단하고, 오로지 사실이 말하게 하고, 증거가 입증되게 해야 한다.
검찰은 ‘팩트 수사’에 명운을 걸기 바란다.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지 못하면 정치권은 공방으로 날을 지새울 것이다. 검찰이 수사 초기 단계에서 ‘정황에 가까운 단서’를 잡았다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역대 다른 정권의 특활비 유무 여부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역대 정권들의 특활비에 얽매여 시간을 허비할 수만은 없다.

정치권이나 정부당국도 적폐 청산작업 과정에서 생긴 일들이 혹시나 나중에 과거청산 대상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빈틈없이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 전대통령에 대한 심판 역시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모든 절차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냉정해야 한다. 정치위에 법치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고 국민의 공감을 삼으로써 불안감을 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온나라를 혼돈속에 몰아넣고 있는 이 엄청난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정신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모두가 다시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새해는 한국정치가 선진국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주요한 의미를 담은 해가 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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