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매각 논란]'가해자' 산업은행…'피해자' 대우·호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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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매각 논란]'가해자' 산업은행…'피해자' 대우·호반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8.01.30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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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내 건설업계 멍들게 하는 국책은행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대우건설 매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과 건설업계에서 특혜·졸속 매각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대우건설과 호반건설 안에서는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각을 주도하는 산업은행 내부에서도 헐값 매각에 따른 후폭풍을 걱정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대우건설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몇 수 아래로 평가되는 호반건설에 팔리는 게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고래가 새우에게 먹히는 형국인 만큼, 부작용이 발생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우건설 노조는 "호반건설은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 경우 단기적 채무를 위해 구조조정을 하거나 자산을 처분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대우건설은 여전히 '금호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 12월 금호그룹은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사들인 데 따른 인수후유증이었다. 대우건설은 다시 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 임직원들만 죽어났다.

최근 기자와 만난 대우건설의 한 관계자는 "일선 현장 직원들을 쳐내더니, 회사차량까지 금호렌트카(현 롯데렌터카)를 쓰라고 하더라. 무리하게 인수하고는 결국 유동성이 떨어지니까 그 지경까지 이른 것"이라며 "이번에도 그런 일이 반복되면 절대 안 된다"고 토로했다.

호반건설의 입장도 수긍이 간다. '자신보다 몇 수 높은 위치에 있는 대형 건설사를 사들여 단번에 덩치를 키우고, 능력있는 임직원들을 순식간에 포섭한다.' 국내 중견 건설사라면 어디나 꿈에 그리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우건설을 외국 자본이 아닌 국내 건설사가 인수한다는 부분도 높게 살 만 하다.

다만, 앞서 대우건설 노조의 주장처럼 리스크가 상당한 게 사실이다. 때문에 호반건설은 산업은행이 낸 대우건설 지분 50.75% 매각 본입찰에 단독 입찰, 40% 우선 인수 뒤에 나머지 10.75%를 3년 후 사들이는 방안을 산업은행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위기를 최대한 관리하고, 인수 후 실적과 여론 추이를 관망하겠다는 의중이 엿보인다.

이처럼 양사(社) 모두 각기 자신들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대우건설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하고 싶은 호반건설도 이해가 간다.

▲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하면서 국내 건설업계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눈치다 ⓒ KDB산업은행

하지만 산업은행의 행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국책은행이라는 간판을 달고는, 대우건설과 호반건설은 물론, 국내 건설업계 전반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해 산업은행은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대우건설 신임사장으로 임명했다. 사장 인선 과정은 그야말로 물음표 투성이다. 산업은행 측은 후보자 공모를 했다가 아무 이유 없이 이를 중단했고, 돌연 일정을 연기했다가 다시 단축하길 반복했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 작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박 전 사장을 사전에 신임사장으로 내정했고, 이 과정에서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산업은행 사령탑이었던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이 친박(친박근혜) 인사로 분류되는 것도 이 같은 의혹에 힘을 실었다.

의혹은 어느 정도 사실로 판명됐다. 박영수 특검팀은 최순실 씨가 2016년 7월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본부장에게 박 전 사장을 대우건설 신임 사장으로 추천해야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을 확인했다. 박 전 사장은 결국 지난해 스스로 물러났다. 과연 산업은행이 이를 모르고 박 전 사장을 신임사장으로 임명했을지 의문이다.

이후 대우건설은 오너 리스크와 최순실 낙하산 딱지로 인해 회사 안팎에서 또 다시 곤욕을 치렀다. 지난해 3분기 어닝쇼크를 겪었고, 박 전 사장에 이어 사령탑에 오른 송문선 대표이사는 산업은행 낙하산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우건설 매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가도 제자리를 맴돌았다. 산업은행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대우건설 매각을 본격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산업은행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계속 보이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오는 2월께로 연기했다. 최종입찰제안서에 대한 매각자문사 평가가 종료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이미 산업은행이 호반건설로의 매각을 결정하고 매각자문사 측과 세부적인 논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연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이라면 산업은행이 호반건설의 분할인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대우건설을 인수하고 싶은 호반건설의 입장은 수긍이 가지만, 공정하게 매각을 주관해야 하는 산업은행 입장에서 이는 자충수다. 본입찰 당시에는 이 같은 조건을 내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혜·졸속 매각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만약 이 같은 방식으로 매각작업이 마무리 된다면 산업은행은 국내외의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작부터 특혜 의혹에 휩싸인 통합 대우·호반건설의 앞날도 불투명해질 공산이 크다. 국내 건설업계를 바라보는 해외 시선도 신뢰 하락으로 인해 부정 일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이야 팔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건설업계의 상처는 상당할 것이다.

산업은행은 이미 대우건설에 크나큰 손실을 안겼다. 호반건설의 이미지에도 치명상을 입혔다. 나아가 건설업계 전체가 피멍이 들 처지에 놓였다. 산업은행은 언제까지 가해자로 있을 셈인가. 우리나라 산업 성장과 국민경제 발전을 금융으로 뒷받침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책은행이 이 모양 이 꼴인데, 대체 소는 누가 키울 건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아직 적잖은 시간이 남았다. 산업은행이 국내 건설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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