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속도전’과 현장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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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속도전’과 현장 결여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2.01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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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선한 의도보다는 선한 결과에 집중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선한 의도’보다는 ‘선한 결과’에 집중하는 ‘현장형 정책’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 뉴시스

김대한·이민국 씨 부부는 2018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신혼부부다. 2년간의 연애 끝에 지난해 결혼에 골인한 그들은 가족계획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아 행복한 4인 가정을 꾸리겠다던 두 사람은, 얼마 못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물론, 그 벽은 가로 144㎜ 세로 68㎜ 크기에 ‘돈’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아직 부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생명이지만, 아이에게 들어갈 돈은 추상적 미래가 아닌 구체적 현실이다. 우선 보행기를 굴릴 수 있을 넓이의 집이 있어야겠고, 각종 아기용품과 이유식 값을 감당할 여유자금도 필요할 것 같다. 부부가 직장에 나갔을 때, 아이를 맡길 곳도 구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키만큼, 아이에게 드는 돈도 늘어날 터다. 일단 어린이집에 들어가고부터는 교육비가 추가로 나갈 테고,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면 조기교육도 시켜야 한다. 입학 후에는 학원 몇 군데가 기본이란다. 대학에 들어갈 때쯤이면, 목돈도 있어야겠지. 이리저리 따져보니 지금은 답이 없다. 일단 돈부터 마련해야겠다.

대한·민국 씨 부부는 일단 월세 신세부터 벗어나기로 한다. 변변한 집도 없이 아이부터 낳아서는 고생길이 훤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장이 서울에 있으니 서울에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마련해야겠는데, 아무리 못해도 3억 원은 필요하단다. 생활비를 빼고 부부가 한 달에 모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300만 원. 10년은 걸릴 듯하다. 아, 집값이 오르면 그것도 말짱 꽝이다.

집은 포기하고 아이부터 갖기로 마음을 바꾼다. 아이가 있으면 힘든 현실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위해 지출할 돈을 생각해 보니 앞이 캄캄하다. ‘베이비 푸어’라는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 닿는다. 결국 두 사람은 현실을 깨닫고 뒤로 물러선다. 2018년 대한민국에서는, ‘평범하면’ 아이를 가질 권리도 없다.

“급여가 적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주말에 일을 더 해서 수당을 받는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 이렇게 부부끼리 얼굴 볼 시간이 없으니까 아이도 못 낳고 저출산이 이어진다.”

지난달 29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MBN <판도라>에 출연해 한 말이다. 김 장관의 현실 인식에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는 대한·민국 씨 부부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한반도를 밟고 살아가는 부부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일반적 애로사항이다.

실제로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44.8%가 경제적 부담(양육비용 24.4%, 사교육비 부담 20.4%)을, 38.3%가 육아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출산을 꺼리는 이유로 꼽았다. 저출산 해결을 도와줄 효과적인 정책으로도 보육지원(27.8%)과 출산지원(25.8%), 주거지원(17.4%) 등을 지목했다. 긴 노동시간이 저출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핵심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근로시간 단축은 출산율을 더욱 떨어뜨릴 가능성도 있다. 연장근로수당·주말근로수당은 낮은 기본급을 벌충하는 성격도 지닌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본급을 높여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극도로 낮은 중소기업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기본급 인상이 연동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현실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연장근로수당·주말근로수당 축소로만 이어지고, 기본급 상승으로는 연결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런 현실 인식 오류는 단순히 근로시간과 출산율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1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지원금인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률이 1.5%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1년짜리 단기 지원금을 받기 위해 4대 보험료로 월 15만 원가량을 추가 부담하고, 소득까지 노출할 사업자는 많지 않다는 것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취지는 좋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는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모든 정책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수립돼야 한다. 하지만 ‘속도전’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는, 치밀한 조사 없이 ‘선한 의도’에만 바탕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선한 의도’보다는 ‘선한 결과’에 집중하는 ‘현장형 정책’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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