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홍준표 발언에 숨어 있는 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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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홍준표 발언에 숨어 있는 1cm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2.04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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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키호테'란 이미지 뒤에 가려진 치밀함…모든 말에 뼈가 있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겉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와 달리, 정치권에서는 홍준표 대표를 ‘치밀한 정치인’으로 평가한다 ⓒ 뉴시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별명은 ‘홍키호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러면서도 이슈를 몰고 다니는 홍 대표의 언행(言行)을 비꼬는 말이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와 달리, 정치권에서는 홍 대표를 ‘치밀한 정치인’으로 평가한다.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서 뛰어드는 기인(奇人)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풍차를 공격하는 기행(奇行) 안에도 정치적인 계산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원희룡은 작업 전문가”

홍 대표의 이런 면모는 지난달 18일 있었던 한국당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잘 드러났다. 홍 대표는 이 자리에서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를 비교하며 “남 지사는 유연성이 있다. 작업하지도 않지만, 원 지사는 작업 전문가”라고 말했다.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전형적인 ‘홍키호테’식 발언이었다.

그러나 ‘작업 전문가’라는 표현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2011년 7·4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 우제창 의원이 “KMDC 이영수 회장이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아 전당대회 때 홍준표 후보에게 전달했다”고 폭로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우 전 의원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지시해서 폭로했다”고 진술해 파문이 일었던 바 있다.

이때 홍 대표는 지도부에 폭로 내용을 전달한 배후로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원 지사를 지목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홍 대표가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작업 전문가’라는 말을 꺼낸 것은 ‘실언(失言)’이라기보다 남 지사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남 지사 역시 2011년 ‘디도스 사건’ 당시 유승민 現 바른정당 대표, 원 지사와 함께 최고위원 자리를 ‘기습 사퇴’하면서 홍 대표 체제를 무너뜨린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작업 전문가’ 언급은 사실 여부를 떠나 원 지사에 대한 ‘뒤끝’을 보여줌과 동시에, 남 지사를 향한 견제구 성격을 담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남경필은 판단이 너무 빨라”

이날 홍 대표의 ‘언중유골(言中有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홍 대표는 “경기도의 지도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차기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며 남 지사를 띄우더니, 곧바로 “단점이 있다면 판단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반 박자만 늦추면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건넸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이 표현을 두고 ‘새누리당 제1호 탈당자’였던 남 지사의 행보를 비판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침몰 직전’에 몰렸던 새누리당을 버리고, 가장 먼저 바른정당 창당 멤버로 합류했던 남 지사의 성급함을 꼬집었다는 풀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계산이 깔린’ 발언이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홍 대표가 경기지사 후보로 남 지사와 함께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이름을 거론한 까닭이다. 아직 당에 입당조차 하지 않은 최 전 장관을 영입하려면 전략공천이 유일한 방법이고, 최 전 장관을 전략공천한다는 것은 경기지사 후보 자리를 노리고 돌아온 남 지사가 경선에 도전할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남 지사가 전략공천을 이유로 탈당하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미 ‘새누리당 1호 탈당자’라는 기록을 남긴 데다, 위기에 빠진 바른정당을 버리고 한국당(새누리당 후신(後身))으로 복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즉 홍 대표의 “판단이 너무 빠르다”는 평가는 선배 정치인이 후배 정치인에게 보내는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경기지사 후보 공천을 앞두고 남 지사에게 보낸 의미심장한 신호였다는 이야기다.

“오마이뉴스도 우리 당에 출입하나”

이런 예는 또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홍 대표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질문을 받고 “오마이뉴스도 우리 당에 출입하나? 아이고, 죄송합니다”라고 빈정거렸다. <오마이뉴스>가 한국당에게 비판적인 진보 언론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기자의 소속을 문제 삼아 답변을 거부하는 것은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그러나 이 역시 홍 대표의 ‘프레이밍’ 작업 중 하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결집에 ‘올인’하고 있는 홍 대표는 철저하게 이념을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을 구분하는 중이다. 박 전 대통령 책임론이나 적폐 청산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수 대 진보’ 구도로 돌아가야 지방선거에서 선전(善戰)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오마이뉴스>에 대한 태도도 이런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진보 언론사를 공격, 논란이 커지면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부여당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수 대 진보 50 대 50 싸움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진보의 공격을 받는 홍 대표는 자연스럽게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국당 내 한 고위 관계자가 지난 2일 기자에게 들려 준 말은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홍 대표 그간의 언행을 놓고 혹자는 '홍키호테', '막가파', '꼰대'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홍 대표 발언 뒤에는 숨겨진 치밀함이 있다. 정확히 계산된 말들이다.”

‘홍키호테’가 자신의 판타지 속에서 칼을 휘두르는 괴인(怪人)에 불과한지, 아니면 철저한 현실적 계산 속에서 한국당을 구할 정치 달인(達人)인지는 결국 결과가 말해주지 않을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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