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개헌´-국론분열 극복 백년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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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개헌´-국론분열 극복 백년대계를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2.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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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헌법´, 시대변화 수용 변경 불가피
정국 태풍의 ´눈´…긍정적 발화점 돼야
국민여망 창달수렴 정치권 리더십 관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정부 여당의 개헌 드라이브가 본격화 되고 있다. 정치권의 논란도 점차 뜨거워 지는 추세다. 정치 분열, 국론 분열 심화 조짐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국민여론을 선도할 언론들의 시각조차 벌써부터 지향 이념에 따라 충돌을 예고하는 상황이다.

한국 개헌의 되풀이 된 '흑역사(黑歷史)'는 '오늘'에 엄중한 경고를 던진다. 우리 헌정사에서 정파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대타협을 이룬 개헌의 경험은 단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독재와 혁명에 의해서만 개헌이 이뤄졌다. 더욱이, 4당4색화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최근의 정치권 분열구도 속에서 '개헌 추진'의 의미와 귀결점은 결국 어떻게 나타나고야 말 것인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험난했던 한국 헌정사(憲政史)의 교훈을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 엄청난 기능과 역기능이 교차하는, 그야말로 역사적 '대(大)사안'인 만큼, 국민과 정치권 모두 매우 신중해 져야만 한다.

물론, 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태어나 지금까지 이어져온 제6공화국 헌법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토대를 두고 있는 국가최고법이긴 하다. 그러나 시대정신이 충돌했던 지난 '87년 체제' 청산과 맞물리면서 이 헌법의 명운은 다했다. 새 시대의 국가기반으로 그대로 계속 사용해 나가기는 적절치 않다. 지난 30여년 동안 개헌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대두, 시도되어 온것도 그런 연유다. 이는 현행헌법의 지방자치 관련 조항만 봐도 알 수 있다. 완전한 지방자치를 이루기에는 그 내용이 현저히 부실하기만 하다. 개헌의 당위성은 여전히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오늘의 개헌추진 현실을 다시한번 점검해 보고, 굴곡진 개헌역사의 교훈을 통해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로서의 시사점과 방향타를 잡아본다.

개헌론 탄력 전망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에 정부 개헌안 마련을 지시함에 따라 정부여당의 '개헌 드라이브'가 탄력을 받게됐다. 국회도 지금까지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개헌 논의에 나서도록 압박을 받게 될 전망이다. 개헌 정국의 태풍이 정치권에 몰아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지시로 정부 개헌안이 마련된다면 국회 개헌 논의를 가속화하는 효과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지시 배경에는 그간 국회의 개헌 논의가 구체적 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하려면 3월 중에는 개헌안이 발의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려면 국회 개헌특위에서 2월 말 정도까지는 개헌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개헌추진의 '속도감'이 잘 읽혀진다. 2월말 여야 합의 - 3월말 발의 - 6월 투표라는 '개헌 시간표'를 이미 제시한 셈이다.

즉, 국회 합의로 개헌이 추진되는 것이 최선이나, 현 국회 상황을 고려할 때 이달 안으로 개헌의 방향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개헌 논의를 국회에만 맡겨뒀다가 지방선거라는 호기를 놓칠 경우 다시 개헌을 추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개헌의 방향이다. 1차는 지방분권 개헌 등 여야합의 사항을, 2차는 정부 권력구조 등 마찰을 빚고 있는 부문의 개헌을 차례 차례 순서대로 협의 추진할 수 있다는 융통성의 복안도 비치고 있지만, 결국엔 정부여당이 지향하고자 하는 개헌의 기본방향이 국가 미래와 어떤 연관을 갖느냐가 핵심명제 일수 밖에 없다.

다음달 말 발의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이미 속전속결로 사실상 정부여당의 개헌안 준비에 착수했다. 여권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정책기획위는 이를 위해 자치분권 및 국민기본권 강화는 물론 권력구조 개편까지 포함한 개헌안 검토 방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개헌의 '핵'인 권력구조개편은 여야 간 의견 차이가 크고 파급효과도 가장 큰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이와관련,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권력구조 개헌 방안으로 사실상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문 대통령도 이미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가장 바람직한 방안(권력구조)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상태다. 기존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도 ‘중간심판’ 성격이 있는 중임제를 취해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게 여권의 핵심 논리다. 일단 문 대통령이 선호한다는 의사를 밝힌 데다, 여당도 사실상 당론으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여당 개헌안에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원안번복 궤적과 국민적 진정성

그렇지만, 이를 둘러싼 국회 내부의 갈등은 점차 격화되어 나갈 전망이다. 정부여당이 개헌안을 마련한다고 해도 국회에서 처리될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관제개헌’이라며 정부발 개헌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고, 특히 4년 중임제 권력구조 개편 부문에 대해서는 대통령 권한 축소에 적합치 않다는 이유로 극력 대처하겠다는 자세다. 대안으로는 대통령이 외치(外治)를 맡고 국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치(內治)를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당이 반대할 경우 재적 3분의 2 이상이 필요한 개헌안 처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물론 지방자치분권 등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부분만이라도 먼저 개헌을 하자는 주장도 있다. 문 대통령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개헌의 당위성 가운데 대통령 권한축소 부분이 가장 큰 핵심적 연결고리란 점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제외한채 지방자치 부문만 개헌을 하기에는 논리적으로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서로 대치중인 부문들에 대한 향후 여야 협의과정에서 과연 각 정당들이 당리당략이 아닌 '국민적 진정성'을 얼마나 확보해 낼 수 있느냐가 개헌 성사의 관건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민적 진정성과 믿음의 확보는 그 무엇보다 1차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정치권 여야 모두는 그동안 개헌문제에 관한 한, 국민적 진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궤적을 그려왔다는 점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일련의 경솔한 행보들은 '말 뿐인 개헌론'으로 의심받기까지 할 정도다. 그것은 불과 얼마 되지도 않는 기간동안, 여야 가릴 것 없이 개헌방향에 대한 기본입장을 너무도 쉽게 뒤바꾸는 자세를 보인데 기인한다. 그 중대한 개헌문제를 그리 쉽게 '왔다 갔다'할 정도로 입장 변화를 보였다는 것은 국민 신뢰를 확보키엔 역량부족임을 스스로 확인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다.

즉, 지난 19대 대선에서 각 정당 후보들은 2018년 지방선거에 맞춘 개헌안 국민투표를 모두들 공약했었다. 그러나 여야 모두 시간이 흐르면서 각기 처음 지향했던 개헌방향의 원안을 뒤집었다. 우선 여당부터 보자. 당초 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지적하며 분권형 정부 개헌을 주장했었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국회가 임명하는 총리가 각기 외치와 내치를 분담하는 이른바 혼합형 정부(이원집정부제)를 꼽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 대통령이 지난 신년사를 통해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으로 말을 바꿔 선언하자 일사불란하게 입장을 선회해 버렸다. 권력구조 합의가 어렵다면 기본권과 지방분권 개헌부터 먼저 가자는 문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도 입을 다물어 여당이 ‘청와대 2중대’라는 비난까지 살 정도가 됐다.

야당은 또 어떤가. 그 '변심' 또한 마찬가지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경우 처음에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에 바탕을 둔 개헌론을 펼쳤다. 이와함께 가장 가까운 전국선거와 동시에 개헌안을 치른다는 원칙에도 거침없이 동의했었다. 그러다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당과 홍준표 대표는 말을 바꿨다.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라는 논리를 내놓으면서, 이른바 '동시 개헌'을 거부했다. 그 이면에는 개헌안 국민투표와 지방선거를 엮으면 제1 야당에 불리할 것이란 판단이 깔려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홍 대표와 한국당의 변심을 비난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다. 이전투구 형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판국이니, 불과 얼마 사이에 국민여론도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 국민들의 생각에도 입장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지난해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혼합형 정부에 대한 선호(46%)가 대통령제(38.2%)를 크게 앞섰지만, 올해 1월 조사에서는 선호도 차이가 불과 3.4%포인트로 좁혀졌다. ‘대통령 권력 견제’에 찬성하는 의견도 5개월 전 조사에 비해 11%포인트가 빠졌다. 이제는, 두 의견이 거의 반반씩 비슷해진 국면에 있다. 바꿔말해, 이같은 흐름은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이전에는 대체로 국정 안정기반 차원에서 4년 중임제를 선호하다가, 그 후 박 정권의 실정(失政)이 드러난 후에는 '제왕적 대통령제' 비판 여론의 수위가 높아졌고, 이어 다시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권력분산 보다는 '대통령 중심제 선호'가 상승하는 추세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현재의 문재인 정권 역시 임기가 끝나봐야, 국민 개헌 여론흐름이 또 어떤 변화를 보일 지 가변성을 시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상황은 결국 한편으론 국민여론을 받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여론을 선도해 나가야 할 정치권 책무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다. 개헌에 관한 국민적 진정성과 신뢰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전체임을 거듭 확인케 한다. 국민을 불안하게 해선 아무것도 될 일이 없을 것이란 경고에 다름아니다. 그런데도, 현 여야 정치권의 그간 개헌론 궤적은 너무도 경박한 측면이 있었기에 개헌의 주체자격을 이미 상실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헌법4조 '자유'파문 의미

실제, 현 정치권의 '개헌의지' 경박성은 최근 논란이 된, 헌법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는 여당의 개헌안 당론 협의과정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이 개헌 당론을 확정하기 위해 의원총회를 열었던 지난 1일, 제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그날 저녁 당의 개헌 의원총회 결과를 언론에 설명하면서 헌법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는 개헌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불과 4시간 후인 그날 밤 갑자기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헌법 조항이 너무 많아 헷갈렸다는 해명과 함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번복했다. 국가 정체성을 설명하는 중대 사안에 대해 민주당은 이렇게 가벼운 처신을 했다. 여당의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돼버렸다. 야당이라고 다를 바 없다. 자유한국당은 최근들어 당초의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실시 공약 번복 발언을 계속 이어가다가, 이제는 급기야 이 방안에 결사항전 하겠다는 자세로까지 돌아섰다. 또한 지방분권 개헌까지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납득할 만한 이유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권력구조 포함 개헌을 겉으로는 주장하면서도 내심 6월 개헌 무산을 노리고 있는 표정이 역력하다. 여야 모두 정쟁의 대상으로 ‘개헌’을 다루고 있다는 징후가 높다.

주요 정당들의 이같은 정쟁적 개헌 시각 접근 움직임은 급기야 정치권내 제3의 분석까지 대두케 만들었다. 정치권의 4당체제 분할구도의 사실상 산파역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견해가 바로 그렇다. 그는 최근 청와대와 여당의 개헌 시도가 오히려 개헌을 가로막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서면서 나름의 새로운 논리를 전개했다. 안 대표는 “민주당은 난데없이 4년 중임제로 당론을 마련해 야당의 반대를 유도하다시피 했다"면서 “개헌안을 두고 양당(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다시 이념대결로 접어든 양상이다. 청와대발 개헌 시나리오가 그대로 맞아들어가는 모양새”라고 비난했다. 그의 주장은 바꿔말해, 정부 개헌안이 유실될 경우 여당은 야당 반대로 개헌이 무산됐다고 뒤집어 씌우고, 이를 지방선거에 이용하려는 얄팍한 수를 진행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즉, 청와대와 여권의 속내는 개헌에 노력했다는 명분을 쌓으며, 사실은 개헌작업을 포기케 함으로써 그 책임을 야권에 전가, 지방선거에서의 승리유도와 함께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위한 움직임이었다는 논리로 볼 수 있다. 

여야의 간극은 이처럼 크다. 모두들 당리당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최근 정치권의 개헌논의 실태는 겉으로는 지지부진하던 개헌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관측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사상 이념적 '프레임 전쟁'에 몰두하고 서로 '남타령'만 하면서 6월 개헌은 사실상 물건너가는 분위기가 유력해 지고 있다.

전향적 계기 활용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의 개헌 당위성은 계속 엄존한다. 역대 정권과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다. 그동안의 급속한 시대변화에 따라 역사적 수명이 다해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따라서 개헌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 때문에, 당장엔 어렵더라도 이번 기회를 개헌논의의 발화점으로 긍정적으로 활용할 필요는 있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앞으로의 개헌 논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이번에도 포기를 해 버릴 경우 내년인 2019~2020년에는 개헌 시도가 더욱 어려울 개연성이 짙다. 각 정당 지도부가 2020년 총선 유불리 때문에 개헌을 섣불리 추진치 못할 요인이 큰 탓이다. 2021~2022년도 역시 마찬가지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는 같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개헌시도는 더욱 무리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이후는 또 어떨 것인가. 지금까지 개헌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 임기 초 개헌 논의를 언제나 틀어 막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새로 선출되면 조기 레임덕을 우려해 개헌 논의를 못 하게 했고, 임기 말에는 개헌을 하려고 해도 힘이 없어서 못 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개헌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상정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번에 다시 점화된 개헌론을 전향적 논의의 시발점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때를 놓치면 지난 1987년 이후 30년 이상 지속된 낡은 헌법적 틀을 고치는 일이 요원해지고, 정권 교체기마다 되풀이 된 전직 대통령의 불행 사태도 막을 수가 없을 지 모른다. 권력구조 뿐 아니라 가족ㆍ환경문제 등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헌법을 만들려면 국민의 공감대 형성 등 시간이 필요하다. 여야는 이번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인색해선 안된다. 머리를 맞대고 온 힘을 쏟는 것이 옳다.

▲ 지난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준비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與 ´4년 중임제´…심도있는 검증을

그런면에서 이번 정부 여당이 제시한 개현안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해 볼 필요는 있다. 진정성 문제를 떠나 이는 국가 미래를 위한 하나의 단초로서 공식적 차원의 점검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번에 헌법 130개 조항에 대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경제 사회 부문 등 90개 조항에 대해 당론을 확정해 내놓았다.

헌법 전문(前文)에는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모두 넣기로 했다. 경제민주화 조항을 권유조항에서 강제조항으로 만드는 등 국가의 경제 개입을 강화하는 조항도 다수 들어있다. 권력구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가닥을 잡았다. 여당의 이런 현 개헌안에는 시각에 따라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요소가 결코 적지 않다. 많은 논란을 거칠 수 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우선 권력구조 부문부터 보면 현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 방향은 여권의 4년 대통령 중임제를 비롯 정·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대통령·총리 간 권력을 배분하는 이원집정부제 등으로 압축된다. 앞으로 계속 치열한 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권력구조 부문의 경우 그동안의 임기말 책임정치의 실종 등 '단임제의 폐해'가 과연 제도의 문제인지, 사람의 문제인지, 문화의 문제인지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합의 수준까지 이르렀을 때 그 방향을 결정하는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제의 모델이라는 미국 역시 현재 연임제의 폐해가 운위되는 마당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혹시라도 권력구조 개헌 발의권 남용이 헌법 자체를 경시하는 풍조를 확산시킬 우려는 없을 것인지, 그야말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권력구조 개헌 추진은 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의 가장 큰 폐단으로 지목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시정이 최우선 목표가 돼야함은 당연하다.  민주당이 원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는 그 자체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연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 권한 분산이 충분히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의 권한을 지금보다 오히려 강화해 개헌 취지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와관련, 만에 하나 여권 핵심인사들의 이번 개헌 구상이 차기 정권에서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용 개헌론’이라면 불순한 발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개헌을 통해 차기 정권에서 정파 간 권력 배분을 꾀하려는 발상도 있다면 이 역시 국민적 지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역대 정권에서 정략적 개헌 시도는 항상 실패했고, 비록 관철되더라도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었다. 권력구도 부문의 성급한 접근은 무엇보다 경계돼야 할 대목이다.

경제조항, 국가 정체성과 연관

한편, 21세기 국가명운을 좌우해 나갈 경제조항도 더 없이 중요하다. 현 여권의 방향은 사회적 경제, 경제민주화, 토지공개념 등을 강화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 방안 역시 국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비대화 시킬 수도 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와 사회적 경제 개념 도입이 오히려 시장경제의 포기라는 반론에 직면할 측면도 없지 않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도 현재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다.

원론적으로, 경제는 민주화 이전에 자유화가 먼저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개인의 창의가 발휘되지 않으면 경제는 제대로 굴러가질 않는다. 우리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실패를 그동안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이번 민주당 개헌안에 있는 ‘사회적 경제’와 ‘토지 공개념’ 강화 내용들이 선의로만 해석되지 않는 것도 그처럼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려는 저의의 요소가 느껴지기도 하는 측면 때문이다. ‘촛불 시위’와 같이 역사적 평가와 국민적 합의가 좀 더 필요한 사안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려는 의도가 논쟁거리가 되는 것도 같은 연유에 속한다.

그같은 논쟁점과 관련해서는 서구 선진국들의 역사 경험에서 축적되고 입증된 법의 기본원칙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보편성과 추상성의 원리다. 법이 특정 국민만을 대상으로 삼거나, 그 자체로 자동 집행력을 갖는 처분적 법률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모든 법 위의 법’인 헌법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투기를 뿌리뽑겠다며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하겠다는 식이면, 130개인 현행 헌법 조항을 1000개 이상 으로 늘려도 모자랄 판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헌법은 국가 통치의 기본 원리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근본 규범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주장이 아닌 보편적 합의가 담겨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국체가 흔들려선 안 된다. 이것을 바꾸면 제헌(制憲)이고 혁명이 된다. 1987년의 민주항쟁이 지향했던 바는 현행 헌법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표현에다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도 설치돼 있다. 이 방향은 그대로 존중되어 나가야 한다.

국회중심 창구 힘 실어야

다음은 '개헌창구'에 관한 문제제기다. 현재 국회는 물론 국민들도 개헌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한다. 문제는 누구 주도로, 어떤 헌법을 만드냐다.

국민적 논의를 배제한 정치권 실세 몇몇의 개헌 시도는 항상 불행한 헌정사를 낳았다. 따라서 이번처럼 개헌창구가 정부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개헌 논의를 주도하고 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이 최선이자 순리다. 국회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헌법개정안조차 발의하지 못하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현행 헌법상 개헌안 발의를 대통령도 할 수 있게 돼 있으니 이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설 필요가 없도록 국회가 개헌 논의를 완결짓는 것이 최적의 시나리오다. 그러자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특위 활동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른바 '관제개헌' 이란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여당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 순리다.

국가의 기본 틀이 될 개헌 논의가 국면전환용이나 특정 세력의 정치 이해를 위한 당리당략으로 비쳐지면 국론 분열의 상처만 남기게 된다. 개헌안은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결국 국민투표로 확정된다.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정치권만의 논의’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개헌의 당위성, 국민 공감대 확보를 위해서라도 대통령과 정부는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 중심 논의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정치권도 의회 권력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나라의 미래와 통일을 염두에 둔, 새 국가 틀을 짜는 데 머리를 맞대려는 겸허한 자세가 중요하다. 국민과 함께 하는 개헌이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개헌史 실상과 교훈

이번 개헌논의가 목표로 삼아야 할 '제왕적 대통령제'의 바람직한 시정을 위해서는 역사적 점검이 중요하다. 험난했던 한국 헌정사는 권력분점이 아닌 승자 독식의 5년 단임제에 문제가 있었음을 선명히 검증케 한다. 이 제도는 언제나 여야 간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았고, 우리 정치의 고질인 지역주의까지 더해 ‘분열의 정치’를 더욱 뿌리 내리게 했다. 정책 연속성이 끊기는 부작용은 항상 다음 정권으로 전가됐으며, 단임 정권의 성격에 따라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북한이 핵기술을 고도화해 핵무기 확보 직전까지 이르고 만것도 한반도 현실이 됐다.

현 세대보다 후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저출산·고령화사회 대책이나 4대 연금 개혁, 기후·환경변화 대응책이 단기 정책 목표에 급급한 것도 ‘5년 정권’의 무책임성 요인과 무관치 않다. 임기 말이면 언제나 대통령의 정책 집행 능력은 더욱 떨어져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들 모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그 자리를 떠났던 것도 '단임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키 힘들다.

실제, 파란만장의 한국 헌정사는 그 역기능의 현장을 생생히 확인시킨다. 다시금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48년 제정된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1950년 5월30일 실시된 2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측의 참패였기에, 그는 국회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작아지자 1951년 11월 30일 정·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부결됐다. 이에 고무된 야당은 1952년 4월17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했고, 이에맞서 이승만 정부는 이미 부결된 바 있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5월14일 다시 제출했다. 그해 7월4일 정부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안과 야당의 국무원불신임 개헌안을 절충한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토론도 없이 기립투표로 국회를 통과했다. 허나,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중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밀어붙인 위헌적 개헌이 바로 1952년 1차 개헌이었다. 이어 1954년 2차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위한 ‘4사 5입’ 개헌이었다. 민의원 표결에서 개헌 의결정족수에 1표가 부족해 부결이 선포됐지만, ‘4사 5입’ 이론으로 억지를 쓴 자유당 의원들만 모여 다시 가결을 선포했다. 원천무효에 해당하는 엉터리 개헌이 2차 개헌이었던 셈이다.

이로인해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났다. 그 결과 의원내각제를 뼈대로 하는 3차 개헌이 6월15일 이뤄졌다. 이어 1960년 11월29일 있었던 4차 개헌은 헌법 부칙에 반민주행위자 처벌 소급입법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였다. 4·19 혁명의 여파였다. 그것도 잠시,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했다. 군인들은 혁명이라고 했지만 쿠데타였다. 1962년 12월6일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과한 헌법 개정안이 12월 17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그것이 5차 개헌이었다. 이어 1969년 6차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위한 개헌이었고, 7차 개헌은 바로 1972년 유신헌법이다. 유신헌법이 얼마나 反헌법적 헌법인지는 그 다음의 '비극적 사태'가 여실히 보여줬다. 그 '유신'으로 독재자는 하나님과 같은 권력을 쥐는 데 성공했지만, 1979년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비극적 최후를 맞아야 했다. 이후 1980년 8차 개헌은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 헌법이었고, 1987년 9차 개헌은 1960년 4·19와 마찬가지로 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6월항쟁이라는 시민혁명의 성과물이었다. 시민들과 야당의 대통령직선제 개헌 요구에 전두환 정권이 굴복, 국민적 성과로 채택됐다.

그 후에도 개헌 관련 역사는 이어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의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 각서를 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종필 전 총재와 이른바 DJP 연합을 하면서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다시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지만, 개헌은 결코 이뤄지지 못했다. 국민이 개헌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조정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의했으나 그 때는 국회가 받아들여주지 않았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이른바 '최순실 사태'를 막기위한 방편으로 개헌을 제의했지만 곧바로 정략적 개헌 제의로 드러나 파탄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같은 파행과 무산의 진통탓에 그동안의 숱한 개헌 시도에도 불구, 1987년 개헌 헌법이 무려 31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내게 된 것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고 2017년 정권이 교체됐다. 대한민국의 개헌역사 연원은 그렇게 진행돼 왔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제야 말로 개헌의 불가피성에 동조할 수 밖에 없는 시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불행했던 과거를 더욱 깊이 새기고, 반성하며,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진정으로 준비해야할 시점의 '오늘'에 우리 모두가 서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다시 일깨운다.

제헌(制憲) 70주년 - 장기 비전 담아내야

따라서 개헌은 국가운영의 새 비전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한다. 더욱이 올해는 제헌 70주년이다. 전쟁까지 겪었지만 우리는 현재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 모델로 성장했다. 온갖 어려움과 우여곡절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를 함께 이룬 것은 국가 사회적 정향과 지향점이 분명했기에 가능했다. 그 기초와 토대가 바로 헌법이다. 우리 헌법이 수호해온 이념적·정치적 가치와 국가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 였기 때문이다. 사유 재산과 사적 자치 기반의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완성하고 강국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방향을 기본 틀로 하여, 앞으로의 개헌 방향은 87년 체제를 대변했던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 가치 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도록 국가 장기비전의 미래를 다시 담아 내야만 한다. 숱한 난제가 있겠지만, 이를 위해선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견 수렴 작업이 필요하다. 특정 정파의 이해득실에 따라 개헌이 진행되면 그 폐해는 국가 전반에 재앙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환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

여야가 지금의 행태로만 간다면 국민이 원하는 개헌은 이뤄지기 어렵다. 국가 발전의 영원한 장기적 토대를 구축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머리를 맞대어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세기 긴요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미 성숙했고 다양한 목소리를 민주적 질서 속에서 합의할 수준도 됐다. 여야 정치권은 기계적 접근보다는 개헌의 성패를 결정짓게 될 최대 필요 충분조건이 바로 국가 백년대계를 겨냥, 현행 헌법의 폐해를 고쳐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 형성에 있음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대(對) 국민 설득을 통해 개헌의 절박성에 관한 국민 여망을 올바르게 창달하고 수렴하여,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정치권의 정치력·리더십 역량에 달려 있다. ‘선 국민 공감대 형성→후 정치권 및 국회 개헌 논의→본격 추진’이 민주주의 정신에 맞는 개헌의 정도(正道)가 될 것임을 거듭 확인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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