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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인터뷰] 전현희 ˝나는 행동하는 친문…서울시장 출마는 文정부 성공위한 도전장˝
전현희 국회의원
˝변호사 한계 느껴 국회의원 지원서 작성˝
˝난 겸손과 진심이 무기인 영원한 도전자˝
˝文 대통령과 인연, 1998년 부산서 시작˝
˝개헌, 우리 현상황 고려하면 4년 중임제˝
2018년 02월 15일 10:29:53 김병묵 기자 송오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송오미 기자)

겸손하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에 대한 첫인상이다. 약간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치과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한 사람이 일생을 걸어도 쉽지 않은 목표를 셋이나 달성한 인물 아닌가. 그런데 “제가 어리바리한 구석이 있어요”라고 웃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점철된 전 의원의 정치역정 속에 들어있었다. <시사오늘>은 지난 13일 의원회관 315호에서 전 의원을 만나, 그의 정치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싣는다.

   
▲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성격이나 삶의 자세에 이런 측면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됐다. 그래서 치과의사를 하다가, 내가 가진 바 능력을 보다 폭넓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진료실 문을 열고 나와 사법고시에 도전하게 된 거다. 그리고 변호사를 거쳐 결국 정치인의 길에 도달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계 입문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사실 정치를 처음부터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엔 그냥 꿈 많은 평범한 소녀로서 성장했고, 부모님 뜻을 따라 치과의사가 됐다. 다만 내게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정의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성격이나 삶의 자세에 이런 측면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됐다.

그래서 치과의사를 하다가, 내가 가진 능력을 보다 폭넓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진료실 문을 열고 나와 사법고시에 도전하게 된 거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변호사가 된 후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의 소송을 맡았을 때지만, 그 이전부터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전 의원은 지난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소송을 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변호사 시절에 공익 소송을 많이 했다. 사회의 문제다 싶은 이슈에 뛰어들어 무료변론도 많이 해줬다. 그 중 내 인생을 바꾼 소송이 바로 혈우병 아이들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건에 대한 거였다. 지난 2003년 당시 세 살, 네 살이던 아이들이 혈우병 치료제를 투여 받고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건이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고 법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때가 이미 에이즈 감염 후 10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무려 10년 동안 진실이 묻혀있었던 거다. 소멸시효가 경과돼서 법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억울하고 엄청난 사건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너무 안타깝지 않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상대는 거대 제약회사였고,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포진시켰었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에이즈라는 특수성 때문에 세상에 나서기를 두려워했다. 그 때 국회에도 찾아왔었다.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알리고, 정치권에서 해결해줬으면 했다. 하지만 의원들을 만나기조차 어려웠다. 정부와 언론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1심, 2심에서 패소를 하고, 이제 상고(上告) 준비를 하는데 트럭 한 대 분 이상의 자료를 검토하느라 준비에만도 1년이 넘게 걸렸다. 한계가 느껴졌다. 마치 내 능력이 부족해서 진실을 파헤치지도 못하고, 피해자들에게 도움도 못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대법원에서의 승소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였다. 변호사로서 세상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결심을 했나.

“마침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정치 결심을 하고 비례대표 신청서를 작성해서 민주당에 제출했다. 소송의 결과는 내 국회의원 임기가 끝날 때 쯤인 2011년에나 나왔다. 대법원에서 승소하고 파기환송되면서 결국 제약회사와 조정명령,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받았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국회 상임위에서 그 소식을 듣고 정말 감동했다. 인생을 걸고 거의 10년 이상 매달렸던, 포기할 뻔 했던 사건이 승소했다. 피해자들에게 결국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민주당이 개혁공천을 하면서, 공천심사위원들이 보기에 내가 참신하고, 개혁적이라는 생각으로 뽑은 것 같다. 그 당시 대표가 손학규 의원이었을 뿐, 내가 손학규계였다는 주장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오해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치권 일각선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발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보통 비례대표를 뽑을 때 미리 접촉해서 조율하고, 협의해서 발탁을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 나 스스로 서류를 다운받고 작성해서 신청한 뒤에 ‘뽑아주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고’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당시 민주당이 개혁공천을 하면서, 시민사회 인사들이 공천심사위원회에 대거 참여했다. 그 분들이 보기에 내가 참신하고, 개혁적이라는 생각으로 뽑은 것 같다. 그 당시 대표가 손학규 의원이었을 뿐, 내가 손학규계였다는 주장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오해다. 오히려 당시 한나라당, 지금으로 치면 한국당 계열에서 영입 제안이 여러 차례 왔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내가 정치를 하려고 했던 목적은 어려운 분들, 사회적인 약자들을 돕는 데 역할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역할을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정당을 찾았더니 자연스럽게 민주당을 선택하게 됐다. 내 고향이나, 배경을 고려했을 때 새누리당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역주의야말로 우리 정치를 망치는 망국병이라고 생각했다. 경상도 출신인 내가 당시엔 ‘호남당’이라고 불렸던 민주당에 들어가서, 지역주의를 깨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18대 국회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내내 활동했다.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내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제일 먼저 지적했다. 혈우병 어린이 피해자들이 생각나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것도 처음 이슈 제기할 때는 그리 주목을 못 받았다. 국회의원에겐 또 한계가 있더라. 오히려 19대 때 원외에서 변호사로 있을 때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많은 정치인들, 법조인들이 도와줘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이슈화 됐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법과 제도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려 했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 응급 제세동기 지금은 다 설치돼 있지 않나. 그것도 내가 발의했다. 의사라서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잘 안다. 1분 차이로 생명이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법안 중엔 화장품에 제조일자랑 사용가능날짜 표기하도록 했던 것도 있다. 화장품 ‘샘플’을 받아서 쓰는데, 문득 이게 언제 만든 건가, 괜찮은 건가 생각이 들었다. 피부 좋아지라고 발랐다가 오히려 나빠지면 어쩌나 걱정이 들지 않나. 아무래도 여성이니까. 하하.”

-그 다음엔 민주당에게 가장 힘든 험지라는 강남구를 택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지금까진 세 가지 불가능에 도전해왔다. 처음엔 사법고시였다. 주변에서 모두가 말렸었다. 두 번째가 혈우병 피해자들 소송이었다. 법조인들 누가 봐도 처음부터 불가능한 싸움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강남 도전이다.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원래 쉽고 편한 길을 택하지 않는다. 도전은, 뜻을 세우고 하겠다고 결심하기 까지가 어렵다.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자체가 워낙에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도 앞선 세 가지 중 될 거라고 믿고 시작한 도전은 없다. 다만, 설렁설렁 하면 안 된다. 하겠다고 생각을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온다.

18대 국회를 그만두면서 지역구를 생각해야 했는데, 나는 거의 임기 말까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를 아끼는 분들이 다음에 재선을 하라며 여러 지역을 권유해줬다. 비교적 민주당이 강세인 곳을 많이 추천 받았는데, 문득 의미가 있는 정치를 하려면 그런 곳에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을 선택할 때가 떠올랐다. 새누리당에서 제의를 많이 받았을 때, 갔으면 동향인 영남출신도 많고, 법조인도 많고, 편하게 정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가지 않았나.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켜보자고 한 일 아닌가. 그런데 강남구가 당선 확률이 가장 낮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곳도 강남구였고, 그래서 한번 이 곳에서 새로운 정치를 시작해보자고 생각했다.”

   
▲ ˝내 인생에서 지금까진 세 가지 불가능에 도전해왔다. 처음엔 사법고시였다. 주변에서 모두가 말렸었다. 두 번째가 혈우병 피해자들 소송이었다. 법조인들 누가 봐도 처음부터 불가능한 싸움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강남 도전이다.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서울시장은 네 번째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선 세 가지 중 될 거라고 믿고 시작한 도전은 없다. 다만, 설렁설렁 하면 안 된다. 하겠다고 생각을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온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지금은 당선됐지만, 강남구에서 선거를 치르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처음엔 서러운 일도 많았다. 강남구는 아예 민주당 정치인을 본 적이 없는 동네였다. 모든 행사가 여당인 새누리당 중심으로 이뤄졌고, 구청장부터 시의원, 구의원 대부분 새누리당이었다. 내가 나타나니 낯설어 했다. 내외귀빈 자리는 애초에 앉을 수도 없고, 뒤에 서 있으니 한 동장이 와서 ‘당신 뭐냐, 왜 왔냐,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모멸감도 들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나가라고 해서 나가면 나는 사람들을 못 만난다. 강남엔 딱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없어서 그런 행사를 모두 챙기지 않으면 주민들을 볼 장소가 없다. 그래서 숨어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악수하고 다녔다. 눈물이 절로 났다. 나중에는 주민들이 손을 먼저 맞잡아 주셨다. 그래서 누군가 당선 비결을 물으면 ‘정성밖에 없다’고 답한다.”

-당의 송파 공천을 거부하기도 했다. 후회는 없었나.

“나는 아무도 강남구에 안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정동영 의원이 대권도전을 염두에 두고 험지에 나서겠다며 온 거다. 처음에 다른 곳 전략공천을 제시했다가, 내가 거부하자 경선을 했다. 경선에 졌고, 보통은 그걸로 끝나는데 당에서 내가 좀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론을 보니 나를 내보냈을 때 이기는 지역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 그쪽으로 전략공천을 주겠다고 했다. 거절했다. 다른 사례가 있는지 모르지만, 전략공천을 거부한 정치인은 내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혹적인 제안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초심을 잃는 일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떨어졌다고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 내가 생각했던 정치적 소신, 강남출마에 대한 원칙 모두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자회견에서 ‘배지 헌터’가 되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냥 19대엔 불출마했다. 후회는 당연히 없다.”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정동영 의원과 서울 강남을 경선해서 패한 뒤, 당에서 서울송파갑에 전략공천을 주겠다고 하지만 거부하고 지역구에 남았다. 4년 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전 의원은 51.46%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새누리당 김종훈 전 의원에게 승리했다.

-그 결과 20대 총선에선 압승했다.

“어떤 주민이 이런 말을 해줬다. 그 분이 ‘나는 TK(대구경북) 출신이고, 골수 보수당 지지자고, 당신이 여기 온다고 처음 했을 때 거부감이 들었다. 악수도 안 받고 눈길도 안 줬다. 민주당 정치인이 와 있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런데 눈에 워낙에 자주 띄고, 너무 겸손하게 인사 하길래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 같은 골수가 지지자가 됐다. 나도 놀랐다’고 했다. 선거 때 결국 나를 찍었다고 했다. 지금 아주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겸손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진심은 마지막에라도 마음을 연다.”

-이번에 서울시장에 도전한다.

“내가 네 번째로 하는 어려운 도전이다. 치과의사의 한계를 느끼고 변호사로, 변호사의 한계로 정치인이 됐다. 물론 국회의원도 보람 있었다. 의정활동도 정말 열심히 했고, 과분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또다시 고민이 들었다. 원래 나는 자리에 연연하기보다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원해왔다. 그래서 보다 직접적인 일인, 행정을 생각하게 됐다. 지역구의 현안들을 해결하다 보니 더욱 이런 생각이 깊어졌다. 예를 들어 강남구 세곡동의 경우, 새로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신도시가 만들어지면 광역교통대책이 세워져야 하는데, 개발 주체가 둘로 분리되다 보니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통은 교통대로 혼잡하고, 편의시설이 없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일종의 간접적인 일이다. 정부에 항의하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조치를 하진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도시 설계나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많이 있으니까, 내 손으로 정책을 실행하는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거다. 게다가 어렵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시대다.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주거복지정책 입안도 함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시의 발전을 이룰 적임자가 나라고 생각한다.”

-핵심적인 공약 사항은 뭔가.

“공약을 내걸 것은 많지만 지금 시점에서 간략히 정리하면, 미세먼지 등 도시환경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청년과 신혼부부 등에 대한 주거문제 해결, 교통문제에 대한 장기적 플랜, 서울시민들에게 돌아갈 최소한의 복지대책,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 정도다.”

   
▲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은 1998년 사법연수원생 시절부터다. 부산 지방법원에 시보로 있을 때 법무법인 부산에 자주 놀러갔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이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당시에도 내 롤모델 같은 분이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최근 서울시장 후보들 사이에선 친문(親文)마케팅이 유행이다.

“말로 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행동하는 문파(文派)다. 보시면 알게 되실 거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듣고 싶다.

“사실 인연이 있었던 것은 1998년부터다. 정치 입문 전인데, 내가 사법연수원생 시절이었던 그 해 부산 지방법원에 시보로 있었다. 그런데 내 사촌오빠가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어서 자주 놀러갔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일도 도와주면서 가깝게 지냈다. 당시에도 내 롤모델 같은 분이었다. 특이하게 방바닥에 소송서류를 쫙 깔아놓고 하나씩 챙기면서 검토하던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때부터 존경하고, 좋아하면서 따랐다. 나중에 대선 후보로 나오신 뒤에야, 인품이든 능력이든 여러 측면에서 이런 분이 우리 지도자가 됐으면 하는 그런 확신이 들었던 거고, 이 시절엔 나도, 문 대통령도 정치할 생각이 없던 시절이다. 이후에 정치할 때는 엇갈려서 원내에서 함께 해본적은 없었다.

그 이후에 2012년에, 18대 대선 때 문 대통령이 후보로 나서면서 대변인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김두관 의원 측에서 이미 열 차례나 대변인 요청을 해서 수락한 직후였다. 그래서 죄송하게 됐다고 말씀 드렸던 일도 있었다. 그 다음엔 내가 막 20대 국회에 들어왔을 때다. 대선 시작하기 한참 전인데 서울시당위원장 이야기가 나와서 고민을 했다. 시당위원장을 출마해서 만약 되면 향후 대통령 경선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지 않나. 그래서 양산으로 내려가서 찾아뵙고 의논드렸다. 그러니 당시 당에서 맡고 있던 직능총괄본부장을 계속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서울시당위원장 출마를 접었다. 그리고 캠프에 가장 먼저 합류해서 서울선대본부장, 직능본부장을 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서울시장 출마 결정에도 영향을 끼쳤나.

“나는 문재인 정부가 정말 중요한 정부라 생각한다. 어찌보면 한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고, 문 대통령이 국민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퇴임 후에도 계속 존경을 받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겠나. 그걸 뒷받침 할 수 있는 게 서울시다. 정부와 호흡을 맞추면서 정책적으로 협조해서 정권을 성공시켜야 한다. 그게 한국과 서울시를 위하는 길이다. 사심 없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진심으로 함께할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준비도 돼 있다. 그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개헌 특위도 참여했다. 향후 개헌의 방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분권(分權)이 시대적 화두다. 수평적 분권과 수직적 분권이 있다.

우선 수평적 분권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권한을 나누는 것인데, 그 가운데 어느 지점이 이원집정부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한국이 여전히 분단상황, 위기상황이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수평적 분권에 대해서는 난 대통령제, 4년 중임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야당에서 의원내각제를 선호하지만, 지금 국회가 국민들의 불신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집단 아닌가. 국민들이 국회로의 권력분산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여론조사가 이러한 분위기를 입증 중이다.

다음으로 수직적 분권이다. 중앙 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와 나누면서,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거다. 입법권, 재정권을 분산하는 내용인데 이거야말로 지금 한국에 꼭 필요한 개헌이다. 그래서 며칠 전에 지방의회법을 발의했다. 지방에 권한이 분산되면 지방의회도 좀 더 전문성과 책임성이 강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지방의회에 대한 법적 근거를 좀 더 명확히 하고,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법안을 냈다. 결국 개헌에서 분권이 실현되고, 권력이 실질적으로 국민 주권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개헌이 이뤄질 현실적인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개헌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하는 것이다. 어느 정당이나 단체가 개헌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다만 여야 대선후보들이 모두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고 공약하지 않았나. 정치인은 약속을 했으면 기본적으로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못 지키면 사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개헌안이 이미 어느 정도 준비돼있는 상태다. 한국당에서도 개헌을 당론으로 하겠다고 했으니, 빨리 준비하면 오는 6월에 개헌투표가 가능할 거라고 본다.”

-끝으로 본인의 정치인으로서 좌우명이 있다면.

“국민이 하늘이다. 정치인은 헌신하고 봉사하는 자리다. 권력, 명예를 누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받드는 겸손한 자세, 정성을 다하는 모습만이 진심을 전할 수 있다. 초심을 잊지 않고 그렇게 정치를 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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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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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적들 2018-02-18 02:10:55

    이사람 강적들어 나와서 문재인 얼굴만가지고 내내잘생겼다,잘하고계신다 드립질만 해대다 전원책한테 혼나고 간 생각이난다! 진짜 말 엄청 설득력없게 못하던데...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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