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4년 중임제 개헌은 8년 단임제가 되고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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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4년 중임제 개헌은 8년 단임제가 되고 말 것”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8.03.22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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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20)> 이상수 전 노동부장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방금 네 번째 질문한 학생, 아주 좋은 질문을 하던데, 국민주권회의에 들어오지 않을래요?”

갑작스런 제안에 청중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수 전 노동부장관의 강연은 시종일관 경쾌했다. 20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을 통해 강단에 선 이 전 장관이 풀어놓는 개헌에 대한 이야기는, 준비된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강의실 한 편에서 취재를 하던 기자도, 어느새 그의 나이를 잊은 열강(熱講)에 빠져들었다.

▲ ˝운전사를 잘 뽑아도 고장난 네비게이션이 있으면 차가 삼천포로 갑니다. 여기서 네비게이션을 다시 제대로 만들자고 하는 게 개헌이에요. 1987년 헌법은 수명을 다 했기 때문이죠.”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시사오늘

◇ 개헌, 왜 해야 하죠?

이 전 장관은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법조인 출신인 그와 헌법과의 인연은 깊다. 고려대 법대 재학 시절엔 3선 개헌 반대 전국비상학생 총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다. 그는 이날 강의에서, 개헌의 필요성과 그 방향에 대해 강연했다.

“개헌이란 게 꼭 지금 해야 하는 거 맞아? 안 해도 잘 사는 것 같은데?”

수 년 전 기자는 한 지인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정치권에 비해, 개헌에 찬성하면서도 그 필요성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 전 장관의 강의는 그 질문에서 출발했다.

“개헌이 왜 필요한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개헌이 밥 먹여주는거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마치 헌법을 우리와 떨어져 있는 문제, 나의 생활과 관계없는 문제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어요. 하지만 법이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여러분의 주변에 흐르고 있는 것처럼, 헌법은 중요한 제도입니다. 법의 가장 중요한 바닥에 있는 것이 헌법이에요. 나라를 제대로 고치려면 헌법이 바로서야 합니다. 집이 무너지려고 할 때는 지붕이나 서까래를 고쳐서 될 일이 아닙니다. 대들보나 주춧돌을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하죠. 그게 바로 헌법을 바꾸는 일입니다.

촛불혁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 한 사람을 파면시키려고 모인 것일까요? 아니에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염원이 깔려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대통령을 잘 뽑고 끝나면 안 돼요. 운전사를 잘 뽑아도 고장난 네비게이션이 있으면 차가 삼천포로 갑니다. 여기서 네비게이션을 다시 제대로 만들자고 하는 게 개헌이에요. 1987년 헌법은 수명을 다 했기 때문이죠.”

이 전 장관이 지적한 대로, 현행 헌법은 1987년 이후 30년 이상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다. 1987년 헌법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이제는 작아진 옷’이라고 표현했다.

“1987년 헌법은 장기독재를 막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만드는 바람에, 대통령제의 단점을 고치지 못한 채였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승자권력제도를 타파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대통령이 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대통령은 인사권, 예산권 등을 장악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승자가 되기 위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선거만 신경 쓰게 되는 겁니다.

제가 겪은 이야길 해드릴게요. 제가 민주당 원내총무를 할 때였어요. 그 당시 협상 상대였던 한나라당 총무는 이재오 전 의원입니다. 이회창 당시 총재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고 절치부심할 때였는데, 협상을 하려고 하면 모든 기준이 선거에 불리하냐, 유리하냐가 기준인 겁니다. 그러니 안 싸울 수가 없었어요. 정치가 더 이상 이런 싸움판이 되는 것을 막는 것. 제왕적 권력구조를 무너뜨려 상생의 정치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번 개헌의 요체입니다. 예컨대 이제는 우리나라가, 사회가 발전한 만큼 옷이 작아져서 더 큰 옷을 입어야 할 시기가 된 겁니다.”

◇핵심은 권력구조, 추천은 분권형 정부제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의 개편에 대해선 크게 세 가지 정도가 논의된다. 현행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것과 이원집정부제의 도입, 그리고 의원내각제 도입이다. 이 전 장관은 각 안에 대해서 장단점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개헌 방향을 제시했다.

“의원내각제가 이론적으로 가장 바람직하긴 합니다. 책임정치가 가능해요.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각불신임이나 의회 해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우수한 제도라고 봅니다. 의회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고, 경륜을 쌓아서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습니다. 다만, 내각제는 정당이 중요합니다. 당을 중심으로 국회와 총리가 결합돼있는 융합적 제도기 때문이죠.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정당, 맡길 만 합니까? 이런 구도 속에선 안 됩니다. 브랜드는 없고 트랜드만 있는 정당들이에요. 확고하게 브랜드가 있고, 규율이 잡혀있는 정당이 있을 때나 가능합니다. 이르다는 거죠.

남은 것은 4년중임제와 분권형 정부제입니다. 이원집정부제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건 사실 맞지 않는 말이에요. 분권형 정부제는 외교, 안보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와 경제는 총리가 맡는 제도입니다. 우리의 외교환경, 지정학적 위험을 감안할 때 대통령은 함부로 바꾸면 안 됩니다. 하지만 총리는 바로바로 불신임할 수 있죠. 국민들이 내각제에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감안할 때, 과도기적으로 해 볼만한 제도 같아요.

4년 중임제는 개인적으로는 단점이 더 많은 제도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대통령이 되면 4년간 다음 집권을 준비하는 ‘8년 단임제’가 될 수 있어요. 아무리 좋은 사람을 뽑아도 그 그늘에서 각종 비리와 부작용이 독버섯처럼 자랄 수가 있습니다.”

◇ 국민중심 개헌이 필요하다

개헌에는 권력구조의 변경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분권을 비롯해 다양한 이슈가 담겨있다. 개헌 이슈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던 이 전 장관은 ‘국민 중심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강의를 맺었다.

“지방분권을 할 시기가 됐습니다. 중앙정부가 모든 걸 하려고 하지 말고, 지방정부가 그 일을 해보다 안 되면 중앙정부가 도와주면 돼요. 학문적으로는 보충성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이 복잡한 시대에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맡을 수 있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리고 지방분권을 위해서 양원제도 고려해볼 때입니다. 요샌 법률안도 도시 중심으로 나옵니다. 이럴 땐 지역별로 인구와 무관하게 똑같은 인원으로 구성된 상원이 필요하죠. 잘사는 지방은 계속 잘 살고, 못 사는 지방은 계속 못 사는 상황을 타개하도록 상원을 두는 겁니다. 하원에서 잘못 통과된 것이 올라가도 상원에서 ‘아웃’시키면 되거든요. 이슈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수도를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헌법에 넣게 되면, 세종시로 제대로 된 행정수도 이전도 가능합니다. 그 밖에도 개헌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뜻이 없습니다. 주권회의 대표를 1년 반 맡아 해보니, 정치권은 선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치인들에게 맡기지 말고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혁명적 분위기만이 개헌을 가져왔습니다.”

이 전 장관은 “헌법개정 주권회의 입회원서라도 가져올 걸 그랬습니다”라고 농담하며 강의를 마쳤다.

박수소리를 뒤로 하고, 한 참석자는 “개헌 대충만 알고 있었는데…, 알찬 시간이었네. 그렇지 않아?”라고 말을 건네며 강의실을 나섰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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