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칼럼>아프지만 얻은 것도 많았던 '백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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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칼럼>아프지만 얻은 것도 많았던 '백호해'
  • 김동성 자유기고가
  • 승인 2010.12.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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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0년을 보내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올해처럼 어울릴 법한 해는 없을 것이다. 시작은 좋았다. 60년 주기로 찾아오는 백호랑이의 해. 국운이 융성하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릴 것이라는 '막 연한' 기대가 올초엔 있었다.

그러나 해가 저무는 마당에 돌이켜보자. 과연 그러했는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행운의 백호해가 무색하리만큼, 격동과 격변이 춤을 춘 한 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왜 그런가, 한해를 복기해 보자. 격동의 일년이 될 것이라는 조짐은 있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를 아울러 논란을 빚었던 세종시 문제가 그 격동의 첫 장이다. 새해를 맞아 들뜬 민심에 정국은 세종시 쟁투로 화답(?)했다.

'갈것이냐, 말것이냐'를 두고 찬반 양론이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팽팽히 맞섰다. 결국, 사태의 종지부는 원안 고수 측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그 중심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있었다.

이미 오래 전 확정된 이른바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를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자족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면서 벌어진 쟁점이었다. 이일로 국론은 크게 분열됐다. 심지어 같은 여권 내에서조차, 상충된 이견으로 인해 '분열'에 가까운 충돌이 있었다.

다음으로 일어난 일은 더 충격적이다. 서해안을 지키던 우리 군함이 하루밤새 흔적도 없이 침몰한 것. '천안함 사태'다. 정부는 북한의 소행이라는 전제를 강하게 깔며, 소위 '증거 찾기'에 적지 않은 인력과 물자를 쏟아 부었다.

어렵사리, 북한의 것으로 보이는 어뢰 파편을 찾아내긴 했지만, 천암함 승무원 46명의 목숨이 사라진 뒤였다. 인명피해로만 따진다면 6.25 이후 최대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이일로 정부는 기존 대북 정책에 한기(寒氣)를 더해, 초강경으로 맞섰다. 온 국민은 전쟁이 일어난줄 알았다.

하지만, 사태가 여기서 그쳤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을, 지구촌 유지들의 모임이라는 G20을 앞두고, 이번엔 직접적인 도발이 일어났다. 북측 서해 해안포가 불을 뿜으면서 최북단 연평도가 초토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전선을 지키던 해병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은 공격 당시 총 170여발의 해안포를 작렬, 연평도의 군시설과 민간시설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확전만 되지 않았을 뿐, 전시와 다름없는 긴장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이것으로 올해는 지는 듯 했다. 그런데 이번엔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말이다. 여야는 이달 초, 새해 예산안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벌이다 급기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사태는 단시간에 마무리됐지만 전례를 찾기 힘든 유혈사태가 일어나면서 민심에 상처를 안겼다.

올 한해 사건이라 할수 있는 것은 이 뿐 아니다. 야심만만, 여권에 민심이 비수를 날렸던 6월 지방선거와 지구촌 유지들의 축제인 G20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5월엔 월드컵이 국민들을 들뜨게 했다. 사상 첫 원정 16강의 쾌거를 이룬 것도 올해다.

국운이 어느 때보다 치솟았지만, 그만큼 아픔도 적지 않았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질 대한민국의 2011년'을 기대해 본다.   <월요시사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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