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노조' 민주노총 붕괴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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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노조' 민주노총 붕괴시킬까?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08.10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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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중심 민주노총 탈퇴 가속화
 
민주노총 와해 제3노조 결성으로 이어지나
KT노조 탈퇴 이어 공공부문 탈퇴 이어질 듯


‘제3노조’가 민주노총을 붕괴시키며 향후 한국 노동운동의 한 축으로 부상할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양대 노총 체제가 굳어진지 20년 만의 지각변동이어서 노동계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학계도 비상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제3노조는 타 직종에 비해 신분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전문성이 확보된 공공부문 노조를 중심으로 결성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제3노조 결성 움직임이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지난달 17일 조합원 수가 2만8,700명에 이르는 거대 KT노조의 민주노총을 탈퇴였다.
 
지난 4월에는 인천지하철(조합원 810명)과 인천국제공항공사(약 700명), 단국대(약 410명) 노조 등 공공성을 띠고 있는 대규모 노조들이 민주노총을 탈퇴해 심상찮은 조짐을 보였다. 과거 1년 평균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노조의 수는 5~6곳 정도였고 비슷한 수의 노조가 새로 가입해 민주노총 전체적인 조합원 수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뚜렷한 탈퇴 양상이라고 봐야 한다. 
 
▲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제3노조'결성 논의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이승철 대변인은 지난 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단위 노조의 탈퇴는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다”며 “조합원 수십 명의 소규모 노조가 탈퇴해도 민주노총의 위기인 양 과대 보도하는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언론보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 대변인은 KT노조의 탈퇴로 전체 조합원 수가 3만 명 가까이 줄어 민주노총의 세가 위축되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민주노총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단체여서 KT노조도 자체적인 결정으로 탈퇴할 수 있는 것”이라며 KT노조 탈퇴에 애써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노사 갈등 노동운동 이제는 맞지 않는다” 공감대 형성 

 그는 “조합원 수가 13만 명에 이르는 통합공무원노조가 가까운 시일 안에 민주노총에 가입할 예정이어서 오히려 민주노총의 세가 이전보다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제3노조 결성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지하철공사(서울메트로)노동조합 정연수 위원장은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은 이전에 민주노총에 가입했던 공무원 단체가 탈퇴 후 재 가입하는 것이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KT노조의 탈퇴 소식이 전해진 직후 민감하고도 신속한 반응을 보여 ‘노조의 자체적인 결정에 불과하다’는 이 대변인의 논평과는 달리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탈퇴 찬성율이 95%나 되는 것을 두고 사측에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노조의 사회적 역할을 버리고 조합원의 실리만을 추구하는 노선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KT노조의 입장은 민주노총의 비난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분위기다. KT노조의 한 중간간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주노총의 노사갈등 구조 설정은 조합원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금 조합원들이 최우선적으로 원하는 것은 고용안정인데 민주노총은 시대정서와 조합원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과도한 정치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정치투쟁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노동운동으로의 변화 요구로 받아들여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 지난 20년간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민주노총은 현장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운영방식으로 노조 탈퇴를 야기하고 있다.     ©시사오늘
KT노조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할지는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노총에서 탈퇴한 후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변경했다가 민주노총마저 탈퇴한 것이어서 양대 노총 어디와도 관계하지 않은 독자노선을 걸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본지와 통화한 중간 간부는 “KT노조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벌일지는 지도부에서 결정할 일이어서 얘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민주노총을 탈퇴한 그랜드힐튼호텔노조 김창신 부위원장은 “현재 매달 한 번씩 특1급 호텔 노조 관계자들이 모임을 갖고 있고 탄력근무제와 영세율 유지 등 실질적 현안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부위원장의 발언은 호텔업계 만이 아니라 타 업종 노조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KT노조 역시 동일 IT업계 노조와 업종별 노조연대를 만들 것이란 예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는 9월 서울과 지방 지하철 ‘궤도 연대’ 성사가 분수령 될 듯

서울과 각 지방 지하철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와 이른바 ‘궤도연대’노조 추진은 제3노조의 윤곽을 보다 뚜렷이 제시한다. 궤도연대 추진의 핵심인물인 서울지하철노조 정 위원장은 “9월 중 민주노총 탈퇴가 확실하고 각 지역 지하철 노조도 같은 시기 탈퇴할 계획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조합원 투표로 당선된 서울도시철도공사(5~9호선 운영) 신임 허인 노조위원장은 민주노총 지지 입방을 밝혀 동반 탈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민주노총 이 대변인은 “부산지하철 노조는 서울지하철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광주와 대구 지하철은 9월에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대의원 투표를 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 위원장의 주장을 반박해 궤도연대가 어느 시기에 성사될지는 확실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정 위원장은 제3노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제3노조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면 ‘새로운 노조’를 사용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노동운동의 이념과 방식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노총은 정부와 자본 의존적인 성격에 근본적 한계가 있으며 민주노총은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요구를 노동운동 현장에서 반영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의 역사는 1946년 결성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반공투쟁과 근로자의 노사협조, 노동자 복리증진을 강령으로 채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4년 대한노총으로 이어지는데 초대 의장은 이승만 대통령으로 정 위원장의 지적처럼 정부와 자본에의 종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해 진보세력으로부터 어용 노조라는 노골적 비난까지 받았다.

이에 비해 민주노총은 지난 1987년 6월 항쟁 후 몰아닥친 노동계 민주화와 자생 노조 운동의 결실로 탄생됐으며 지난 20년간 한국 노동운동계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왔다. 민주노동당의 창당 기반이 됐으며 진보신당 분당 후에도 여전히 민노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기득권 세력과의 대립과 정치적 색채를 정체성으로 견지하고 있다.  

▲ 취업과 등록금 문제에 대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전대협과 한총련 식 학생운동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이 한총련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연수 위원장 “3~4년 내 제3노조 에너지 폭발할 것”

현재의 민주노총은 지난 1980년대와 90년대 학생운동을 진두지휘했던 전대협과 한총련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지난 1997년 IMF사태를 전후해 대학생들의 관심이 경제난과 치솟는 등록금으로 자기계발과 취업 문제에 집중되는데도 전대협을 계승한 한총련은 정치 구호에만 목소리를 높여 대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제3노조는 민주노총과 같이 정치적 주장과 분배의 문제를 일삼는 우물 안 개구리 식 노동운동 방식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노동 없는 자본 없듯 자본 없는 노동도 없다며 노동자들이 임금만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과 소비자의 영역을 아우르는 주체와 주인의 지위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2006년 이후 펼쳐 온 서울지하철노조의 수해지역 복구 지원과 시민마라톤 대회 개최, 노숙자와 장애인 복지 후원, 노조비 일자리 창출 기금 출연 등을 예로 들며 노조가 시민과 함께 하며 신뢰를 얻을 때 새로운 노조가 성공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제3노조가 교원 3단체 중 하나인 한교조처럼 회원 수에 비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정 위원장은 “제3노조 결성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부문 노조는 전문성을 지니고 있어 3~4년 안에 강력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학계도 노조의 다양성 필요 인식

정 위원장은 복수 노조 도입의 필요성도 역설해 제3노조 결성을 넘어 노조의 다양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올 12월 31일까지 유예돼 있는 복수노조 설립이 내년에는 도입돼야 한다”며 “부작용과 순작용 모두 있겠지만 복수노조가 선의의 경쟁을 벌여 노조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활발한 노동운동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도 제3노조 결성 움직임을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고려대의 한 노동법 전공 연구원은 “헌법상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노조 설립은 노동자들의 의사에 달려있는 것이 원칙이지만 국내 노동자의 약 10%만이 노조에 가입돼 있는 현실을 감안하며 새로운 노조가 결성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과연 제3노조가 양대 노총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제3노조 결성과정에서 노동자 회유와 협박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회적 우려도 보인다.

오는 9월 서울지하철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가 결정되면 제3노조 문제는 이전까지보다 찬반논쟁이 뜨거워질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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