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현 변호사의 Law-in-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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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현 변호사의 Law-in-Case>
  • 안철현 변호사
  • 승인 2011.01.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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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수록 냉정한 판단이 요구될 때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 우리는 급한 만큼 평소보다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경험한다. 순간적으로나마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식하게 되도 급하다 보면 그 인식조차도 묻혀버린 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필자도 그런 경험을 해 보았거니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두 번쯤은 그런 경험을 해 보았으리라 짐작된다.

주식회사 영동의 대표인 이 모씨도 회사의 운영자금이 급하게 필요해서 모든 금융권을 돌아다니며 급전을 구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돈이 필요해 쩔쩔매고 있던 이씨에게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황 모씨가 찾아왔다. 다름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엄 모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친구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데 기발한 재주가 있다고 전해 줬다.
 
이에 이씨는 황급히 엄씨를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하자 엄씨는 선뜻 돈을 구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자 엄씨로부터 연락이 와서는 대출이 가능하니 대출서류를 챙겨서 상호저축은행으로 달려오라는 것이었다.

정말 대출이 되는 건지 의아했지만 일단 시키는데 서류들을 챙겨서 그 은행에 황급히 달려갔다. 은행에 찾아갔더니 직원이 대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는 대출거래약정서에 회사 인감도장을 날인하고 연대보증인란에 자신의 이름과 도장을 날인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상호저축은행 직원이 돌아가서 회사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두면 연락해서 그 계좌로 대출금을 입금해 주겠다고 해 회사의 새로운 계좌도 개설하고 계좌번호도 상호저축은행에 알려 줬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은 없고 엄씨가 도망을 갔느니 저축은행이 어떻게 됐다하는 주위 소문만 들려 왔다. 그러나 어차피 대출은 말뿐 물 건너갔으니 설마 자신에게는 별 문제가 없겠지 하고 생각하고는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니! 이게 웬걸?” 어느 날 주식회사 정리금융공사가 회사와 이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장이 집으로 송달돼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소장을 자세히 읽어 보았더니 회사가 상호저축은행로부터 대출을 받았고 여기에 이씨가 연대보증을 했으니 이 두 당사자가 은행의 대여금채권을 양수한 정리금융공사에게 연대해 대여금을 반환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놀란 이씨는 황씨와 엄씨를 수소문해 봤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 없었고, 상호저축은행의 담당직원과 대표도 찾아봤지만 이들은 구치소에 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듣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알 만한 사람을 수소문 해 더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아차’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내리쳤다. 상호저축은행의 임직원과 엄씨가 짜고 급하게 돈이 필요한 회사에 접근해 대출해 주겠다고 속이고, 회사 명의로 대출을 일으키게 한 후 그 돈을 가로채 도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 입장에서는 정리금융공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방어가 가능하겠지만 소송에서 입증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다. 더욱이 이씨가 상호저축은행과 사이에 대출을 받기 위해 자신이 직접 가서 인감증명서도 첨부하고 날인까지 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대출의사를 가지고 대출거래약정을 하였다고 보게 된다. 그에 따라 회사명의의 계좌로 대출금이 입금돼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임직원과 엄 모씨가 짜고 대출금을 가로채 간 사실을 이씨가 입증해야 한다.

물론 그와 같은 입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시 이씨의 판단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모든 금융기관에서 대출이 어려웠다면 상호저축은행이라고 해 대출이 선뜻 가능한 것도 의심스럽거니와 대출규모(20억원)로 보아도 별다른 심사도 없이 전화한통과 날인만으로 쉽게 대출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일이었다. 결국 이씨는 현재 개인파산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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