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대학교수 임용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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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대학교수 임용 부조리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08.10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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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 지연, 금권 동원 등 폐해 여전
금전수수, 학연동원, 낙하산 임용 등 폐해 만연
불법이라는 인식 없이 관행화, 외부 감시 강화해야

 
대학교수 채용 과정에서 갖가지 불공정 사례들이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실적과 능력에 따른 임용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지만 지원자에 대한 평가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자유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이다 보니 교수 임용이 이뤄진 후 그에 대한 당부 판단을 다시 내리기는 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교수 임용 비리가 불거져도 임용에 관여한 심사위원들은 한결 같이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했다고 항변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국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특정 교수나 총장, 이사장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데 교수 임용 비리의 근본 원인이 있다. 교수 임용을 위한 평가위원회가 구성되더라도 특정인의 입김에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해 있으나마나한 명목상의 위원회로 전락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최근 정년퇴임한 서울대 인문대의 오모 교수는 자신이 소속돼 있는 학과의 절대적 실력자였다. 대학원생 선발에서 조교 임명, 교수 채용까지 그의 결정권은 독재 권력이나 다름없었고 그 누구도 항의하거나 문제 삼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 학문의 길은 실력만으로 헤쳐나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진은 한 대학의 학위수여식 장면으로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 시사오늘

 
그가 현직에 있는 동안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학과 건물 주위에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들과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학부생들이 모여 나무 심는 작업을 해야 했다. 유력 일간지에는 ‘학생들 학교 동산 가꾸기에 자발적 참여’라고 보도되기도 했지만 말이 자발적이지 실상은 강요에 의한 울며 겨자먹기식 강제 노동에 가까웠다.
 
실세 교수 입맛대로 대학원생 선발, 교수 임용
 
학부과정에서 4.3 만점에 4.0에 가까운 최상위 학점에 이수 학점도 졸업에 필요한 최소 학점을 훌쩍 넘어 ‘객관적으로’ 볼 때 대학원 진학이 보장됐던 윤영배씨(가명, 당시 24세)는 대학원 입시에 떨어졌다. 대학교수가 꿈이었던 자신은 물론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영배가 떨어지면 도대체 누가 대학원에 가는 거냐”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학과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윤씨의 탈락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오모 교수가 열과 성을 다해 만들고 있는 학교 동산 나무 심기 작업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윤씨는 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1년 재수를 선택했다. 그가 재수 기간 동안 한 일은 외국어나 전공을 공부한 것이 아니다. 매 주말마다 학과 건물 주위에 동산을 가꾸며 오모 교수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나무를 심으며 1년 동안의 재수 기간을 거쳐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원 진학 희망자는 물론 석·박사과정 대학원생, 시간강사와 전임강사까지도 나무 심기에 알아서 동참했다. 시간강사와 전임강사 그리고 교수 임용에 있어서의 오모 교수의 영향력은 대학원생 선발과정 이상으로 절대적이었다. 교수 임용 지원자는 자신의 논문이나 연구 실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동산 가꾸기에서 오모 교수의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임용을 기대할 수 없었다.
 
▲   실험실에서 연구 중인 연구원들의 모습. 이들을 교원으로 임용하는데 지도 교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 시사오늘


국립대 교수로 신분이 보장되는 조교수 이상의 교수진은 오모 교수의 직접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원치 않으면 나무 심기에 나오지 않아도 된 듯했다. 그렇다고 조교수 이상의 교수진이 오모 교수의 ‘횡포’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없었다. 그가 학과 내에서는 물론 관련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막강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통제와 감시를 가장 폭넓게 받고 있는 서울대에서 조차 교수 임용이 실적과 능력에 따라 이뤄지지 않고 특정인의 개인적 취향이나 호감에 따라 행해진다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 교수 임용에 비리가 만연돼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사립대 총장, 이사장 독단으로 임용권 전행 사례 비일비재
 
사립대의 경우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총장, 이사장 등 학내 유력인사가 연줄을 동원해 낙하산식 인사를 자행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방 ㅅ사립대는 총장이 학과 교수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당초 뽑기로 했던 전공과 무관한 전공 교수가 임용돼 학과 교수들이 집단 반발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한 이유는 총장이 주는 면접 점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해 학과 교수들의 부적격 판정을 총장 한 사람이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ㅅ대학교 공고에는 전산개론 전공자를 뽑는다고 했지만 신규 채용은 응용계통이었다고 한다.
 
▲ 한 대학의 연구실 모습. 교수 임용 과정에서 파벌간 알력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 시사오늘


서울의 ㅎ사립대학의 경우는 학교 설립자의 친척을 교수로 채용하기 위해 학과에서 필요하지 않은 전공 교수를 채용한 사례도 있다. 이 학과는 학생당 교수의 비율이 다른 과에 비해 높은 편이고 신규 임용된 교수의 연구실적도 낮아 설립자가 인사권을 전행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방의 ㅂ사립대는 학위 논문 이외에 연구업적이 전혀 없어 학과 심사에서 최하위로 평가된 후보자를 이사장이 직접 임용하는 상식 밖의 일도 벌어졌다.

서울의 ㅅ여대에서는 현직 A교수가 처조카의 교원 임용 추천서를 써주고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해 물의를 빚은 일도 있다. 처조카는 현직 교수 출신 지원자 등 경쟁자들을 제치고 대학 인사위원회를 최종 통과했다. 교육과학기술부 등에 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ㅅ여대는 자체 진상조사를 벌여 교수 임용이 합법적인 절차와 방법에 의해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A교수 역시 처조카가 학부와 대학원을 자신 밑에서 나와 추천서를 써줬고 다른 교수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심사에 임했기 때문에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의구심을 사고 있다.

학연에 의한 교수 임용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타대 출신 교수 임용에 배타적인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최근까지도 95% 이상 자대 출신 교수를 임용했으며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사립대학들도 자대 출신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대 출신 교수 임용에 배타적 관행도 뿌리 깊어
 
지방 ㅊ국립대의 사례는 교수 임용에서 학연이 어떤 폐해를 일으키는지 좋은 예로 꼽힌다.  이 학교 공대의 한 학과는 교수 8명 중 인하대 출신 한 명을 빼고 전부 서울대 출신이었다. 서울대 출신 교수들은 담합해 인하대 출신 교수를 몰아내려고 했다고 이 학부 졸업생이 본지에 알려왔다. 서울대 후배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특정 학교 출신만 교수진을 구성하고 있는 학과에 연구비 등의 지원을 줄이는  방법으로 교수진 구성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자대 출신 교수 비율이 다소 감소하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높은 비율을 보이는 것은 학연에 의한 교수 임용의 폐단이 뿌리 깊다는 뜻으로 보면 틀리지 않을 듯하다.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의 사례는 같은 대학 출신 교수들의 담합과는 양상이 다른데 ‘신구의 대립’에서 구세력이 신진 세력에 부당한 임용권한을 행사한 경우다. 김 교수는 소속 학과 원로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공론화했다가 미움을 사 연구실적 미흡이라는 억지 논리로 지난 1998년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는 무학점 수업으로 학생들과 교류하며 7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복직한 후 2005년에야 어렵게 수업 배당을 받게 됐다.
 
가장 고전적 폐해는 ‘금전수수’
 
교수 임용 비리의 고전적인 사례는 금전 수수다. 임용을 바라는 지원자가 먼저 제시하는 경우보다 임용권자가 ‘기부금’ 명목으로 요청하는 것이 보통이다. 학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은밀하게 수수가 이뤄져 공개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서울 한 사립대의 K교수는 본지의 취재 요청에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계속된 요청이 이어지자 익명을 조건으로 다양한 금전 수수 사례들을 공개했다.

서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국내 국립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한 교수는 미국의 유수 주립대에서 교수직을 제의 받았지만 국내 대학에서 일하고 싶어 모두 고사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플로리다 주립대였다. 실력에서는 어느 대학에도 임용이 가능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기부금 요구를 받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포스트 닥터 과정(박사 후 연구 과정, Post-doc)에 있던 한 교수는 충남의 한 사립대에 교수직을 지원했다가 “1억 정도면 손을 써주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는 사례도 있다고 K교수는 본지에 밝혔다. K교수는 임용 당시 기부금을 받지 않는 대신 부임 첫 해나 심하게는 3년간 연봉을 주지 않는 대학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교수 임용 비리는 비리로 받아들여지기보다 관습이나 관례인 양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강하다. 대학의 자체 노력으로 교수 임용 비리를 시정하기에는 우리 대학의 역사가 너무나 일천해 보인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 기관과 관련 시민단체의 외부 감시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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