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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 사찰 탐방②해인사 팔만대장경
가야산 소리길과 사찰 비경
고운 최치원 선생과 성철스님의 흔적
2018년 05월 29일 17:50:35 정명화 자유기고가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명화 자유기고가)

여정을 잡은 디데이에 비소식이 들렸다. 비에 젖은 산사(山寺)라…나쁠 것 같지 않았다.

화엄사 및 쌍계사 탐방에 이어 다음 행선지는 통도사, 송광사와 함께 국내 3대 사찰에 속하는 '합천 해인사'.

유서깊은 사찰 해인사와 부속 암자들을 품고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가야산, 그리고 '해인사' 하면 떠오르는 팔만대장경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으로 무척 설레인 첫 걸음을 내딛었다.

해인사는 지리상 경남 합천군에 있으나 동선으로는 경북 고령군에 가깝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다소 접근이 어려운 산세 깊은 가야산에  자리하는데, 시외버스 편으로 대구나 고령에 도착한 후 대구, 고령터미널에서 해인사행 버스로 환승해 가면 된다. 

소리길

   
▲ 소리길 계곡. ⓒ정명화

가야산은 해인사뿐 아니라 걷기에 안성맞춤인 '소리길'이 조성되어 있으므로, 해인사 탐방과 함께 소리길을 트래킹하면 일석이조의 여정을 즐길 수 있다. 

   
▲가야산 소리길 안내. ⓒ정명화

가야산소리길은 홍류동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탐방로이다. 코스는 소리길입구 - 무릉교 - 농산정 - 길상암 - 낙화암 - 영산교 - 해인사 입구에 이르는  총 7km 둘레길로 2시간 남짓 소요된다.

경남 합천군은 관내 둘레길 가운데 한 곳인 ‘합천 해인사 소리길’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이달의 추천길(5월)에 선정됐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5월의 해인사 소리길은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울창한 숲터널과 이팝나무 개화로 장관을 이뤄 탐방객의 발길이 잦은 명품 둘레길이다

해인사

   
▲해인사 일주문. ⓒ정명화

가야산 중턱 해발 고도 약 700m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하였다.

신림의 제자 순응은 766년(혜공왕 2) 중국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수년 뒤 귀국하여 가야산에서 정진하였으며, 802년(애장왕 3) 해인사 창건에 착수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성목태후가 불사(佛事)를 도와 전지(田地) 2,500결(結)을 하사하였다. 그 후 순응이 갑자기 죽자 이정이 그의 뒤를 이어 절을 완성하였다.

해인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에 '법보사찰'이라 불린다.  ‘해인’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말로 ‘진실된 세계’를 뜻한다고 한다.

해인사에 들어서면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등 세개의 문을 차례로 만난다. 일주문의 일주는 일심을 뜻해, 일주문은 일심으로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를 향한 첫발을 내딛는 문을 의미한다.

   
▲ 봉황문에서 바라본 일주문. ⓒ정명화

두번째 문인 봉황문까지 일주문에서 80m가 떨어져 있을 정도로 긴 길이 인상적인데, 길가엔 오랜 고목들이  위엄있게 서 있다.

   
▲ 봉황문. ⓒ정명화

일주문에 이어 해인사 금강문과 천왕문에 해당하는, 가람과 불교를 수호하는 금강역사와 사천왕이 서 있는 봉황문에 이른다.

이어 계속해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의 세계인 불이의 세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에 도달한다. 일주문에서 해탈문에 이르는 계단 서른 세 개는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을 상징한다고 한다.

   
▲ 승방 사운당. ⓒ정명화
   
▲ 해인사 종각. ⓒ정명화
   
▲ 정중삼층석탑. ⓒ정명화

탑은 원래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던 곳이었으나 이후에 사리, 경전, 불상 등을 보관하는 곳으로 발전했다.

정중삼층석탑은 해인사의 길상탑이라고도 불리며 불상을 보관하던 탑으로, 해인사 창건당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탑 속에서 최치원이 쓴 탑지와 157개의 소탑같은 유물들이 함게 발견되었다.

   
▲ 해인사 본당 대적광전. ⓒ정명화

해인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 및 국보, 보물 등 70여점의 유물들이 산재해 있는 규모가 큰 사찰중 한 곳이다. 특히 명산인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그 웅장함과 주변 경관이 경이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수가 어우러져 가히 비경이라 하겠다.

   
▲ 대적광전에서 예불을 마치고 퇴청하는 승려들의 모습. ⓒ정명화

팔만대장경

   
▲ ⓒ정명화
   
▲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 입구. ⓒ정명화

해인사를 유명하게 만든 건 국보 제 32호인 팔만대장경판이다.

81,256장의 ‘경판(經板)’으로 이루어진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인 1236년부터 16년 간의 작업 끝에 1251년에 완성되었다.

과거 고려 조정은 몽골족이 7번이나 고려를 침입해 혼란에 빠지자, 평화를 소원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부처의 말씀을 목판에 새기도록 했다.

팔만대장경판은 8만 개가 넘는 경판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한 사람이 새긴 듯 정확하고 반듯하게 새겨져 있어, 고려 인쇄술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 알 수 있다.

   
▲ ⓒ정명화
   
▲ 수다라장 입구. ⓒ정명화

8만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인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은 국보 제52호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해인사 건물 대부분은 근세에 세워진 것이고, 장경판전만이 조선 초기에 세워졌다. 그러다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경판전은 건물 자체가 특수한데 똑같은 규모양식을 가진 두 건물이 남북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어 남쪽을 수다라장(修多羅藏), 북쪽을 법보전(法寶殿)이라 칭한다. 

다행이 해인사가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에 낡아진 것을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을 중수하고 인조 2년(1624년)에는 법보전도 중수하였다.

   
▲ 수다라장 앞면 창들. ⓒ정명화

장경판전은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모양은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 법보전. ⓒ정명화

그렇다면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팔만대장경을 어떻게 변치않게 보관할 수 있었을까?  필자가 가장 궁금히 여겼던 대목으로 참고자료를 찾아 보면서 의문점이 많이 풀렸다.

먼저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어 습도 조절을 함으로써, 목조 건물인데도 벌레가 생기거나 습기가 차지 않아 지금까지 경판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한 요인이 됐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래 보관할 경판을 만들기 위해 고려인들은 경험을 토대로 산벚나무를 선택했다. 산벚나무는 물관이 나이테에 골고루 퍼져있어서 수분 함유율을 일정하게 유지 할 수 있단다.

벌채한 산벚나무는 바다를 통해 운반하고 판자로 자른 후에 다시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렸다. 이렇게 하면 판자 내의 수분 분포를 균일하게 하고 나뭇결을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나며, 옻칠을 하여 방충 기능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변치않게 보관할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은 팔만대장경의 보관창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두 경판전은 1,430미터의 가야산 중턱인 665미터 지점에 남서방향으로 앉아 있는데, 북쪽은 산으로 막혀있고 남쪽은 열려있다. 이건 습기를 많이 머금은 동남풍이 자연스럽게 건물 옆으로 흐르게 하기 위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단다.

아침에는 남쪽 면 탁 트인 넓은 아래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이 경판꽂이는 피하고 바닥만을 데워서 따뜻하게 하고, 남쪽 바닥은 아랫목이 되는 반면 북쪽 바닥은 찬 윗목이 된다. 그러면 아랫목의 더워진 공기가 팽창하면서 위로 올라가서 윗목의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대류가 일어난다. 그리고 오후에는 오전과는 반대방향으로 공기가 흐른다. 그 결과 경판전 내부의 온도와 습도가 균일해 진다는 이론이다.

   
▲ 법보전. ⓒ정명화

또 경판전의 벽면에는 위아래 두 개씩의 창이 있는데 그 크기가 서로 다르다. 남쪽은 아래 창이 큰 반면 북쪽은 위쪽 창이 크다. 이것은 외부 공기가 큰 창을 통해서 들어오고 작은 창을 통해서 나가게 되어 있는 구조로서, 외부의 건조한 공기가 경판전 내부에 골고루 퍼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준다.  이때 두 장씩 포개 세워져 꽂혀 있는 경판들은 굴뚝 효과를 일으켜서 온도와 습도의 조절을 도와준다고 한다.

이렇듯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겨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상기와 같이 섬세하고 과학적인 숙고끝에 제작된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팔만대장경판과 장경판전은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다만 이전엔 장경판전 실내가 일반에 공개되었으나, 남대문 화재 등 문화제 훼손이 많아 이젠 보호 차원에서 밖에서  창틈 사이로 실내를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최치원과 성철스님

오랜 해인사 역사에서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 갔는데, 그 중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인물로 문장가 최치원 선생과 성철스님을 들 수 있겠다.

   
▲ 학사대. ⓒ정명화

학사대는 해인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인 최치원이 만년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전해진다. 

최치원은 신라 말 당나라에서도 이름을 떨친 최고의 문장가.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관직을 지내다가 28세가 되던 해에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엄격한 골품제를 따랐던 신라에서 6두품이었던 최치원은 뜻을 펼치기 어려웠다. 이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난 최치원은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남은 생을 마쳤다고 한다.   

   
▲ 성철스님 사리탑. ⓒ정명화

21세기에 이르러 해인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성철스님이다. 해인사 탐방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들른, 해인사 일주문 밖 100m가량 위치에 현대들어 해인사에 주석했던 고승들의 사리탑과 탑비가 세워져 있다. 무엇보다 맨 윗쪽에 성철스님의 사리탑이 자리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로 유명한 성철스님은 1936년에 출가해 해인사에서만 57년간 칩거하며 정진했다.

16년간 생식을 하고 8년간 눕지 않은 채 장좌불와로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한 스님의 행적은  많은이에게 감동과 화두를 던졌다.

이와 같은 성철 스님의 사리탑은 외양에서 기존의 것들과 차별화됐다.  구와 반구, 원을 겹쳐놓은 디자인이 모던하고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평소 성철스님 이미지랑 언밸랜스하다 생각됐지만 미래를 내다본 컨셉이 아닐까.  

설치예술 디자이너인 제일동포 최재은씨가 설계한 것으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위와 같이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해인사는 수많은 고승들의 수행처로 팔만대장경이 안치되어 있는 문화재적 위상 이외에도, 가야산 절경과 어우러져 천년고찰로서 웅장하고 무게감 있는 외관까지, 그 유명세와 위세를 떨치기에 충분했다. 

이와 더불어 세계 문화유산을 소장할 자격이 충분하다 느껴진,  빼어난 산세를 지닌 가야산의 재발견이라 하겠다.  

이 날의 여정은 특히 계곡 물소리에 더해 봄비 떨어지는 소리, 가야산을 뒤덮은 자연의 숨쉬는 소리까지 영혼이 정화되는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들리며  '소리길'의 아름다움이 물씬 다가온 무념무상의 시간이었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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