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6·13 民心과 정국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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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6·13 民心과 정국 과제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6.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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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요구 반영, 與野 모두에 엄중경고
보수정치 궤멸…換骨奪胎 거듭나야
악화일로 국정難題 '견제균형'이 해법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6.13선거는 국민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한지를 보여줬다.

투표율 부터가 그렇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야간 극한 쟁점도 없고, 정책 논점도 약한 선거로 무관심 속에 캠페인이 전개됐지만, 투표율은 60.2%로 23년 만에 60%를 돌파했다. 정당과 후보들의 퇴행적인 모습에도 민심은 표로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확고한 주권의식을 드러냈다.

큰 흐름은 두가지다. 눈앞의 이익 또는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계파 갈등이나 벌이고 지역적 기반에 기대어 적당히 안주하려는 정치세력에는 최소한의 공간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또 하나, 집권세력의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데도 불구, 선거 기간중 열린 미·북 정상회담이 여당으로 바람이 불게 한것은 '구태의연한 보수개념'의 야당들로서는 더 이상 대안세력이 될 수 없게 됐음을 웅변했다. 북핵 문제는 급변하는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新보수적' 비판과 대안이 아닌 한, 해묵은 타성의 정쟁식 대응은 결정타를 맞을 수 밖에 없음을 기록했다. 이런 관점에서 6.13선거 이후 정국 과제를 조감한다.

文정권 3권장악 파장

이번 선거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중앙권력에 이어 지방권력까지 독점하게 됐고, 야당의 궤멸로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시스템의 기본 작동원리는 붕괴되고 말았다.

국회 내 범 여권 의석도 절반을 훌쩍 넘는 156석까지 늘어났으며, 사법부까지 친(親)정권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양상이다. 사실상 3권 모두를 장악한 文정권은 민주화 이후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게 됐다.

여기에 보수 야권 전체는 선거 참패 충격으로 대격변에 휩싸이는 형국이다. 자유한국당 재편과 맞물려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적지않다. 앞으로 국회의원 총선이 있는 2020년까지는 큰 선거도 없다. 정부 여당의 국정운영 독주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이런 정계구도에서 국가 명운을 시험하는 중차대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북핵 문제부터 계속 간단치 않고, 최악의 바닥권으로 흐르고 있는 경제·민생 문제 역시 쉽게 풀릴 리 없는 최대 초점이다.

여야 모두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성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민심은 여당에 힘을 실어줬지만, 오만하면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개연성도 적지않게 됐다. 착각한다면 수구 보수를 강타했던 이번의 그 파도처럼 진보권력의 배도 언젠가는 한꺼번에 뒤집어지게 될 것이란 경고도 내재돼 있다.
큰 권력에는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 역시 국정의 실질적 핵심은 경제와 민생이다. 외교는 그 다음이다. 정부 여당은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소득주도 성장’ 등 으로 대변되는 그동안의 실험적인 정책들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그간 문 정부는 일자리·친노동 정부를 표방했지만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으로 한계 노동자들의 생활은 오히려 악화됐고 실업자는 더 늘었다. 더 큰 난맥이 예고된다. 따라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붕괴를 몰고 온 야당 세력의 참된 복원 여부는 향후 정국의 최대 숙제로 등장할 수 밖에 없다.

극적인 민심변화

선거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1995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 부활 이래 특정 정당이 가장 많은 광역단체장을 탄생시킨 기록으로, 여당의 완벽한 승리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당시 16개 시·도지사 중 12곳을 차지했던 게 그동안 가장 압도적인 차이로 승부가 갈린 지방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그 때보다도 훨씬 격차가 크다.

민심 변화는 더 극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시, 보수의 아성으로 통하는 서울 강남구의 단체장 자리마저도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1995년 첫 지방선거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보수의 ‘강남불패 신화’를 깨고 서울 강남구청장, 송파구청장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야당의 텃밭인 부산 울산 경남 광역단체장도 여당이 싹쓸이했다.

1997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진보집권 10년의 피로현상으로 탄생한 이명박·박근혜 두 전 대통령의 실정과 구속, 당시 집권당인 자유한국당의 무능과 무책임에 여전히 국민이 깊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남짓 지난 시점에 치러졌지만, 야당이 주장한 '정권 심판론'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한국당의 참패는 대통령 탄핵사태를 초래한 정당으로서 자성하지 않고, 게다가 민심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과거 구태의연한 색깔론 프레임으로 맞섰을 뿐 아니라, 견제 야당으로서 민생과 경제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거듭된 당 내분과 지도부의 행태도 악재로 작용했다.

▲ 지난 15일 선거참패 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뉴시스

여권 독주 우려

향후 국정의 1차적 향배는 무엇보다 여권의 독주 가능성에 있다. 사실상 ‘여소야대’였던 상황에서 정부 여당이 정책을 일관되게 집행할 수 있는 기반으로 역전시켰을 뿐 아니라, 지방 권력도 차지함으로써 말단 행정에까지 국정을 스며들게 할 우호적 환경을 모두 구축했기 때문이다.

승리에 취해 자칫 오만과 독선의 유혹에 빠져든다면 민심은 가차없이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승리 이후 당시 한나라당의 경우가 꼭 그랬다. 유권자들이 큰 승리를 안겨줬지만, 막중한 책임도 함께 부여했음을 文정권 전체는 명심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결코 자만하거나 안일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간 국정 담당세력이 보여준 정책적 오만함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앞으로 여당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민주당은 당·정·청의 한 축이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입법부의 주축으로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견제와 균형'의 야권 시스템이 무너저버린 상황에서 여당마저 청와대 거수기 노릇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머지않아 정치적 낭패를 자초하고, 국가도 어려움에 빠뜨리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여전히 민생현장은 고달프고, 저소득층의 소득은 감소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경제정책의 성과는 ‘투표’가 아니라 ‘지표’로 나타난다. 이미 대부분 경기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생산 소비 투자 모두 둔화세가 뚜렷하다. 실업자도 실업률도 역대 최대·최고 수준이다. 올해 목표성장률 3% 달성이 어렵다는 관측이 팽배한 것이 현실이다.

경제난국과 '시장보수論'

경제계에서 선거이후 기대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미 곳곳에서 드러난 부작용으로 인해 ‘속도조절론’이 제기됐지만, 이번 선거로 묻혀버릴 공산이 커진 탓이다.

당장 국회에서는 기업들의 경영권을 더 제약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내달에 결정될 내년 최저임금도 올해에 비해 15% 이상 올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또 한 차례의 경제 충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 간 통상 분쟁도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엔 대형 악재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교역중단까지 언급해가며 보복을 다짐하고 있어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측 불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세계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을 동원한 돈 풀기 의존의 정책기조를 고수해왔다. 최근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기금의 총지출 규모는 458조원으로 올해보다 6.8%나 증가했다. 특히 교육 국방 복지 외교통일 등의 비용이 크게 늘었다. 정부는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조만간 보유세를 올리는 증세 카드도 내놓을 예정이다.

문 정부가 그렇게도 고수하는 ‘소득주도 성장’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미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나면 당장은 돈을 풀어 막을 수 있지만, 재정과 세금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결국 그 피해와 부담은 다음 정권, 다음 세대에까지 이전되게 된다.

여기에는 야권의 책임론도 맞물린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비현실적이라면 비판만 하기에 앞서 시민을 향해 대안을 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보수적 해법이라도 내놓으면서 비판해야 설득력이 생긴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건강한 토론을 통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이번 선거로 파멸해 버린 보수 야권이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면서 민생을 보살피는, 이른바 '시장 보수'야말로 정치회생을 모색할 수 있는 일단의 방법론도 될 수 있을 것이다.

對국민 '진정성'과 敗因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기존 보수 지지층조차 대폭 등을 돌렸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상 정권 심판이 아닌 야당 심판이었다. 113석이나 가진 보수 정당의 몰락은 한국 정치에 커다란 불균형을 가져오게 됐다. 또한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의 ‘3위’ 낙선이 말해주듯 야당의 존재 이유도 불투명해졌다.

관건은 역시 국민에 대한 '진정성'이다. 한국당은 선거에서 참패한 후 의원들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했다. 한국당은 전신인 새누리당 때인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직전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며 읍소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개혁과 반성이 입에서만 맴돌았을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국당 의원들은 ‘사죄 퍼포먼스’가 끝나자마자 초선과 중진의원들이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기에 바쁘다. 조기 전당대회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옥신각신하고 친홍준표계, 친박근혜계, 비주류 등이 당권 장악을 위해 골몰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당은 지난 2008년 총선에선 친이(親李)의 친박 몰아내기, 2012년에는 친박의 친이 찍어내기, 2016년에는 진박(眞朴)과 비박(非朴)의 골육상쟁으로 공천을 망쳤다. 이어 친박, 비박 싸움이 없어진 자리에는 친홍, 반홍 싸움이 이어졌다. 한국당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나는 말고 네가 희생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늘 국민보다 다음 공천 생각을 우선했다.

급기야 이번에는 자기 당 후보조차 ‘선거에 도움이 안 되니 유세장에 오지 말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당 대표가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며 유세를 포기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런 가운데 ‘낡은 패러다임’의 정치노선은 이번 선거에서 야당 궤멸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홍준표 전 대표가 보인 행보는 전형적이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느냐’는 구호를 내세운 게 대표적이다.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문 정부가 북한에 나라를 팔아넘기려 한다는 시대착오적 선동이었다.

시민들은 사소한 범법행위도 처벌받는데 전직 대통령들의 엄청난 비리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방탄국회로 동료를 감싼 행위도 그러했으며,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축하려는 정부의 정책도 세금을 쏟아붓는 '포퓰리즘'으로만 치부했다. 전문화된 대안은 내놓지 않으면서 강경 일변도의 대여 투쟁에만 치중했다.

선거 결과로 드러났듯 이제 야권은 대안 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하면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2016년 총선과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까지 국민이 3연패의 경고를 보낸 까닭이기도 하다.

결국 패인은 내부에 있다. 그런데도 홍 전 대표는 선거 후 “나라가 통째로 (민주당으로) 넘어갔다”고 말했고, 김성태 원내대표는 “탄핵의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아직도 참패 원인을 바깥에서 찾고 있다.

홍 대표는 선거 후 지도부와 함께 사퇴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도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보수 재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새 리더십 구축에서부터 당의 전면적 쇄신, 나아가 당 해체까지 거론되고 있다. 한국의 보수 야권은 현대 정치사에서 다시 중대고비를 맞았다.

보수 회생 논란

이번 선거로 거듭 확인된 보수우익의 위기는 일개인의 진퇴나 이합집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정농단과 탄핵정국, 야권 지리멸렬에 책임이 큰 기득권 세력과 웰빙정당 체질들의 일선 후퇴를 대전제로 전면 쇄신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합리적 보수와 중도 보수를 불러오려면 처절한 노력이 절실하다.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철학으로 무장하지 않는 한 보수의 재건은 요원하다. 보수당들이 진정 정치적으로 재기하고자 한다면 기득권을 버리고 보수의 철학과 노선을 재정립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나 패배후 정작 회생노력은 미온적이기만 하다. 한국당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이 혁신안으로 발표한 내용부터가 그렇다. 그 골자는 △중앙당 해체 △당명 개정 △원내중심 정당 구축 △구태청산 태스크포스(TF) 가동 △외부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는 ‘정당 자산을 국고에 반납하고 바닥부터 시작하자’는 정당 해산 차원의 해체 주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당 해산 요구까지 제기되는 마당에 한국당의 첫 답변이 사무처 당직자들을 줄이는 중앙당 슬림화라는 것은 핵심을 비켜가도 한참 비켜간 것이다. 마치 잘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비대한 중앙당 조직만 문제였던 것처럼 말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김 권한대행은 비대위원회를 꾸려 인적 청산을 강하게 하겠다고 말하지만 청산해야 할 것은 친박 세력을 비롯한 구시대적 의원들이지 사무처 직원이 아니다. 중앙당 해체를 넘어 거의 당 해체에 버금가는 수준의 외부 인사 수혈이 필요하다. 박 정권에서는 친박으로, 홍 대표 체제에서는 홍 대표의 앵무새 노릇만 하던 초선의원들, 당의 미래보다 당권에만 관심 있는 중진들로는 개혁은 구두선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앞으로 당명 교체, 당 색깔 변경 등으로 과거에 해왔던 '쇼'를 또 하고 2020년 총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가장 중요한 세대교체와 인적 쇄신은 거의 손대지 못할 것이다. 패배는 다시 불을 보듯 뻔하다.

실질적 산고(産苦) 중요

국민적 '진정성'을 외면한 비생산적 내분의 타성도 그칠 줄 모른다. 당 쇄신의 강도와 방향을 둘러싼 논란과 주도권 다툼이 시작되고 있어 혁신의 앞길은 더욱 불투명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네탓 공방만 치열하다. 김 원내대표의 혁신안에 대해 당내 중진들 사이에서는 “청산 대상이 쇄신을 주도한다”는 비판부터 나왔다. 재선 의원들은 김 원내대표가 의원들과 논의도 없이 중앙당 해체를 선언했다며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앞서 초선 의원들은 중진들의 정계은퇴를 촉구했다. 친박계, 친홍계, 바른정당 복당파 등 각 계파는 각자 입장에 따라 유불리를 판단하고 있다. 사즉생의 각오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선수별, 계파별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비대위원장의 당내 인사 추대냐, 외부인사 영입이냐를 놓고도 당내 이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대표 대행이 이른바 '당 혁신안'을 일방적으로 불쑥 밝힌 것도 당내 분란을 추가하는 요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당 대표가 물러난 상황에서 원내대표가 대표 대행으로 당을 이끄는 것은 당헌에 따른 권한이지만,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마당에 당 혁신 로드맵을 짜는데 있어서는 의원총회 등 당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는 게 바람직하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당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논의와 행동이 선행되지 않은 채 틀에 박힌 당명 개정부터 먼저 끄집어낸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수 재건은 처절한 반성과 자기희생이 출발점이다. 책임과 희생이야말로 원래 보수의 최대 가치이기도 하다. 낡은 보수를 버리고 새로운 보수의 정체성을 세우는 게 급선무다. 개혁 보수의 이념과 가치를 재정립하고, 그 깃발을 움켜쥘 새 인물의 수혈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이 과정에서 노선 투쟁은 불가피할 것이고, 인적 청산도 수반될 것이다. 새로운 보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고통스럽지만 거쳐야 할 통과 의례이자 실질적 산고(産苦)가 될 것이다.

건전한 보수의 길_. 야권의 갈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그것은 한국 '보수정당' '우익정치'의 역사가 그만큼 굴절되어 왔음을 다시 일깨운다. 현대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을 정도다. 공작정치, 밀실정치, 여론조작의 관행이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보 주무기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제 야권은 정당을 해산하는 한이 있더라도 원점에서 보수의 이념과 가치를 재정립하고, 이를 제대로 수행해 낼 만한 새로운 인물들로 보수 정당의 중심축을 환골탈태(換骨奪胎) 시키라는 국민적 명령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정계개편 향방

그런 면에서 이번 지방선거 후 한국의 정치지형 '현실'을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정치지형은 거대 여당 자민당과 고만고만한 여러 야당이 공존하는 일본을 연상시킨다. 무늬만 다당제일 뿐 모든 권한이 자민당에 집중된 1.5당제 형상이다.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지방권력은 민주당 1당 독주 체제가 확립됐다. 절대다수 지자체에서 견제세력이 전무하다.

그것은 야권에서 정계개편론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보수 정당 '중심축'의 시발점으로 야당발 정계개편은 필요하다.

현재 야당가에서 거론되고 있는 방안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평화민주당까지 포함한 중도ㆍ보수 대통합론이다. 보수의 외연 확대가 급선무이긴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공학적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기성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권 밖에 통합기지를 만드는 ‘빅텐트론’도 거론되지만 과거 보수와 차별화할 만한 구심점을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30~40대 중심으로 보수의 새 틀을 짜는 과감한 인적쇄신 방안도 나오고 있는데, 이상적인 방안이지만 현실적 합성은 다소 떨어진다.
합리적인 비판적 사고로 무장한 새로운 야당만이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야권의 정계개편 노력은 국민적 '진정성'의 바탕에서 더욱 철저한 노력이 요구된다.

보수 없는 정치는 실로 위험하다. 민주주의는 진보와 보수의 건전한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다. 견제받지 못하는 권력은 결국 부패하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정부 여당 스스로 중심과 균형을 잡지 못하면 5000만 국민이 승선한 대한민국호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정부와 집권당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진보와 보수, 좌우 양쪽의 날개로 나는 정치가 건강하다. 입법·사법·행정부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권력 독점과 부패를 막아야 하듯, 똑같은 논리로 야당은 권력을 쥔 여당의 독주를 막고 정책 실행과 법 집행의 공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보수 야당의 몰락은 한국 정치의 큰 재앙에 다름아니다.

정치개혁 소명(召命) 성공을 

이를 타개할 활로는 무엇이 돼야할까. 현대史는 역시 그 해법의 단서를 던진다. 영국도 오늘의 우리와 비슷한 이례적 선거결과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지난 1997년 5월 영국은 18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당시 총선에서 노동당이 여당인 보수당을 누르고 새로운 집권당으로 등장했다. 영국의 유권자들이 변화와 개혁을 선택한 결과다. 이른바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보수당 집권이 막을 내리고 젊고 패기에 찬 43세의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5년간 영국을 이끌어 가게 됐다.

보수당의 참패는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욕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데 원인이 있었다. 보수당 정권은 정치, 경제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만큼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보수당에 등을 돌린 것은 장기집권과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총선이전,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은 과감한 자기혁신을 추구했다. 블레어는 생산수단을 국가소유로 규정한 당헌을 철폐하는 등 좌파적 이데올로기를 떨쳐버리고 국민 정당으로의 환골탈태를 이룩했다. 그러면서도 보수당의 실적을 인정하는 겸허함을 잃지 않았다. 결국 블레어의 이러한 과감한 자기 혁신과 겸손함, 그리고 젊음과 참신함이 영국 유권자들에게 '21세기의 지도자'로 비쳐지게 됐고 그것이 총선에서의 압승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어느 정당이건 부단한 자기 혁신과 개혁 없이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도자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한 덕목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일깨운다. 이 교훈은 오늘 표류하게된 한국의 보수 야권에도 어김없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한국 정계는 이제 여당에 대한 견제력 약화를 초미의 과제로 걱정해야 하게됐다. 변화도 없고 혁신도 없었던 보수 야권은 근본부터 바꾸지 않으면 살아날 길이 없다. 우리 헌정사상 숱하게 정치개혁이 제기됐었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단행된 적이 없었음도 유의해야만 한다.

오랜세월, 정치 파행의 근원이 돼온 한국의 수구.보수정치는 이제 진정 거듭나야 하게됐다. 건강하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로서는, 일관성있게 우리조국 대한민국의 번영과 국가안위에 대한 국민적 믿음을 확고히 구축하는 방향으로 일대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불행의 역사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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