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 부인 김희숙 여사 별세…˝어머니가 가족을 지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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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부인 김희숙 여사 별세…˝어머니가 가족을 지켜줬다˝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8.07.02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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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2세의 일기로 2일 별세…장준하 공원 묘지 합장 예정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92세의 일기로 2일 세상을 떠났다.ⓒ뉴시스

재야의 대통령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향년 92세의 일기로 2일 별세했다.

김 여사는 이날 오전 11시24경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장준하 선생은 독립 운동가이자, 정치가이자, 반독재에 저항하는 재야의 거목이었다. 월간종합교양지 <사상계> 발행인 겸 학자아지 사상가였다. 유신체제 당시인 1975년 8월 17일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거사를 준비하던 중 향년 56세의 나이로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장 선생 부인 김 여사는 남편이 숨지기 전까지 민족통일지와 민주주의 함양 잡지인 <사상계>를 함께 발행하며 물심양면의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김 여사는 장 선생이 평안북도 신안소학교 교사로 부임했을 무렵인 1943년 11월 5일 혼인했다. 원래 장 선생은 개신교였지만, 결혼 후 김 여사를 따라 천주교로 개정했다.

이듬해인 1944년 장 선생은 학도병으로 끌려갔고, 김 여사는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장 선생의 부친이 신사참배를 거부해 요주의 집안으로 시찰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장 선생은 일본군에서 탈영해 광복군에 몸담아 독립운동을 벌였다. 해방 후에 장 선생이 백범 김구 선생을 도울 때도, 유신 체제에서 재야 활동을 벌이는 동안 김 여사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는 등 고생을 함께했다. 특히 1967년 제7대 총선 당시 옥중 출마한 장 선생을 대신해 유세연설을 해 당선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 선생 생전에도 정부의 감시 속에서 살았던 김 여사는 남편이 의문사한 뒤에도 감시와 탄압을 받으며 삯바느질로 힘겹게 생계를 꾸렸다. 그럼에도 정갈하게 품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슬하에는 3남 2녀를 뒀다 이중 미국에 있는 삼남인 장호준 목사는 박근혜 정부 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여권 발급이 제한 돼 입국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장남 장호권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사무총장은 지난 2012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 김희숙 여사에 대해 “어머니는 엄청난 탄압 속에서 힘들게 가정을 꾸리셨다. 그렇지만 온화함을 잃지 않으셨다”며 “어머니가 가족을 지켜주셨다.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인은 장 선생의 유해가 안장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 공원묘지에 합장될 예정이다.

원래 파주시 나사렛공동묘소에 있던 장 선생 묘소는 뒤편의 석축이 붕괴되면서 지금의 공원묘지로 옮겨오게 됐다. 특히 지난 2012년 8월 1일 유골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원형 모형의 두개골 함몰골절이 발견되면서 타살 의혹에 대한 진상 촉구가 커진 바 있다. 

김 여사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일은 4일 오전 8시다. ☏ 02-2072-2091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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