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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블레어와 캐머런에게 배워라
<기자수첩> 블레어·캐머런, 과감한 당 정체성 수정으로 반등 계기 만들어
2018년 07월 03일 18:28:44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은 과감한 당 정체성 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선례가 있다. 사진은 토니 블레어(좌)·데이비드 캐머런(우) 전 영국 총리 ⓒ 뉴시스

1994년, ‘만년 2위 정당’이던 영국 노동당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이름은 토니 블레어. 노동당 역사상 가장 젊은 당수였던 그는, 41세의 젊은 나이와 잘생긴 외모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블레어는 ‘이미지’만 가진 그저 그런 정치인이 아니었다. 마가렛 대처 등장 후 18년 동안 집권하지 못했던 노동당을 살리기 위해, 블레어는 강도 높은 개혁 작업에 착수한다.

블레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노동자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권을 잡자마자 당명을 ‘신노동당’으로 교체했다. 이어 당내에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노조의 대리투표권을 없애고 ‘1인 1표’ 체제를 도입했다. 노동당의 핵심 당헌이었던 ‘거대기업 국유화’ 조항도 폐지했으며, 보수당이 진행해오던 국유기업 민영화, 능력위주 사회, 공영주택 사유화 등의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노동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중도좌파’로 자리매김하며 1997년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한다. 좌측에 치우친 정강·정책으로는 중도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블레어의 ‘제3의 길’이 낳은 승리였다. 이후 노동당은 세 번의 총선에서 내리 승리하면서, 13년간의 장기집권 시대를 열었다.

연이은 패배에 보수당도 돌파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던 보수당의 선택은 ‘개방’이었다. 우선 보수당은 젊고 참신한 리더를 수혈하기 위해 당수 선출 방법을 변경했다. 이전까지 하원 의원총회를 통해 당대표를 선출하던 보수당은, 투표 대상을 당원 전체로 확대해 ‘깜짝 스타’가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이렇게 등장한 인물이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2005년, 39세의 나이에 보수당 당수가 된 캐머런은 ‘좌파적 가치’에도 문을 열었다. 그는 자유시장경제의 대원칙 위에 분배·환경문제 등을 가미하며 중도지향적 개혁을 시작했다. 방향은 다르지만, 열린 마음으로 상대 진영의 정책까지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블레어의 길’을 걸었던 셈이다. 블레어와 마찬가지로, 캐머런은 2010년 13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강경 보수’의 목소리가 강해지면서, 한국당은 강경 보수의 역설에 빠지게 된 상황이다 ⓒ 뉴시스

이렇게 보면 한국당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지난 대선과 지선 과정에서 한국당은 ‘종북’과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종북’ 프레임과 ‘퍼주기’ 프레임은 오랜 기간 한국당의 ‘필승 공식’이었기 때문이다. 기능적으로는 영국 노동당·보수당의 전통적 정강·정책에 대응한다.

그러나 남북 평화 무드가 한반도를 감싸고,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종북·포퓰리즘 프레임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블레어가 당헌에서 거대기업 국유화 조항을 삭제하고, 캐머런이 ‘좌클릭’을 했던 것처럼, 한국당에게도 당의 정체성 자체를 재정립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는 의미다.

‘노동자당’에서 ‘중도진보당’으로의 변화를 꾀한 블레어는 당원들뿐만 아니라 동료 의원들에게도 거센 비판을 받았다. 캐머런 역시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라는 목소리에 휩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블레어는 거대기업 국유화 조항을 삭제하더라도 강경 진보의 선택은 노동당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캐머런도 보수당이 일정 부분 ‘좌파적 가치’를 수용하더라도, 강경 보수는 보수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전통적 지지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당 정체성을 중앙으로 옮기는 ‘모험’을 걸었고, 성공을 거뒀다. ‘집권’이라는 달콤한 열매는, 한때 당을 등졌던 열성 지지자들의 마음까지 되돌려놓는 역할을 했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빠진 한국당이 부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블레어와 캐머런 모델’이 아닐까.

담당업무 : 국회 및 자유한국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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