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 “MB는 개성공단 포기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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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규, “MB는 개성공단 포기하면 안돼”
  • 박세욱 기자
  • 승인 2009.08.21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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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전문가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경색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의 전면 중단이 이뤄진 뒤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기업 철수 등으로 그야말로 남북경색은 지속, 장기화되고 있다.

물론 최근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경색이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자타가 인정하는 대북전문가인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을 찾았다. 인터뷰는 8월18일 이뤄졌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수정 없이 북한은 핵포기 없어” 
 

▲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주요 경력사항>
 
1973-1985    경남대학교 교수
1996-1997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1997-1999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
1999-2001    통일부장관
2000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
2005-2009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현재       경남대학교 총장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 이후 북한이 3대째 혈통세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3남 김정운으로 후계자가 결정되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데요. 북한의 후계 문제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설명해주시죠?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에 이어 3대째 부자 세습이 실제 가능할 지 한반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 언론과 정보기관 및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운으로 후계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하고 또 보도하고 있습니다.

수령의 유일지도체계가 전 사회에 제도화되어 있는 북한에서는 수령제 시스템의 논리와 메카니즘 상 후계문제는 오히려 자연스럽고 핵심적인 사안입니다. 수령의 사상과 노선 및 정책을 충실하게 이행할 혁명과 건설의 계승자로서 후계자를 결정하고 후계체제를 정립하는 문제는 따라서 북한에서 이미 주체의 수령관에 매우 체계적인 후계자론으로 정리되어 있지요.

2004년을 전후해 한국 등 외부에서 후계자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자, 김정일 위원장은 당내 분파형성의 위험성과 자신의 권력 약화를 우려해 2005년 당 지시를 통해 ‘후계자 논의 중단’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동시에 김 위원장은 내부적으로 3대 세습을 대비, 세 아들에 대한 후계교육 준비를 시작하기도 했죠.

외부의 후계논의 중단과 내부의 교육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2008년 김위원장이 뇌졸중으로 건강이상을 겪은 후 후계문제가 시급한 사안으로 부각되었고 최근 들어 3남 김정운을 대상으로 후계자 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후계자로서의 자질 등을 테스트하고 준비하는 단계로 봐야 합니다.

김정일로의 후계체제 정립과정에서도 삼촌 김영주, 계모 김성애, 이복동생 김평일 등과의 경쟁과정이 있었고 당내에서의 리더십 인정과 가시적 업적 부각 등으로 후계자로서의 공식 인정이 형성되었음을 감안할 때, 지금 김정운 후계자설은 공식 결정된 게 아니라 후계자로의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자질 교육과 테스트 과정의 시작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김정운으로의 후계결정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며 따라서 김정운에 대한 공개 지명은 아직 국내외 여건상 시기상조입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오히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등 북핵과 관련한 강경조치를 잇따라 내놓았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제 핵을 협상카드로 사용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합니다. 과연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북한에게 핵무기는 탈냉전과 사회주의 붕괴 이후 체제유지를 위한 방어적 수단으로 시작되었고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특히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수령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자 카드로서 핵개발을 시작했습니다.

1차 북핵 위기는 북한이 자신의 체제생존을 위해 핵개발을 카드화하여 미국과의 협상을 이끌어 낸 것이었고 결국 NPT 레짐을 유지하고 핵비확산을 고수해야 하는 미국으로부터 경수로 제공과 핵동결을 교환하고 북미관계 정상화 합의를 도출해 낸 것이 바로 1994년 제네바 합의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상호 불신이 남아 있고 미국이 시간을 끌면서 북한의 내부 붕괴를 기다린다는 의구심으로 인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면서도 만약을 대비한 핵능력을 조용히 추진해왔습니다.

2002년 북한의 우라늄농축 의혹이 제기되면서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고 2차 북핵위기가 진행되면서도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해 미국의 대북 체제인정과 안전보장 및 경제적 보상을 대가로 핵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다른 한편 북한은 2005년 2?10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미 핵보유 국가를 선언했고 2006년 핵실험을 거쳐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를 향해 나아갔고 다만 핵보유를 추진하되 미국이 자신들의 체제보장을 확약하면 포기 의사를 내비치는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반복되는 언급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면 핵포기를 할 수 있지만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과 경제적 보상이 확고하게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핵보유로 갈 수 있는 ‘전략적 지연 작전’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9.19 공동성명에 북은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폐기’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이를 위해 2.13 합의와 10.3 합의로 동결과 불능화가 진전되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동시행동이 지켜지지 않고 북이 원하는 체제보장 즉 북미관계 정상화가 담보되지 않으면 북은 언제든지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려고 할 것입니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 북미관계가 대결과 제재 국면으로 지속되면서 다시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6자회담을 전면 부정하면서 핵보유 국가로의 길을 고수하고 있는 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지속되고 대북 제재가 지속되는 한 북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핵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최근 클린턴 전대통령 방북으로 북미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향후 북미 협상이 진행될 경우 북은 자신의 요구 조건을 걸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핵포기 의사를 다시 밝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를 공개적으로 거부”


-클린턴 전대통령 방북 이후 현정은 현대회장이 북을 방문했습니다. 갈등과 대결의 국면에서 이제 조금씩 대화 분위기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요. 지금 국면에서 과연 북한은 남북대화를 바라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을 지속하고 있고 최악의 국면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모든 당국간 대화가 단절되고 기존 교류협력사업도 중단되었으며 심지어 민간차원의 교류접촉마저 급감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10.4 선언 부인과 대북 강경정책을 이유로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 및 협력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북한은 남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한 경제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2012년 강성대국 문을 열어야 하는 정치적 조건과 후계체제 준비과정에서 경제적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조건 및 북핵 교착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이 중단된 상황 등을 감안할 때 북으로서는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통해 남쪽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이 남북대화 중단의 이유로 내걸고 있는 10.4 선언 중단도 사실은 대북 교류협력 사업이 중단된 것에 대한 반감이고 최근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요구하고 있는 것 역시 남측으로부터 더 많은 대가를 얻기 위한 것임도 바로 그 같은 북한의 속사정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결국은 원하고 있는 북한이지만 지금 북핵문제가 북미간 대결과 제재 국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의 우선성은 대미 관계에 맞춰져 있습니다. 즉 북미간 핵문제와 남북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지금은 우선적으로 북미 관계와 북핵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죠.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비해 정책의 후순위로 밀리는데다가 최근 2년간 북은 그동안 북한체제에 확산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바람을 차단하고 정리하기 위한 내부적 단속작업을 벌여왔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한과의 교류협력사업을 통해 알게 모르게 북한 체제에 자유주의와 남쪽 바람이 많이 확산되어 있음을 체제위협으로 인식하고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 경색기간을 활용해서 북은 내부 단속과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는 것이죠.

최근 들어 클린턴 전대통령의 방북과 현정은 회장의 방북 이벤트를 통해 북한은 대미 대남 기조에서 대화 국면 조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금강산 관광 등 기존 남북협력 사업은 북에게도 이제 경제적 이득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비록 민간차원이지만 북이 현대아산 채널을 통해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협력 사업들에 대해 강력한 희망을 피력한 만큼 정부 차원의 호응과 후속 작업을 통해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남북관계가 재개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지금 중단되고 있는 인도적 지원과 금강산 개성 관광 및 위협받고 있는 개성공단 만큼은 일관되게 지속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중단 없이 지속해야 할 것입니다. 당장 논란 중인 개성공단 실무회담 역시도 이명박 정부는 반드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개성공단은 유지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최근 김일성 주석 추도식에 등장한 김정일 위원장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상을 확신했습니다. 만67세의 나이로는 믿기지 않는 허약한 모습의 김정일 위원장을 보면서 일각에서는 1년후 사망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설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총장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2008년 뇌졸중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정상적인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양한방 치료를 통해 위험 수위는 넘겼고 수령으로서의 리더쉽 유지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뇌졸중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은 언제라도 다시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에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왕성한 ‘현장 지도’ 활동은 제한해서 선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분석이나 중국내 소식통에 따르더라도 업무를 보는 데는 별 이상이 없지만 뇌졸중 이전의 건강 회복은 힘들다는 얘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최근 김일성 추도식에 참석한 김정일 위원장의 화면 모습이 보여지면서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수척해진 상태를 보고 일부에서는 췌장암설, 1년 후 사망설 등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당장 생명에 문제가 있다는 이들 보도나 주장은 아직까지는 신빙성이 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적인 업무 활동을 하고 있고 지난 1월 왕자루이 중국 대외연락부장과의 접견 및 술자리를 소화한 것을 보면 사망 임박설은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최근 클린턴 방북시 면담과 만찬 과정에서 보인 김정일 위원장은 상당히 안정되고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바, 직접 만난 클린턴 전 대통령과 수행원을 통해 미국에 정확히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 등이 전달될 것입니다. 아울러 현정은 회장이 김위원장과 4시간 만나고 오면서 직접 보고 느낀 건강 관련 정보가 우리 정부에 정확히 전달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북은 제재와 고립에 익숙해 ‘대북제재’로 핵포기 쉽지 않을 듯”
 
-유엔의 대북제재가 작동하고 있고 북에 대한 제재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중국의 동참과 역할이 긴요합니다. 향후 북?미 관계와 핵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중국의 실제 영향력은 어느 정도이고 또 바람직한 중국의 역할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핵문제 해결 및 북미관계 진전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만능 해결사가 아니며 오히려 제한적입니다. 다만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의장국이고 워싱턴과 평양에 동시 채널을 갖고 있는 정치적 입지로 인해 북핵문제의 진전을 촉진하는 역할 혹은 북미간 협상의 동력을 제공해주는 중재역할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발전과 국제적 역할 증대를 위해 미국과 일정하게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동시에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국의 對中 견제를 완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체제의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는 바, 가능한 미국과 북한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해결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이 지금까지 중국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최근 개최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도 나타나듯 중국과 미국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양자 즉 G2로서 서로 협력하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것입니다. 아울러 유엔의 대북제재 1874호의 이행과 관련해 중국이 협력의사를 밝히면서도 북한의 내부붕괴나 급변사태를 야기하는 전면적 대북제재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의 2차 핵실험과 핵보유 기정사실화 입장에 대해 중국은 공개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대북영향력을 통해 북한을 지금 상황에서 핵폐기하도록 설득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북미관계와 핵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은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설득함으로써 협상의 장으로 나오도록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하는 정도일 것인 바, 북미간 대결 국면에서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정도의 완벽한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북의 입장을 곧바로 변경시키거나 굴복시킬 수는 없지만 최근 심화되고 있는 북한 경제의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를 감안할 때,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게 할 힘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도 과거에 중국은 대북 송유 파이프를 며칠 중단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6자회담에 응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 클린턴 방북으로 북미 대화 전환의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제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중국이 대미 설득과 대북 지렛대 활용을 통해 대결 국면의 북미관계를 다시 협상국면으로 복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유엔을 앞세워 과거보다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신속히 그리고 일관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의심 물건을 실은 것으로 간주되는 북한 선박을 추적해 회항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제재의 실제 효과와 향후 방향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최근 유엔의 대북 제재 1874호 통과 이후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체계적이면서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재 결의 직후 불법 무기를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 강남1호를 추적해 결국 귀항하게 만들었고 유럽에서의 호화요트 반입도 제지했습니다. 더불어 제재 대상의 북한 기업과 북한 인사 리스트를 작성해 금융제재 등의 직접적인 압박을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해상봉쇄와 금융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아프게’는 만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이 제재에 굴복해서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오랫동안 제재와 고립에 익숙해 있고 이미 내핍과 배고픔에 단련되어 있는데다가 지금 진행되는 제재 역시도 결국엔 북한과 광범위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봉쇄에 동참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북중 교역이 진행되는 한에서는 제재와 봉쇄에 의한 북한 굴복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결국 지금 진행되는 대북 제재는 제재를 위한 제재이거나 북한의 완전굴복을 얻어내기 위한 제재라기보다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의미의 제한적 제재라고 봐야 합니다. 즉 국제사회가 반대했던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국제사회가 만류했던 핵실험을 추가강행한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드시 그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에서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히려 지금 제재는 북한의 굴복을 위한 제재가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잘못된 행동이 자신에게 손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학습효과로서의 정치적 책임 묻기의 성격이 강하고 결국엔 제재의 효과를 통해 협상장에 복귀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북이 클린턴 방북을 수용하고 여기자를 석방한 것도 결국은 그동안 진행된 제재의 효과가 일정하게 작동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바, 효과적인 제재와 이를 통해 북이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유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제재를 위한 제재가 아니라 협상을 위한 제재여야 하는 것이죠. 북핵해결을 위해 크게 3가지의 방식이 거칠게 제기될 수 있는데, 협상과 제재와 군사적 수단이 그것입니다. 이중에서 제재로는 북을 완전굴복시키기 힘든 현실적 조건이고 전쟁불사의 군사적 수단은 한반도에서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옵션이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는 다시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이미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도 정확히 한반도의 현실과 북미관계의 현실을 꿰뚫으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결국 우여곡절을 겪지만 북미간 대화의 길을 통해 핵문제 해결의 지혜를 도출해야 하는 바, 최근 클린턴 방북은 협상 국면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금강산 관광만큼은 빠른 시일 내에 재개 돼야”

 
-최근 미국은 대북 제재를 지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과의 포괄적 협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정책의 윤곽이 정리된 시점이어서 더욱 눈길을 끄는데요. 미국이 주장하는 대북 포괄적 협상안의 내용은 어떤 것이고 향후 전망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최근 캠벨 국무부 차관보와 힐러리 국무장관 등의 발언을 통해 미국은 북한과 이른바 ‘포괄적 패키지’ 협상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속되고 있는 대결과 제재 국면을 전환해서 북한과의 포괄적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접근방법 모색으로 분석됩니다.

우선 포괄적 패키지 전략은 북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제기되는 것인 바, 과거와 같이 북이 아무 행동 없이 협상에 나서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김정일 위원장이 비핵화 및 핵포기 의사를 다시 한 번 명확히 재확인하고 추가적인 상황악화조치를 안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중단 중인 불능화 작업 재개 정도를 밝히는 수준의 명확한 북의 선(先)행동이 있어야 포괄적 패키지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으로 보입니다.

구상중인 포괄적 패키지 협상은 단순히 핵포기만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이른바 ‘북한 문제’ 즉 체제보장과 안전보장,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미사일 문제 등 북미간에 다뤄야 할 거의 모든 이슈를 한꺼번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타결하자는 것이면서 동시에 과거처럼 합의사항 이행이 단계적 접근이 아니라 핵폐기라는 최종의 목표까지 확실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잘짜여진 그물같은 꾸러미 합의를 도출하자는 의도로 분석됩니다.

이를 두고 북은 과거 부시 행정부가 초기에 내세웠던 선핵포기 입장과 유사하다며 반대할 가능성도 있고 또한 과거 제네바 합의처럼 협상을 하면서 속으로는 북한 붕괴를 위한 시간끌기용이라는 의심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재와 대결 국면 대신 협상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포괄적 패키지 협상의 내용을 분석하고 미국의 입장을 타진하면서 일단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대화에는 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클린턴 방북과 김정일 면담을 통해 미국의 포괄적 패키지 내용이 북에 전달되고 이에 대한 김정일의 반응과 주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일정한 조건과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북미간 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총장님께서는 과거 인터뷰에서 2007년 10.4 정상선언이 실제 달성하기 어려운 속도위반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6.15 공동선언의 당사자이신 총장님께서 그 계승합의인 10.4 선언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2007년 10.4 합의는 2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서 남북의 화해협력과 평화번영을 진전시키기 위한 유용한 역사적 합의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가 주무장관으로 관여했던 2000년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은 것이기도 하지요. 다만 10.4 합의에 포함되어 있는 각종 교류협력 사업들이 총 45개로 상당히 많고 시간과 비용 및 여론 조성이 필요한 것이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유용하고 바람직한 합의들이지만 당장은 실현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시기상조의 사업들은 가려서 차분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즉 10.4 합의가 잘못되었거나 불필요한 합의라는 것이 아니라, 속도위반이라는 정확한 의미는 합의한 사업들이 추진기간과 비용 및 이를 위한 여론 및 내부여건 조성 등의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의 ‘시기상조’의 사업도 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당장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같은 합의는 북한의 군사적 전면 개방과 군부의 협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남북간 뜨거운 쟁점인 NLL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이는 곧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 해결과 유엔 및 미국과도 협의해야 할 사안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주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전면 활용 역시 북한 군부가 반대하는 한 실질적인 추진은 어렵습니다. 10.4 선언의 합의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북 경제지원과 SOC 건설사업은 14조 이상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경제적 비용 계산과 재원 조달 문제 그리고 국민적 여론 설득 등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 당장 북핵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악화되고 있고 당장의 인도적 관심사안인 이산가족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조건에서 이같은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대북 지원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이처럼 합의의 내용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고 옳은 방향이지만 실제 그 합의를 추진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와 남측 내부의 합의 및 소요예산의 마련과 북핵문제 진전 등 이러저러한 조건과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현정은 현대회장이 방북하고 돌아왔습니다. 성과와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시고 향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클린턴 전대통령 방북에 이어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방북이 성사됨으로써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특히 현회장의 방북을 통해 북에 억류되어 있던 유성진씨가 무사히 귀환하게 된 점은 인도적 차원에서도 다행이고 나아가 향후 남북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청신호가 될 것입니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 그리고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현안에 대해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한 것도 앞으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현회장이 경협의 민간 사업주체로서 면담한 것이지만 지금 남북관계의 주요한 현안이 바로 이 사안들이고 이 현안의 해결에는 당연히 정부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남북 당국간 간접적인 의견교환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남북의 첨예한 쟁점이었던 유씨 억류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이제는 현회장 방북을 통해 조성된 남북관계의 긍정적 분위기를 이후 어떻게 진전시켜 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여전히 이명박 정부는 유씨 석방과 북핵 문제를 분리하고 있고 현회장 방북과 제재 국면도 분리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제재국면이고 북핵문제도 진전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대북 유화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은 어렵게 마련된 남북관계 정상화 계기를 놓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현회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하고 온 5개항이 대부분 남북경협 사업의 재개와 진전에 관련된 것들임을 감안하면 지금 북한은 경제적 수익이라는 차원에서 남북협력 사업을 재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현회장과 합의하기 부적절해 보이는 ‘금강산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한 것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양보를 해서라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물론 지금이 북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 국면이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일치된 제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에 현금이 유입되는 금강산관광 재개는 시기상조라는 부정적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남북이 합의한 정상적 비즈니스로서 금강산 관광사업인 만큼 대북 제재 국면과는 별도로 분리해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클린턴 방북으로 북미 대화가 조심스럽게 모색되고 있고 현정은 회장 방북으로 남북관계도 오랜만에 긍정적 돌파구가 마련된 만큼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이번 기회를 당국간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나 이산가족 상봉 등의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서는 불가불 남북 당국간 회담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에 현회장 방북으로 북이 먼저 유씨 석방과 경협 관련 전향적 조치를 내놓은 만큼 이명박 정부도 남북간 현안을 보다 전향적으로 풀어나가는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적어도 정부는 금강산 관광 만큼은 빠른 시일 내에 재개시켜야 합니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남북관계를 진전시킨 상징적 계기가 되었고 또 지난 해 중단되면서 지금 남북관계 경색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도 관광 재개를 희망하고 있고 현대아산 역시 절박하게 관광재개를 원하고 있는 만큼 이명박 정부는 이번 현회장 방북과 유씨 석방이라는 진전된 환경변화에 맞춰 적어도 금강산 관광만큼은 통 큰 자세로 전향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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