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B-boy)’의 아버지 박기원 서정한의원장
“비보이 전용빌딩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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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B-boy)’의 아버지 박기원 서정한의원장
“비보이 전용빌딩 만들겠다”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03.25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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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여건 속 ‘SJ비보이즈’를 설립·운영…자부심과 사명감
실력뿐 아니라 문화적 메카 되기 위해 ‘전용극장’ 설립 추진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에 36개 성장센터 운영’, ‘일본 도쿄에 성장클리닉 분원 개설’, ‘인도를 비롯한 그 밖의 국가에 진출 계획’, ‘2008·2009·2010 3년 연속 메디컬코리아대상 성장클리닉 부문 대상 수상.’
박기원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서정한의원의 내력이다.

사실 박 원장은 서정한의원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전공으로 하고 있는 의학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비보이(B-boy)’ 문화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박 원장은 세계 최초 비보이 전용극장을 만들고 기획사 ‘SJ비보이즈’를 설립했다.

현재 박기원 원장은 열악한 여건에도 자비를 들여 ‘SJ비보이즈’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본인도 동덕여대 댄스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만큼 춤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박 원장은 비보이문화의 실정을 설명하고 발전을 위한 의지를 드러냈다.

“젊은이들의 열의에 반해 전용극장 설립”

▲ 비보이의 아버지 박기원 서정한의원장.
- ‘SJ비보이즈’는 어떻게 설립하게 되셨습니까.

“2005년 8월 케이블 노인전문채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권유로 홍대 롤링홀에서 ‘freeze’라는 공연을 보게 됐는데 비보이의 열정이 대단하더라구요. 청소년 문화에 투자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춤추는 아이들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죠. 대개 결손가정 아이들이나 학교를 중퇴한 이들이 많기도 하고 춤을 추면서 무리지어 다니곤 하니까요. 근데 부정적으로만 보면 안될 것이 세계대회에서도 우승을 거두는 등 열심이더라구요. ‘아, 내가 이들을 잘 몰랐구나’ 생각했죠. 그 열의에 반해 비보이 전용극장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 소규모의 여느 문화사업과 마찬가지로 비보이공연도 적자일 듯싶은데요.

“2005년에서 2007년 2년간은 사업이 아주 잘됐습니다. 당시 우리가 공연했던 작품이 중국과 미국 등 해외로 나가면서 우리 비보이의 세계적인 활약이 알려지고 아이들에 대한 호감도 높아졌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취재를 해갔고 우리는 홍보비를 따로 들이지 않고도 수십억 원 가량의 홍보가 저절로 됐었죠. 메이저 신문에 탑기사로 나간 적도 있으니까요. 근데 2008년부터가 문제에요. 비보이공연이 흥행하니까 유사한 공연이 30개 가까이 생겼습니다.

그것들 대부분이 비보이를 위한 게 아니라 투자자 끌어들여서 돈 벌려고 한 거였죠. 심지어는 아이들 월급도 챙겨주지 않아서 노동부에 신고당한 기획사도 있었어요. 이때 많은 회사들이 관객 많은 것만 드러내려고 공연비를 적게 받고 표를 많이 팔았죠. 사실 1만원 정도로는 운영이 되지 않는데 그 금액으로도 팔더라구요. 그래서 ‘물타기’가 됐습니다.

 
우리 공연비가 훨씬 비쌌거든요. 많은 회사들이 반짝 등장했다가 없어지고 2009년 5월에 B-boy Korea 난타로 다시 비보이 인기가 높아지나 싶었는데 연말에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또 어려워졌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학생들 단체관람을 막아서 그때 단체관람의 90%가 취소됐죠. 그래서 많이 어려웠습니다. 이제 2010년부터는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SJ비보이즈는 현재 ‘Battle B-boy_love story’를 공연하고 있다. 브레이크댄스에 한국음악과 한국무용을 접목시킨 작품이다. 박 대표는 청소년들이 이것을 매개로 우리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 국악의 음계는 ‘황태중임남’인데 이것이 우리 오장(五臟)과 싸이클이 같아서 음악치료 면에서도 좋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지원 없어…비보이들 의기소침”

- 전공 분야와 전혀 다른데 어떤 마음가짐이 있으신지.

“이전에는 세계 유일의 비보이전용극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운영했습니다. 이제는 자부심에서 나아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우리극장이 문 닫으면 비보이문화는 끝나는거나 다름없습니다. 할 사람이 없는거죠. 대기업들도 투자를 했다가 여의치 않으니 바로 손을 뗍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하면서 좋은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 앞으로 우리나라 비보이문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브레이크댄스는 과격한 동작이 많아 비보이가 25세가 넘으면 활발한 활동이 어렵습니다. 더구나 몇년 하다 군대 가서 춤을 추지 않게 되면 생명이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죠. 그런데도 병역혜택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하는데도 정부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문화비 지원 항목에 비보이공연이 없습니다. 국악 오페라 대중가요 등만 지원을 받습니다.

이대로 가면 어렵죠. 지금은 세계대회 우승권도 이미 러시아가 넘보고 있습니다. 전용극장이 생기기 전에는 아이들이 그야말로 헝그리정신으로 세계대회 우승도 하고 했지만 인기를 누렸다가 외면 받는 지금은 비보이들이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지속적인 우승이 불가능합니다. 비보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 그렇다면 대중화에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국내에 주목을 끌만한 세계대회 없습니다. 작은 대회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투자자들의 잇속 챙기기였습니다. 세계적인 대회 유치가 필요합니다. 개인자금으로는 불가능해요. 하지만 비보이는 어려운 아이가 많아 흔히 말하는 연줄도 없고, 적극 후원해주려는 사람도 없으니 어렵다고 봐야죠.”

- 비보이문화 확산을 위해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없습니다. 현 대통령 내외와 정병국 문화부 장관도 다녀갔고 국회의원도 150명 이상이 공연을 보고 갔습니다. 각계 고위층 인사들이 많이 왔었지만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모 그룹 부회장은 3번을 다녀갔습니다. 마지막 방문 때는 계열사 사장단을 동반해 공연을 관람하고  ‘스필버그와 친구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스필버그와 아는 사이인건 맞습니다. 영화를 수입하니까 친구 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후에 그쪽에서 투자해서 만들었던 공연들이 다 안됐습니다. 자기 돈 가지고 하는 거니 말릴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바라는 게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라도 안되니까. 불가능한건 일찍 포기하는 게 좋아요.”

- 비보이사업의 앞으로 계획은.

“비보이 전용빌딩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전부터 구상은 했지만 침체기 동안 미뤄놓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용극장들도 거의 없어져 이런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비보이용품이나 극장,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비보이의 역사자료가 있는 박물관 등을 복합시키는 거죠. 이런 것이 있으면 우리나라가 실력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비보이의 메카가 될 겁니다. 해외에서 비보이 관련 사람들은 물론 일반 청소년들도 한국으로 관광을 오면 이곳에 들르겠죠. 관광상품으로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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