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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모두가 고루 잘 사는 길, 읍면동 마을기금
2018년 10월 12일 17:38:51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일자리 예산으로 모두 54조 원을 투입했다. 2017ㆍ2018년 본예산 합계 36조 원에 추가경정예산 합계 14조 8,000억 원, 올해 일자리 안정자금 3조 원 등을 합친 액수다. 내년에는 22조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처럼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으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보통 20~30만 명을 넘나들었던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수 증가폭은 올해 7월과 8월에는 각각 5,000명과 3,000명을 기록하는 고용 참사를 가져왔다. 9월에는 마이너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까닭에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의 재정 투입은 단기 응급처방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좀비기업만 양산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당혹스러운 사태를 보며 미국의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1933~2012)이 떠올랐다. 오스트롬은 공동 자산의 관리는 국가나 시장보다는 지역공동체의 자율 관리가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이론적ㆍ실증적으로 입증하여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정부의 일자리 예산은 대한민국 국민의 공동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 예산도 오스트롬의 말처럼 국가나 시장이 아닌 지역공동체가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지 않을까?

전국에는 3,500개의 읍면동이 있다. 만일 54조 원을 3,500개의 읍면동에 인구 비례로 배분하여 그 돈으로 읍면동마다 주민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마을기금을 만들어 운용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혈세 낭비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혈세를 쓴 보람이 나타났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읍면동 마을기금의 대강은 이렇다.

54조 원이라는 돈을 읍면동 수(3,500개)로 나누면 읍면동마다 평균 154억 원 규모의 마을기금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그 마을기금에는 국가가 매년 수십억 원씩을 추가로 출연한다. 물론 그밖에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 민간인도 출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읍면동마다 수천억 원, 수조 원 규모의 마을기금을 갖게 된다. 주민 한 사람당 수천만 원, 수억 원 이상의 공동 자산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마을기금은 민주적으로 조직·운영되어야 한다. 또한 마을기금의 사용과 수익은 주민 몫이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마을기금의 이사장은 지역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그래야 이사장이 지역 주민에게 책임을 지고 기금 운용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사회 내지 운영위원회는 15~35명의 이사 내지 위원으로 구성하되, 절반 이상은 추첨 선발된 지역 주민으로 충원한다.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총회에는 지역 주민 전부가 구성원으로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같이 읍면동 마을기금이 만들어지면 주민 스스로 그 기금을 활용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에 투자한다.

예컨대, 마을기금으로 해당 읍면동의 토지나 건물을 매입하고 상가 등을 조성해 지역 주민들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임대한다. 그럼 지역 주민들은 임대료 인상이나 젠트리피케이션 걱정 없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임대주택을 건설해 집 없는 지역 주민들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임대한다. 그럼 구태여 내 집 마련에 등골이 휠 이유도 없다.

나아가 지역 자영업자들에게 저리 신용대출 및 지분투자를 한다. 지분투자의 경우 배당 우선권을 갖되, 자영업자의 경영권은 보장한다. 법률·세무·노무·경영 등 전문 컨설팅도 지원한다. 그럼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이 될 것이다.

 마을기금 운용으로 나오는 수익은 매년 지역 주민 전부에게 1/n씩 현금으로 배당한다. 읍면동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되는 것이다. 그럼 지역 주민의 호주머니 사정도 좋아진다.

이와 같이 마을기금이 설치ㆍ운용된다면 정부가 직접 돈을 푸는 것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읍면동 마을기금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지금처럼 아무런 경험과 검증이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읍면동마다 수십억 원 또는 수백억 원의 돈을 출연하여 마을기금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시작은 주민참여예산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필자는 제주시 아라동에 살고 있다. 아라동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 주민참여예산은 200억 원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는 43개의 읍면동이 있으므로 산술적으로 따지면 아라동에는 5억 원의 주민참여예산이 배정된다. 일단 그 5억 원을 시드머니로 하여 아라동 주민이 자율적으로 운용하는 아라마을기금을 만드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가칭 「아라마을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 수도 있다. 아라마을기금이 잘 운용되면 국가, 제주특별자치도, JDC, 제주개발공사 등이 매년 출연하여 기금의 자산을 지속적으로 증식시키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특별법을 개정해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아라마을기금이 수천억 원, 수조 원 규모의 커다란 기금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아라마을기금이 아라동 주민의 경제와 복지는 물론 자치를 위한 든든한 보루가 되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로 집중되는 중앙집권적 사회다. 그로 인한 폐해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빈부격차의 심화다. 1995년에서 2010년 사이에 최상위 1% 소득의 비중은 7%에서 12%로, 차상위층은 22%에서 32%로 각각 증가했으나, 나머지 90%는 71%에서 56%로 감소했다.

 둘째,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총인구의 50%, 상장법인의 72%, 총예금의 70%, 20대 대학의 80%가 몰려 있다.

셋째, 지방 소멸의 가능성이다. 전국 시군구 및 읍면동의 40%가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읍면동 마을기금은 부와 권력을 전국의 읍면동으로 널리 분산시키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빈부격차의 심화, 과도한 수도권 집중, 지방 소멸의 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이처럼 읍면동 마을기금은 우리 모두를 고루 잘 살게 하고 중앙집권의 폐해도 극복하게 만드는 획기적인 제도다.

이제라도 읍면동 마을기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 전공)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원 졸업
(전) 부산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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