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고용대란', 끝이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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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고용대란', 끝이 안보인다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10.20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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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이 부른 고용참사
'가짜 일자리’ 착시 분식은 안돼
엄혹한 경제상황…해법은 '친기업'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한국경제의 적신호가 역력하다. ‘고용 참사’의 어두운 재난이 좀처럼 걷힐 기미가 없다. 고용성적표가 실로 참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의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는 1년 전보다 9만2000명 증가한 102만4000명으로 9개월 연속 100만명대를 넘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6월부터 10개월 연속 실업자 100만명 이상이 계속된 이후 가장 긴 '고용대란'이다. 실업률은 3.6%로 2005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까지 높아지는 등 ‘고용재난’이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도소매·숙박·음식업 등에서 일자리 31만6000개가 날아갔다. 생산과 소비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할 30~40대 취업자가 1년 새 가장 많이 줄었다. 청·장년층이 몸담는 정규 일자리를 고령층의 단기·저임 노동이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상황 돌파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과 판단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최근에는 민간 연구기관은 물론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한국의 경기 전반이 정체돼 있다”고 진단하는 등 ‘정부가 잘못된 경기 인식을 고수하는 탓에 되레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쓴소리가 비등할 정도다. 거듭되는 '고용대란', 무엇이 쟁점이며 해법이 되어야 할 지, 심층진단이 필요하다.

실업률 계속 악화

지난 9월 실업자·반실업자를 합한 확장실업률은 11.4%,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22.7%에 달했다. 모두 2015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9월 기준으로는 가장 높다. 청년 5명 중 1명 이상은 사실상 백수 상태라는 얘기다.

통계청이 ‘일자리 대란은 인구감소 탓’이라는 기존 청와대 설명을 뒤집고 “인구감소를 고려해도 고용상황이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스스로 밝힐 정도다.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

지난 8월 3000명까지 추락했던 취업자 증가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4만5000명으로 늘었다. 취업자가 주는 ‘마이너스 사태’를 면한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취업자 증가폭은 8개월째 10만명을 밑돌았다.

월 취업자 증가폭이 4만5,000명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 통계청은 “9월은 폭염이 해소된 데다 추석이 있어 명절 성수기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는 추세가 아닌 계절적, 일시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일 뿐이라는 얘기다. 위기적 상황은 여전하다.

취업자 변동 내용을 봐도 세금이 투입된 공공행정(2만9000명)과 보건·사회복지서비스(13만3000명) 농림어업(5만7000명) 등에서 취업자가 늘었지만,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받는 도ㆍ소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 등에서만 18만6,000명 감소하는 등 상황 개선의 기미가 거의 없음은 이를 더욱 잘 보여준다. 10개월째 감소 행진을 했다.

▲ 19일 오전 경기 고양 일산서구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8 중·장기복무 제대군인 일자리 박람회에서 군인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서민들 생계 위협

정부의 올해 신규 고용 목표치는 32만명이다. 올해 9월 취업자 증가폭은 여기에 비하면 6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고용재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부문별로 보면 사업시설관리·임대서비스업(-13%), 도·소매업(-10%), 숙박·음식점업(-8.6%) 등에서 취업자가 큰 폭으로 줄었다. 최저임금 고율 인상의 후유증에다 잦은 규제로 인한 건설업 불황까지 겹친 것으로 분석된다. 제조업의 고용부진도 심각하다. 지난달에만 4만2000명이 줄었다. 조선·해운·철강과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의 부진 탓이다.

지난해 매달 30만 명가량 늘었던 데 비하면 ‘고용 참사’ 수준이다. 올해 9월에는 소비재 생산과 유통 분야에 일자리가 늘어나는 추석 직전에 조사를 했는데도 결과가 여전히 '빨간 불'인 셈이다. 

주목되는 사실은 서민들의 생계위협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실상은 고용 지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11만7000명 감소하고 임시근로자 19만명, 일용근로자 2만4000명이 준 것은 사회적 약자가 고용 한파의 직격탄을 맞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고용난은 청년층에서 장년층으로 번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중추인 30대와 40대 취업자는 각각 10만4000명, 12만3000명 줄었다. 이들 상당수가 가장인 점을 감안하면 국민들의 체감 고용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60세 이상의 취업자는 23만3000명 늘었다.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할 장년층은 일자리를 잃고, 고령층은 생계 전선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알바 일자리 급조

정부도 ‘경기 회복세’라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섰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소비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투자·고용이 부진한 가운데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지난해 10월부터 10개월 연속 “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번에는 ‘회복세’라는 표현을 거두었다. 사실상 기존의 고집을 꺾고 ‘경기 침체의 초입 단계’라는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의 입장을 수용한 모양새다. 정부의 뒤늦은 입장 변화는 그만큼 우리 경제의 상황이 엄혹하다는 뜻이다.

기재부가 ‘연내 단기 일자리 확대 방안 작성 요청’ 지침을 내려보내며 사람뽑으라고 종용하는 상황도 그 때문이다. 국토부를 비롯해 산하기관이 많은 부처들은 채용 실적을 기관장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공문을 보내 압박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아예 “공공기관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산하기관의 신입사원 채용 절차를 간소화하면서까지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재차 독려하겠다고 공공연히 얘기할 정도다. LH의 ‘전세 임대주택 물색 도우미’ 처럼 생소하고 황당한 알바나 인턴이 급조된게 다 그런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60대의 어르신 알바를 통해 수만명을 고용하며 ‘무늬만 일자리’의 수를 높였었다.

급조된 알바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상시화될 리가 없다. 세금만 허비할 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가짜 새벽 혹은 잘못된 새벽(false dawn) 현상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이다. 가짜 새벽은 실상과 달리 경제 상황이 호전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최저임금 과속인상의 부작용을 놓고 소득주도 성장론자들과 정면충돌해 온 기재부가 가짜 새벽의 주모자가 되는 건 참으로 이상할 정도다.

정부는 공공기관 인턴을 추가 채용하는 등 동절기 계층별 맞춤형 일자리 공급을 늘리기로 했고, 한국은행도 필요하다면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이 정도로 눈 앞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지는 실로 의문이다. 재정 투입으로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한계가 있는데다 질 또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일자리 분식(粉飾)’ 논란

이와관련,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 2일 국회 답변에서 “가슴에 숯검댕을 안고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상황을 보면 정부가 낮춘 올해 취업자 18만 명 증가 목표 달성도 물 건너갔다. 무리한 공무원 증원이나 세금으로 억지로 만드는 일자리, 몇 달 뒤면 사라질 임시 일자리 등은 모두 ‘가짜 일자리’다. 고용통계 방법과 기준을 비틀어 취업자 숫자를 늘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마찬가지다.

고용대란 사태는 멀쩡하던 경제를 ‘병든 경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악성 규제, 증세 등 반시장 정책이 기업 투자의 숨통을 조인 결과다. 하지만 정부는 잘못된 정책을 개선하지 않은 채 땜질 처방을 계속할 심산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대내외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고용 부진이 회복될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분쟁에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내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올해보다도 더 떨어질 것으로 국내외 기관들은 전망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 정책점검회의를 열어 일자리 감소가 두드러지는 겨울철을 대비해 청년·신중년·어르신 등 계층별 일자리 공급 대책을 시행키로 했다. 정부는 특히 올해 안에 공공기관 인턴 5000명가량을 추가 채용키로 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정부발(發) 일자리 분식(粉飾)’ 논란이다. 지난주 기획재정부 주도로 각 공공기관 등에 채용기간 2개월~1년인 단기 일자리 수만 개를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침이 내려갔다. 공공기관 등이 중심이 돼 체험형 인턴, 아르바이트 등 임시직 또는 일용직 일자리를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고용지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단기 임시 일자리를 급조해 고용통계를 반짝 개선시키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 각 기관별로 얼마나 채용 여력이 있는지 수요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공공기관 단기 일자리라면 청년 인턴이 주가 될 것이다. 이들은 취업자로 분류돼 당장 고용지표를 좋게 보이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이걸 일자리 창출이라 말하는 건 무리다. 인턴은 계약기간 종료 후 정규직 전환 보장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 다수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공공기관 방만 경영과 경쟁력 약화를 불러와 두고두고 부담이 될수밖에 없다.

‘고용지표 부풀리기’라는 비판에 청와대는 "당장 일자리가 필요한 국민,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가능한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정부의 의무"라고 항변했다. 잘못된 생각이다. 정부는 국가경제를 건강하게 운용함으로써 투자와 고용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할 의무가 있지만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 면에서 문제가 있는 일자리를 무작정 늘리려 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고용주체로 나서서 구제할 수 있는 국민은 많아야 수만 명이다. 이것은 오히려 사회적 자원 배분을 왜곡시켜 더 많은 일자리를 없애고 국가경제를 계속 병들게 할 것이다.

‘문재인 경제’ 악재

최악의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책임은 한마디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규제혁신 지연 등 정책 실패에 있다. 지금이라도 정책기조를 과감히 수정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나랏돈 주는 몇 개월짜리 공공알바 정책으로 상황을 호도하려는 식이면 나아질 게 거의 없다.

우리 경제는 하강국면에 들어서고 있지만 2%대 후반의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목표에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극심한 고용부진은 경기불황이나 인구구조 변화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문재인정부가 공공기관을 압박해 두 달짜리 알바자리 늘리기에 나선 현실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고용부진의 원인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보니 제대로 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고용부진 해법을 찾는 첫 관문은 일자리정책 실패를 제대로 인정하는 일이다. 정부는 당장 욕먹지 않을 궁리만 할 게 아니라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민간부문이 전체 취업자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땜질 처방만으로는 ‘일자리 통계 분식’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오죽하면 소득주도 성장이 아니라 ‘통계주도 성장’이냐는 조롱까지 받을 정도가 됐겠는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방법은 정부도 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라며 “정부는 맞춤형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다. 규제를 개선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며, 경영권을 흔드는 외압을 포기해야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투자에 힘을 쏟고 일자리가 생긴다.

자영업의 고용 대란을 일으키는 최저임금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상승 속도를 조절하고, 업종별·지역별로 차등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 나아가 하루빨리 소득주도 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지금 고용 상황이 “경제 전환기에 수반되는 진통”이라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오히려 장기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드는 단말마의 고통이 시작되고 있다.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하는 한 고용은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경제 경고음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현 정부 들어 경제상황이 나빠졌다”고 평가했다. 경제상황이 ‘매우 나빠졌다’(33.1%)와 ‘나빠진 편이다’(16.3%) 등 부정적인 평가(49.4%)가 ‘매우 좋아졌다’(8.4%)와 ‘좋아진 편이다’(14.9%) 등 긍정적인 평가(23.3%)의 두 배를 넘었다. 정부의 경제정책 평가에서도 ‘매우 잘못함’(28.8%)과 ‘잘못하는 편’(21.7%) 등 부정적인 평가(50.5%)가 과반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가 정부가 보호하겠다는 자영업, 무직, 노동직 등에서 특히 높았다는 점이다. 이 중 자영업자의 부정적인 평가(63.8%)가 가장 높았다. 경제 실핏줄이자 서민 경제 근간인 자영업은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 중 하나다. 매출 급감과 줄폐업 등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자영업 현실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의 자영업 위기는 최저임금 급속 인상 등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에다 일방적인 근로시간 단축 등이 더해지면서 올해 폐업하는 자영업자는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영업자 대출도 급증해 지난 2분기에는 600조원에 육박했다. 서민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OECD 경고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음은 나라 밖에서도 들려오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경제 보고서는 문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의문부호를 붙였다. 법인세율을 올린 것은 OECD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생산 증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 개혁에 따른 불확실성도 한국경제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경제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쟁하듯 법인세율을 낮추는 건 기업 활력을 높여 투자·일자리를 끌어오려는 전략이다. 미국만 해도 파격 감세 이후 투자·임금·고용이 확장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OECD는 “한국의 일자리 보호 정책은 고용 안정과 소득 보장에 실패했다”며 친노(親勞)정책 효과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지나치게 많은 한국 상품시장의 규제도 문제 삼았다.

OECD는 이에따라 3.0%로 잡았던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국내외 기관 중 가장 낮은 2.7%로 떨어뜨렸다. 내년 전망치도 3.0%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의 경제정책 기조를 계속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OECD 처방은 생산성을 높이고, 규제는 풀고, 노동시장을 개혁하라는 것이다. ‘문재인 경제’는 이념에 집착하다 누구나 아는 보편적 해법을 외면해왔다. 경제에 악재만 늘어가는 지금 방향타를 바로잡지 않으면 계속 재난을 맞을 수 밖에 없다.

기업투자 유인 긴요

최근 우리 경제는 실로 내우외환을 맞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유가 상승, 신흥국에서의 자본유출 등 대외 여건이 더욱 불투명한 요즘이다.

특히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금융불안은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신흥시장에서 연간 최대 1000억 달러가 빠져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먹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다.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내수와 고용이 부진한 가운데 반도체 업황까지 나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등 수출 전선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여기에 금융시장까지 출렁거리면 그에 따른 후폭풍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다.

미국 금리인상에 따라 우리 역시 금리를 올려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가계부채가 15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서민 중산층의 고통을 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과 고용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잔뜩 움츠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투자하려는 마음을 어떻게 북돋울지 깊히 고뇌해야 한다. 당장 반시장 정책을 거두고 기업 투자를 유인하는 선순환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을 부르게 될 것이다.

고용의 실질적인 주체인 기업의 일자리 만들기를 촉진하고, 신성장동력 발굴과 투자환경 개선 등 혁신성장의 동력을 확충하는 작업이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탈리아 교훈

이탈리아 국민투표는 한국의 '오늘'에 살아있는 교훈을 던진다.

지난 2016년 12월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을 두고 포풀리즘의 확산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국과 영국을 덮친 포퓰리즘이 이탈리아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개헌투표는 철저히 정권심판의 결과로 보는 게 옳다. 렌치 정권의 경제운용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렌치 정권이 추진한 국민투표는 상원의원 수와 권한 축소, 중앙 정부 권한 강화를 통한 관료주의 청산 등을 목표로 하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이었다. 국정운용의 효율성을 위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60%에 가까운 반대로 부결됐다는 것은 국민이 개헌 추진세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는 얘기다.

이탈리아는 정부 부채가 GDP의 130%를 넘어 유로존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으며, 은행 부실자산 규모도 엄청나서 3200억 유로(4백조 원)에 달했다. 40억 유로(5조원)가 넘는 구제금융을 은행에 쏟아부었지만 회생은 한참 멀었다. 유로존 회원국의 평균 성장률이 4%를 웃도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성장률이 0.8%에 불과했다.

경제가 이런 상황이니 실업률은 11% 중반을 넘나들고 청년실업률은 40%에 육박한 상태다. 젊은이들은 한달에 1000유로(125만원) 받는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다. 우리와 비슷하다.

렌치 정권의 국정운용 특히 경제정책은 거의 실패에 가깝다. 국민투표 부결을 포풀리즘의 승리라기보다는 정권심판으로 보야하는 이유다. 국민들에겐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이다. 개혁보다 경제가 먼저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 것이 이탈리아 국민투표 결과였다.

정책기조 전환 결단을

한국은 이제, 기본적으로 4차 산업혁명 등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향한 규제 완화 등 혁신성장을 시급히 구현해 내야만 한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 기존 정책의 실패를 넘어설 보완대책도 중요하다. 경제정책을 수립했거나 그 방향을 놓고 혼선을 빚어 온 경제팀의 재정비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부가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국민과 기업에 주고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할' 진용이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가 인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실로 시급하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고용 부진이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를 불러 일자리가 더 사라지는, 그야말로 악순환 재앙의 늪으로 더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책 기조를 그대로 둔 채 조금 손질하는 식의 땜질 처방으론 해법(解法)이 보이질 않는다. 고용쇼크 위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일자리와 투자 원천인 기업이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마땅하다. 실기하지 않는 결단을 다시 요구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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