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노동 유연화, 경제는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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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 된 노동 유연화, 경제는 멍든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8.11.28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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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동시장 개혁, 과거 아닌 미래적 시각 필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최근 고용부진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노동시장 개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노동 유연성 제고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위축된 기업의 고용투자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15~64세 고용률은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실업률은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올해 3분기 소득 양극화는 11년 만에 최악이다. 일자리와 양극화 참사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기업의 투자를 확대해 경제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조가 뿌리부터 흔들린 셈이다. 경제계와 보수진영에서 노동 유연화를 핵심으로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 유연화는 쉽게 말하면 기업에서 필요하지 않은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는 부작용이 있지만, 요즘 같은 경제불황기에는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 각자 생산성에 맞게 임금을 받을 수 있고, 사회 상황에 따라 직업선택의 자유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과연 지금이 노동 유연성 제고를 모색할 최적의 시기인지 의문이다.

우선, 시스템의 문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매년 확대되고, 원하청 구조로 가격을 쥐어짜 경쟁력을 뽑아내는 국내 산업구조상 노동 유연화는 소수의 재벌을 위한 비용절감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소모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더욱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노동 유연화가 아니어도 이미 심각한 일자리 불안정 상태에 있다. OECD에 따르면 전체 한국 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3.7%로, 회원국 중 3위를 기록했다. 평균 재직기간은 5.82년으로 가장 짧다.

아울러, 소모품이 된 노동자는 다시 노동시장에 나와 재취업의 문을 두드리는데, 우리나라는 이들을 뒷받침할 만한 사회안전망이 확보되지 않은 실정이다. 전체 민간 노동자 중 절반만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을 정도로 사각지대가 크다.

타이밍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5060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시기다. 노동시장은 굳이 유연성을 제고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조만간 선순환기에 접어들 공산이 크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는 우리 사회 최초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경제력을 보유한 은퇴세대로 꼽힌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오히려, 이들 중 일부는 은퇴 후 창업을 꾀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동시장 자체가 위축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자동화, 디지털화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는 우리 사회에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장년층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겠다는 명분으로 금융권에 임금피크제 시행을 주문했다. 금융권 노동시장에서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노동 유연화로 이어졌다. 시중은행에서 임금피크제 대상자 중 80% 이상이 회사를 떠난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 신규채용은 이후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른 업종에 비해 이미 상당 부분 자동화, 디지털화가 진행된 금융권인 만큼, 임금피크제를 이용해 불필요한 인원을 정리했을 뿐, 새로운 인력을 채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우리 산업계 전반에서 발생할 공산이 크다.

노동시장 개혁은 사회 시스템 변혁이 병행돼야 하며, 과거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며 추진해야 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20년째 노동 유연화는 똑같은 내용으로 거론되고 있다. 강산이 2번이나 변했다. 정말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면 시대에 맞는 세부적인 후속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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