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과 박정희>“박정희의 산업화가 폭력정치를 덮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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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박정희>“박정희의 산업화가 폭력정치를 덮을 수 없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4.12 14: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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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프롤로그-<中>

국민 총의에 의한 민주당 정권 탄생

4·19로 자유당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1960년 7월 29일, 5대 민의원과 초대 참의원 선거에서 입후보자도 유권자도 모범적인 공명선거를 치러 국민총의에 의한 합법적인 장면정권이 탄생했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하고, 독재가 남긴 부조리의 청산과 봇물처럼 쏟아지는 욕구를 감당하기 어려워 혼란도 있었고 미숙한 정치권의 대응이 ‘무능’으로 비쳐져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모처럼 국민총의로 이룩한 합법 정부였다. 단군이래 처음해보는 민주주의. 정치인도 국민도 수 천년동안 입고 있던 익숙한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을 입고 보니 어색하기도하고 거북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간이, 경험이, 인내가 필요했다.

5·16 박정희의 군사반란(쿠데타)

출발한지 아홉 달밖에 안됐는데, 나라를 지킨다고 전방에 나가있어야 할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일부 군인들이 총칼을 거꾸로 잡고 그들이 섬겨야할 국민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적진으로 처 들어가는 것처럼 서울로 진격해 와서 무려 32년의 군사독재가 시작됐고 그때부터 독재 타도와 민주회복의 끈질긴 갈등과 투쟁이 시작됐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착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외치는 4·19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안보와 근대화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군부세력 간 다툼의 맨 앞에는 김영삼과 박정희가 있었다.

▲ 민주산악회에서 식사를 하는 YS, 좌측에 고(故)김동영 전 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제공=이성춘

반란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리더십은 총칼과 부당한 돈 일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의 시작은 국가에서 주어진 성스러운 국방의 막중한 책무를 져버리고 처음부터 불법과 무법으로 총칼을 앞세운 군사반란이었다. ‘나라의 안보와 조국근대화’를 빙자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한 채 ‘한국적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며 국군 통수권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군대 내에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무한 충성케 했다. 

나라의 안보는 핑계일 뿐 정권유지를 위해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과 법원까지도 떡 주무르듯 하면서 ‘한국놈은 맞아야 한다’고 겁주고 두들겨 패고 또 부당한 돈을 줘(소위 말(馬)을 조련시키는 조교사들이 쓰는 채찍과 당근) 국민의 입도 귀도 눈도 막고 민족정기마저 중병에 걸리도록 만들어 놓았다. 툭하면 비상조치, 긴급조치, 위수령, 계엄령을 선포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영구집권을 꿈꾸다가 18년 만에 10·26의 비극으로 끝을 냈다.

박정희가 죽고 그의 수제자 전두환과 노태우가 그의 모든 것을 답습해 무려 32년동안 군사독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철학적 요구를 거부해 왔다.

반란정권은 불법무법으로 출발해 과정 또한 불법무법 일수밖에 없었다

부정부패 또한 끝없이 가다가 정경유착으로 자기자본의 5배, 많게는 10배씩 빚을 지고도 큰소리치는 부실기업과 부실재벌(졸부)을 양산하고, 경제 파탄의 씨를 뿌리고 가꾸다가 합법적인 퇴진을 못하고 결국 불법무법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그의 후계자 전두환 노태우도 겁 없이 부당한 돈을 먹다가 금융실명제에 걸려 감옥으로 동행하며 끝을 냈다.

18년동안에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의 가난을 일컫는 보릿고개도 그 기간에 없어지고, 없던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도 만들어 수출입국의 경제적 성과도 거두었다. 박정희가 폭력정치로 국민을 괴롭히기는 했지만 가난을 물리친 경제적 성과는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이것을 ‘산업화(産業化)’라고 포장해, 김영삼의 민주화 이후에 명실공히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자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합이라고 미화(美化)한다.

그러나 박정희의 군사반란, 불법무법, 끝없는 부정부패와 반민주적 폭력정치의 오명이 벗겨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시간과 인내, 경험이 쌓여야한다

민주주의는 합법적으로 투명하게 도덕성을 갖춰 합리적으로 벽돌을 쌓는 것처럼 차곡차곡 전진한다. 느린 것 같지만 건전한 정치문화, 투명한 경제, 고도의 문화로 질서 있고 건전한 사회로 훨씬 더 빨리 발전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박정희는 오기로 민주화를 후퇴 시키고 선진민주질서를 후퇴 시켰다.

박정희의 군부독재 반대편에  김영삼이 있었다

김영삼은 약관 25세에 국회의원이 돼 3선개헌으로 영구집권을 꿈꾸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3선개헌은 안된다”며 충언을 했고, 그 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김영삼의 정치를 하는 이유였고, 그의 정치철학이었다.

그때부터 기나긴 박정희의 군사독재 32년동안 줄기차게 본인의 목숨도 가정도 개인의 영화도 모두 버리고 끊임없이 투쟁해 군정을 끝내고 문민정부를 세워 우리나라를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정치·문화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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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 2011-04-14 02:54:40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