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냉전 이후 미소대결의 종식은 우선적으로 군사 부문의 변화를 초래했다.
두 초강대국의 군비는 축소됐지만, 대신 거대 전쟁에 대한 우려는 국지전과 대테러전에 대한 강박으로 변했다. 강대국들의 발 빠른 대체와 보완이 필요했다.
기존 전쟁 양상이 바뀌면서 행위자들의 형태와 방식 또한 나날이 변모했다. 드론과 같은 무인항공기가 득세했지만 PMC(Private Military Company)라 불리는 민간군사기업 역시 확장됐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용병’ 개념이 자본과 맞물려 발전된 PMC는 어느새 현대전의 주요 행위자로 부상했다. PMC는 위험지역 요인 경호를 비롯한 첩보 및 전투 활동, 군사훈련 등 거의 모든 전쟁 관련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주로 분쟁 지역에서 국가나 기업의 이권을 위해 활동하는 PMC 요원들은 당연히 전직 베테랑 군인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철저히 돈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 수백 개 업체가 활약하는 PMC 산업은 전 세계에 수천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몇몇 회사가 존재한다.
한국 관객들에게 PMC를 소개한 할리우드 영화는 적지 않았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허트 로커>를 비롯해 <A특공대>, <익스펜더블> 등은 PMC의 일상과 단면을 보여준 대표적 작품들이다.
이들 영화는 전쟁의 참상뿐만 아니라, 전현직 군인들의 애환을 화려한 액션으로 포장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는 자칫 그저 그런 오락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된다. PMC를 제대로 다룬 영화가 국내에선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원인이기도 하다.
영화 <PMC: 더 벙커>
일단 <PMC>
그러나 <PMC>
<PMC>
김 감독은 영화 제목만 보고 달려들었을 관객들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총질로 호쾌한 액션을 주도해야 할 주인공의 기존 관념을 깨버린다. 보는 이들은 여기에 마냥 불만을 갖기 보단 밀리터리 스릴러의 새로운 등장을 깨닫는 게 현명하다.
지하 벙커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극한 상황에 빠진 주인공의 모습은 일촉즉발의 또 다른 긴장감을 자아낸다. 여기에 영화가 내세우는 국제정치적 역학 관계와 음모는 촘촘하진 못해도 액션물로서 <PMC>
엄밀히 말해 <PMC>
5년 전 <더 테러 라이브>의 방송국은 벙커로 변환됐고, 앵커와 기자들은 PMC 요원으로 대체됐다. <더 테러 라이브>가 그랬듯 <PMC>
결국 공간과의 싸움이다. 김 감독은 <PMC>
다만, <PMC>
주인공이 부단히 소통하는 상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더 테러 라이브>가 단절과 대립의 측면이 강했다면 <PMC> 익히 <더 테러 라이브>에서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하정우는 새로운 환경을 주도하는데 물러섬이 없다. 특히 닫힌 공간을 다룬 <터널>에서의 경험치는 하정우의 능력을 배가시켰음이 분명하다. 하정우가 가진 힘의 원천은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시도와 변신을 통해 자신의 영토를 계속 늘려나간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하정우는 자신의 전성기가 오래갈 것임을 과시한다. 그러한 하정우를 뒷받침하는 것은 역시 이선균이다. 본디 조연으론 가당치 않은 이 배우는 주인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는 자신의 비중과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선균의 든든한 지원은 마지막 장면에서까지 빛을 발한다. 물론, <PMC> 피와 근육이 터지는 단순 액션물을 기대했던 일부 관객들에겐 124분의 러닝 타임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1인칭 시점에서 보여지는 총격전은 이미 유사 장면들을 내세웠던 액션 영화와의 비교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감독은 애당초 이 부분에 힘을 싣지 않았다.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다. 거의 주인공 위주로 전개되는 화면과 긴급 상황의 연속은 영화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저해할 수 있다. 외부와 단절이 잦은 주인공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끼기 전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선이 와해될 소지도 있다. 그럼에도 <PMC> 이미 할리우드 영화에선 차고 넘치는 문법일지 몰라도 감독은 그 공식을 우리 식으로 과감하게 재창조해 냈다. 오는 26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마지막 시퀀스가 압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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