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정쟁의 나라 조선의 비극과 대한민국 집권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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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정쟁의 나라 조선의 비극과 대한민국 집권층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8.12.23 14: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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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몰입한 조선의 위정자들의 죄 값은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됐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대한민국 집권층은 일본과 여진족의 급성장이라는 국제정세를 외면하고 정쟁에 몰입한 조선의 위정자들의 죄 값이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됐다는 뼈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진제공=뉴시스

16~17세기 조선의 운명은 임진-병자로 이어지는 잇따른 외침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대위기를 맞이했다.

조선의 비극은 내부 분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조선은 정변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잦은 정변으로 인한 피의 역사로 얼룩졌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태종 이방원의 제1~2차 왕자의 난, 세조의 계유정란, 그리고 중종반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재가 희생된 반면, 정변의 주역인 공신들이 쏟아져 나왔다. 권력을 잡은 공신들은 부정부패를 통해 토지 겸병 등으로 부를 축적했고, 몰락 농민들이 증가하게 됐다.

몰락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자 노비나 또는 화적떼로 전락했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됐다. 민생이 무너지는데도 한양의 권세가들은 허울 좋은 명분론에 빠져 권력 투쟁에 몰입했다.

반면 동북아 정세는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은 100여 년에 걸친 피로 물든 패권 쟁탈전 센고쿠 시대의 혼란을 겪으며 세계 최강의 군대를 양성할 수 있었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의 급서로 일본의 패자로 급부상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열도를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통일 직후 일본의 사무라이 세력은 과도한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히데요시의 대륙 침략을 위한 개인적 욕망도 어우러져 조선을 침략했다. 이른바 조일 7년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잦은 사화로 권력 투쟁에 빠져있던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무능한 군주 선조와 기득권층들은 백성을 내팽개치고 의주로 줄행랑을 쳤다. 7년 전쟁동안 조선의 국토는 왜군의 말발굽에 철저히 짓밟혔고, 시산혈해의 비극은 조선 백성의 몫이 됐다.

이순신 장군과 의병의 맹활약, 명나라의 원군으로 겨우 임진왜란을 극복했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또 다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전후복구에 적극 나섰던 광해군을 몰아냈다.

서인의 집권은 또 다른 외침의 신호탄이 됐다. 조선과 명이 7년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  여진족의 영웅 누르하치는 만주를 통일했다. 명은 잦은 내란과 무리한 조선 원군 파병으로 국고가 파탄나 여진의 발호를 막지 못해 청에게 중원 대륙을 빼앗기게 된다.

대륙의 주인이 뒤바뀌는 순간에도 조선의 서인들은 친명배금 정책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명분론에 빠져 여진의 침략을 자초했다. 조선의 국토는 또 다시 여진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백성들의 피로 물들여졌다.

2018년이 불과 열흘도 안 남았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놓고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고, 북한은 겉으로는 비핵화를 외치지만 핵무장을 무기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도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대국의 길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청와대는 민간인 사찰 의혹에 매몰돼 연일 진실공방에 몰두하고 있다. 여권 인사들도 각종 의혹과 논란에 휩싸여 야권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거리는 이익집단의 무대가 된 지 오래고, 경제지표는 날로 임계치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조선의 비극은 잦은 정변과 사화라는 내부 분열에서 비롯됐다. 대한민국 집권층은 일본과 여진족의 급성장이라는 국제정세를 외면하고 정쟁에 몰입한 조선의 위정자들의 죄 값이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됐다는 뼈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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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꼬형 2018-12-23 19:23:20
좋은 이야기를 알아듣게 써 주시는 윤명철위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