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홍정욱-김종훈-강기갑’과 한-EU FTA…문제는 절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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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홍정욱-김종훈-강기갑’과 한-EU FTA…문제는 절차야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1.04.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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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비준 시 국내법과 충돌…18대 국회 모순된 법률 통과시켜

“공부 좀 하고 이야기하십시오.(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당신은 공부를 그렇게 잘 하는 양반이 돼서 (한-EU FTA 협정문을) 이렇게 불일치, 엉망진창으로 만든 거야.(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지난 15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나타난 대한민국 국회의 모습이다. 김 본부장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 등을 주도한 통상전문가이고 강 의원은 대표적인 FTA 반대론자다. 첨예할 수밖에 없는 관계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 외통위 소속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은 한-EU FTA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물리적 의사진행에 반대한다며 기권을 선언했다. 언론은 즉각 ‘홍정욱 김종훈 강기갑’ 등이 벌인 막말 고성과 기권을 속보로 전했다.

그만큼 한미 FTA나 한-EU FTA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FTA는 그 자체로 보수 vs 자유 vs 진보세력을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이자 대외적인 통상무역은 물론, 대내적인 민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은 “개방은 대세” 혹은 “개방에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보이는 반면, 진보세력은 “통상독재”라며 극렬히 반대한다. 국회 비준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은 예사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진행형이며 미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1차적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한-EU FTA 협정문의 오류에 대한 냉소와 김 본부장에 대한 마녀사냥이 아니다. 외교부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국제적 망신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우리는 절차적 정의의 문제와 한-EU FTA 협정문의 모순을 지적해야 한다. 그것이 더 실익이 있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EU FTA가 4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바로 5월 임시국회를 소집하겠다”며 강행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상 오는 4∼5월이 한-EU FTA 국회 비준 등 통상무역 처리의 터닝포인트인 셈이다.

▲ 지난 15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회의에서 한-EU(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부결된 가운데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게 항의하고 있다.ⓒ뉴시스

우리의 경우 미국의 무역법과 EU의 리스본 조약과는 달리, 헌법 및 법률에 통상절차법이 규정돼 있지 않다. 전두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87년 제9차 개정헌법이 민중헌법으로 불리면서도 비판받는 이유다. 또 문민정부 이후의 통상무역이 외교부-청와대 등 관료중심으로 움직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국회다. 우리 헌법은 외국과 체결한 조약이 국회의 비준을 받을 경우 곧바로 국내법적인 효력을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조약이 국내법적인 효력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은 바로 국회의 비준과 동의인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그저 여당은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이유로 찬성을, 야당은 정부의 권력 힘 빼기를 위해 반대만 하고 있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냉소적인 이유도 여야 정치권이 18대 국회 출범 이후 통상절차법 하나 만들지, 아니 만들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당장 한-EU FTA와 국내법의 충돌이 현실 앞으로 다가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국내 유통시장의 개방을 허용한 한-EU FTA와 지난해 11월 10일과 25일 각각 통과된 유통법과 상생법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같은 18대 국회가 여야 합의로 기업형 수퍼마켓(SSM)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켜놓고 또다시 이를 완화하는 FTA협정문을 비준하려고 한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을까.

“비준 동의안이 발효될 경우 유통법, 상생법과 불합치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불합치가 있다고 해서, 상생-유통법이 자동으로 무효되는 것은 아니다. 제 생각에는 (EU가) 우리 쪽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상생을 도모해 보겠다는 입장이다.(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하지만 이는 논리적이지 않다. 한-EU FTA나 한미 FTA의 협정문은 국내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동시에 특별법 성격이지 않는가. 특별법은 일반법에 우선한다는 우리 헌법의 철학적 기본 토대에 따르면 한-EU FTA 협정문이 유통법 상생법에 우선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8대 국회 임기가 1년 남았다. 여야 의원들은 법안 찬성 버튼을 누르고 역사적으로 퇴장하면 끝이라는 것인가. 같은 임기 내 모순된 법안을 통과시킨, 이 모순된 현실에 대해 정부여당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최소한 지난해 12월 정부여당의 예산안의 날치기 처리에 반발해 향후 물리적 의사결정에 참여 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23명의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라도 입을 열어야 한다. 4월 재보선의 승리를 위해 아침부터 지하철 역 앞에서 머리 조아리며 선거운동에만 매진하지 말고 이 같은 비판에 답 좀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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