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정권이 바뀌면 영화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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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정권이 바뀌면 영화도 바뀐다?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9.02.03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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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과 대중 입맛에 따른 변화일까
역대 정권과 영화의 상관관계 ´주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 영화와 정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역대 정권이 바뀌면 영화 트렌드도 시대상과 대중 입맛에 바뀌고 흥행도 달라진다. 사진은 주요 공직자 등 관계자들이 15대 대선 득표 현황에 주목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영화 <공작>의 한 장면.ⓒ시사오늘(공작 화면 캡처)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정계 복귀와 신당 창당을 결국 공식 선언했습니다. 정계 은퇴라고 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하다면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1995년 7월 18일 MBC 뉴스 앵커 브리핑으로 시작된 화면은 DJ(김대중)의 정계 복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현장으로 전환됐다.

“참으로 고뇌에 찬 마음과 죄송한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드린 정계 은퇴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DJ의 정계 복귀 선언에 여론의 뭇매는 컸다. 14대 대선에서 YS(김영삼)에 패했던 DJ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외국 유학길에 오른 바 있다. 그러다 은퇴 2년 7개월 만에 돌아와 정계복귀를 선언, 대권욕에 말을 번복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새정치국민회의(현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DJ를 열화와 같이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뛰었다던 한 고령의 시민도 얼마 전 <시사오늘>만남에서 당시를 기억하며 “전부 욕했다”고 입을 뗐다.

“전라도 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DJ 정계 복귀는 목포 광주 등에서는 절대적 환영을 받았지만, 말 번복했다고 언론과 국민들 대다수가 비난했다. 오히려 신한국당(현 자유한국당)의 이회창이가 대쪽 이미지로 절대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자민련 JP(김종필)와의 빅딜과, 돌연 이인제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판세가 달라진 것이다. 그래도 여론은 이회창 당선 가능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뜻밖에도 부산 경남에서 이인제가 30%가량의 득표율이라는 많은 득표를 함으로써 여당의 이회창을 무너뜨렸다.”

이 때문일까. 지난해 개봉한 영화 <공작>을 보며 고개를 갸웃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영화에서는 은퇴 번복 후 돌아 온 DJ가 이끄는 국민회의가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여권의 북풍 공작이 결정적 작용을 해 총선에서 참패한 것처럼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기 DJ 당은 여당에 비해 수적으로든 지지로든 열세에 있는 처지였다.

당시 DJ가 유세장을 돌며 "이번 총선에서 개헌저지선이라도 만들어달라"고 읍소한데서 얼마나 힘든 총선을 치렀는지 알 수 있다.

비록 <공작> 하나만 예로 들었지만, 영화가 논쟁의 중심에 설 때가 많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며 작든 크든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늘어난다.

그러나 영화에는 영화적 허용이 있다. 영화업계를 잘 아는 한 중견 기자는 최근 <시사오늘>과의 대화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팩트라는 기본 뼈대를 무너트리지 않으면서 상상력으로 재창조되는 것”임을 전제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말을 강조했다.

“영화적 허구와 사실의 경계선은 시대 조류에 따라 새롭게 조명되고 비약되며 때론 뒤틀리고, 부풀려 가미되곤 한다. 시에도 시적 허용이 있듯 심한 왜곡이 아니면 영화 역시 영화적 허용의 범주로 확대된 상상력의 공간을 이해해줄 필요도 있다.”

한편으로 이런 얘기도 전해진다.

“영화라는 건 기획했다가 현장에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다 찍고 나서도 편집실에서 모조리 바꿀 수 있다. 편집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로 탄생된다. 영화 자체가 기획의도 대로 되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비즈니스에 직결되다 보니 시대 트렌드와 사회 상황, 대중의 필요성에 맞춰 변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같은 영화의 특성상 정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역동적으로 급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련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지난 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강철비> <공작> <스윙키즈> 등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아무래도 정권이 바뀌면서 북한을 다루는 소재들이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강철비>는 박근혜 정권 말기에 나왔지만 정권 교체기의 개봉을 염두에 두고 제작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인공기 등 북한을 다루는 모습 면에서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과감히 표현할 수 있었다. 사실상 이명박근혜 정권 시대에는 남북 이슈를 다루는 것 자체가 제약이 따랐다면, 문재인 정권 들어서며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공작>의 경우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교류의 흐름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흥행 동력이 생긴게 사실이다. <스윙키즈> 같은 영화만 봐도 김일성 초상화라든가 북한 장면이 정말 놀랍다. 어릴 때 반공교육받은 사람들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문제는 북한을 다룬 영화의 경우 특히 당대 정권의 성향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만난 리얼리즘 거장, 이장호 영화감독의 진단에 의하면, 박정희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 당시 국가주도의 영화가 만들어지며 북한을 적대적으로 묘사한 측면이 주를 이뤘다. 예로 반공법이 극심했던 때는 북한 군인을 나쁘고, 형편없이 그렸다는 얘기였다. 반면 이만희 감독은 북한 군인을 멋있게 표현해 이적 행위로 몰렸다고 한다.

YS 문민정부 이후부터는 자유로운 문화적 르네상스가 펼쳐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남북 이슈 문제는 DJ 노무현 정권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각광을 받던 테마였다. 남북한 군인과 주민들의 우정을 담은 <웰컴 투 동막골>  <JSA 공동경비구역> 등이 대표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또 이번에는 북한에 대해 너무 인간적으로 좋게만 묘사되는 측면이 부각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이에 진영 논리를 떠나 북한 인권 문제의 참혹한 실상 등 사실을 있는 그대로 리얼하게 그려야 하는 점도 영화적 과제의 한 부분이라고 지목했다.

따라서 여전히 영화가 정권과 좌우 정치 진영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여전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최근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박정희 정권의 향수와 애국심을 고취시키려 했던 박근혜 정권 때는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 등이 흥행몰이를 했다. 또 반대 진영에서는 <변호인> <내부자들> 등을 경쟁적으로 밀며 정치색이 짙은 영화 시장을 주도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북한에 우호적인 문재인 정권 들어와서는 남북 평화모드를 다룬 영화가 잇따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문제 제기했다.

물론 영화가 곧 정치라는 말이 있듯 영화와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도 맞지만, 그것이 주는 아니라는 게 영화계 관점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통화에서 “정권의 성격에 따라서 영화의 제작이 영향을 받고,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는 더욱 눈치를 보는 경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영화 자체가 시대정신과 매우 밀접하고, 대중의 집단 무의식과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며 다음 말로 이어갔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때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대표하는 영웅 서사를 비롯해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내세워 시대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들이 강조가 됐다. 그에 반해 2016년과 2017년 촛불 혁명을 겪으면서는 시대정신이나 리더십도 이동했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니듯 모두가 주인이 되고 모두가 참여하는 의식으로 변하고 있다. <1987> <안시성> <신과 함께> <염력> <국가부도의 날>이 모두 그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한 사람의 개인 영웅을 나타내는 대신 여러 민초들이 주인공이 돼 하나씩 역할을 하는 것이 시대 트렌드다.”

게다가 통제가 강한 정권에서는 영화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었겠지만 요즘은 그럴 수 없다는 견해다. 정 평론가는 “하다못해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의 <연평해전> 등도 KBS 등을 통해 열심히 홍보돼 더욱 흥행한 측면도 있지만,  600여 만 명이 한계였다”고 전했다. 결국 대중의 입맛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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