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부文化③>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남긴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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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부文化③>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남긴 '기부'
  • 윤종희 기자
  • 승인 2011.05.05 0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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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종희 기자)

기부란 무엇일까? 일평생을 '거룩한 바보'로 살았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나는 모든 이들의 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또, "사랑은 아낌없이 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그러면서 가슴 울리게 다가오는 김 추기경의 말이 '기부'의 본질을 꿰뚫는 것 같다.

모든 이들의 밥이 되고자 했던 김 추기경은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며 사랑을 실천했다. 그는 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각막과 전재산을 내놓았다. 한 번도 기부가 멈추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바친 김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평온히 눈을 감았다.  

김 추기경은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며 자신을 끝까지 낮췄다. 그가 바보였기에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자신을 밥으로 바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내주기만 했던 김 추기경은 그러나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욱 강해졌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그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가진 게 없던 그는 무관의 제왕이었다. 

민주화 깃발로 대학이 휘날렸던 1987년 6월, 시위를 하던 대학생들이 명동 성당으로 도망해 들어왔다. 경찰은 김 추기경에게 학생들을 내놓으라며 공권력 투입을 예고했다. 그 때 김 추기경은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고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말했다. 그렇게 김 추기경은 세상을 이겼다.

▲ 김수환 추기경. ⓒ뉴시스

몸을 낮춰 평생 나누며 탐욕을 꾸짖는 용기

김 추기경은 그해 일어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관련,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물질이 아닌 마음의 기부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항상 어려운 이들에게 맑은 미소를 나눠줬던 김 추기경은 1980년 설을 맞아 인사차 자신을 찾은 전두환 당시 육군 소장에겐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 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12.12'를 거리낌 없이 꾸짖었다.    

김 추기경은 1971년 1월 24일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 강론에서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불의에 기뻐하지 않았다.

김 추기경에 있어 기부는 자신을 끝까지 낮추며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주는 사랑의 실천이었으며 어느 한 순간이 아닌 평생에 걸쳐 중단없이 해야 하는 사명이었다. 또, 물질만이 아닌 마음으로도 나누는 것이었으며 힘없고 약한 이들을 대신해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입적한 법정스님도 기부와 관련해 많은 것을 남겼다. 특히, 법정 스님의 문명(文名)을 널리 알린 작품 '무소유'(1976년)는 소유와 집착에 대한 깨달음을 기록, 무한경쟁과 탐욕의 시대에 지쳐있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줬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이 평생 동안 실천했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ㆍ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없다)'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에는 난초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장마 후 쏟아지는 햇볕 아래 화분을 놓고 왔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거처로 돌아간 일화를 회상하고 스님은 "'소유가 인간을 싸우게 하며, 소유에 대한 집착이 인간을 괴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법정 스님은 그러면서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고 적었다.

스님은 2007년 한 차례 병으로 입원한 뒤 자신을 돌아보며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스님의 이런 '무소유'가 일반인들로서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는 점이다. 스님의 '무소유'는 생활 속에서 나눔으로 자연스럽게 실천됐기 때문이다.

▲ 법정 스님. ⓒ뉴시스

소유욕에서 벗어나 아무도 모르게 하는 소박한 실천

스님은 1993년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그 뜻을 받들어 만든 사회봉사 단체 '맑고향기롭게'를 통해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양로원 등을 찾아 다니며 멈추지 않는 봉사를 실천했다. 이 모임에는 이계진 전 의원도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지역 모임만도 부산과 대전, 대구, 광주와 경남 등 5곳에 이를 정도다.

스님은 이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는 가운데 '베품'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베품'이라는 말에는 뭔가 위에서 아래로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대신 '나눔'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나눔이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수평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스님은 더불어, 철저히 자신을 숨기는 방법으로 기부활동을 했다. 도움을 주고도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상보시(無相布施)의 원칙을 평생토록 고수했다. 스님은 또 "약소해도 내 주머니에서, 힘들어도 내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0년 03월13일 송광사에서 봉행된 법정스님 다비식에는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 2만5천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했으며, 많은 정치인들도 참가했다. 이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법정스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법정 스님에게 기부는 불필요한 소유욕을 버리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숨긴채 역시, 자신을 낮추며 자신의 능력 안에서 소박한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담당업무 :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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