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ENC·all PMC 김태균 대표이사
사람으로 울고 사람으로 웃은 사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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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울고 사람으로 웃은 사업 이야기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06.03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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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건물관리 매출목표 500억 유망기업
받은 만큼 충실하게…고객에 대한 도리
성장비결 ‘사람’…잦은 실패에도 버팀목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독일의 종교철학자 마르틴부버는 그의 저서 <나와 너>에서 한 인간과 그를 둘러싼 관계, 그리고 관계를 통해서 가질 수 있는 인간 존재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담았다. 인간은 혼자일 때 존재의 의미가 없고, 소유의 관계인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나와 너’의 관계에서 비로소 한 사람의 존재가 가치 있게 된다.

오늘날 바쁜 일상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이들, 일을 위해 사람을 희생하고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에 섰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음에 뼈저리게 외로워해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아프단 말인가. 그렇기에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이라면,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이라면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집에 살고 얼마의 돈을 버느냐를 묻기 전에 이미 ‘성공’에 근접한 삶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올이엔씨(all ENC)와 올피엠씨(all PMC)를 함께 경영하고 있는 김태균 대표. 그는 2007년 전기와 인테리어 시공으로 올이엔씨를 시작하고 2011년 현재 500억 매출을 목표로 바라보고 있다. 또 지난 2월부터는 건물관리 아웃소싱을 담당하는 올피엠씨를 함께 꾸려나가며 기업 경영에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의 놀라운 성장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자신의 사업을 성공적이라고 한다면 그 비결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의 사람으로 울고 사람으로 웃은 사업 이야기가 있다.

활달한 성격 친구가 재산, 일찍이 일터에 뛰어들어

김 대표는 1970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활달한 성격에 친구가 많았다. 외동아들인지라 친구가 형제처럼 느껴졌다던 그는, 그야말로 친구들을 형제처럼 아꼈다.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으면 직접 나서 혼내주는 등 잘 챙겨줬기에 주변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가 진학한 진주의 명신 고등학교는 당시 경기고 진주고 울산고 등 전국의 명문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한다.

▲ all ENC all PMC 대표이사 김태균 ⓒ권희정 사진기자
김 대표가 고3때 그 반에서만도 서울대를 간 학생이 5명이나 됐다고. 그러다보니 이들과의 인맥이 사업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는 “나는 꼴지였지만 우리학교는 거의 1등이었어요”라며 학교자랑, 친구 자랑에 바빴다. “인맥관리라 생각 안하고 살아왔는데 바닥을 치고 올라갈 때 항상 주변에서 도와주더라” 김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대학 진학 이후 22살부터는 산업 현장에 나서기 시작했다. 아직 졸업할 나이는 아닐텐데, 그렇다.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싶던 젊은 혈기가 그를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내몰았다. 그가 처음 선택한 일은 조선소의 전기 풀링(입선, 포설)작업이었다. 이는 추후에 전기 시공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외에 포장마차, 도매상, 식료품 사업 등을 하며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러면서 사람 사는 법을 배웠다. 이 시간 동안 쌓인 경험과 자금은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

김 대표는 자신이 운이 좋아 하는 일 마다 잘 됐다고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실패 또한 많았다. 특히 주변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며 상처를 받기도 했다. 1998년 식품대리점을 하던 시절 같이 사업을 운영하는 친구와 함께 거래처를 다녀오던 중 빗길에 사고가 난 적이 있다. 다리가 절단되는 등 큰 사고로 치료비만도 30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그 와중에 김 대표는 교통사고를 낸 친구가 서둘러 합의를 하지 않으면 구속된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의 합의금을 대신 마련해줬다. 본인의 병원비는 친구가 차후 돈을 마련해 갚아주기로 약속했었지만 그 후로 친구는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또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친척 때문에 곤란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김 대표가 사업을 운영하기 어려워 그것을 대신 맡아주고 있던 친척이 도박으로 상당한 빚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남겨진 빚은 재산을 다 팔아도 어려운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회사와 집 등 모든 재산을 청산한 뒤 처가살이를 했다고. 이후 목발을 짚고 석유 부판점에서 일하며 돈을 차곡차곡 모아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울 일이 있으면 웃을 일도 있는 법

그래도 김대표는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들 때문에 힘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저의 잘못된 판단력이 문제였죠. 사람과 일을 분리하는 걸 잘 못했던 탓입니다.” 그는 시행일을 하면서 PF(Project Financing)으로 돈이 많을 때는 주위에서 달라는 대로 돈을 주기도 했다며 자신의 철없음을 이야기했다. “내 돈인 줄 알고 그냥 뿌리는 거죠. 그러고선 결국 망하고 서울로 올라왔을 때 어떤 사람이 내 관상을 보고 눈썹 때문에 돈이 흘러내린다고 말하더군요. 그 길로 달려가 눈썹을 밀고 문신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돈을 잘 안 뜯기는 것 같아요. 제가 빌려주는 것도 좀 덜하구요”하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울 일이 있으면 웃을 일도 있는 법. 목발을 버리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는 친구들이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김 대표에게 건넸다고 한다. 실패했다고 주저앉지 말고 새로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김 대표는 노래방 사업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도와준 덕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렇게 돈을 모야 양산에 땅을 샀다. 이후 그 땅을 분양, 토목공사까지 담당하게 됐는데 그것이 지금 올이엔씨의 시초가 됐다.

경남 양산에 통도사 옆쪽으로 있는 전원주택단지가 그가 처음 작업을 한 곳이다. 택지개발을 하고 분양해서 집을 짓기까지 전체 작업을 담당했다. 김 대표에게는 이 집이 특별하다. 처음이었던 만큼 기억에 많이 남고, 무엇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잘한다고 데리고 온 목공팀도 지나고 보니 부족한 부분도 보이고, 당시는 최선인 줄 알았던 것들이 돌아보니 아쉬운 게 많습니다.” 하도 미안한 마음에 보수공사도 많이 해줬다고 한다. 사업차 근처를 지날 때면 한 번 더 들러서 둘러보곤 한다.

이런 김 대표의 마음 씀씀이에 주인은 그저 고마워할 뿐이라고. “제가 자꾸 들르니까 주인도 ‘왜 이러지’ 할 겁니다. 한 번은 통나무집이어서 환풍이 잘돼야 하기에 지붕에 환풍 시설 만들어 주고 싶다고 그랬죠. 주인이 왜그러냐고, 돈 없다고 그러더라구요. (초기 공사가)잘못됐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신공법이 나왔다고 말하고 그냥 (공사)해준 적도 있습니다.”

▲ all ENC all PMC 대표이사 김태균 ⓒ권희정 사진기자

‘정신적 지주’에 힘입어 … 피엠씨 사업에 주력

김 대표는 양산 공사 이후 집을 만들고 사우나를 만들어 파는 등 계속해서 공사를 했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반 울산 대공원 옆의 코롱파크 작업으로 부도가 나 150억 원의 손해를 봤다. 이후 종합건설의 어려움을 예견하고 인테리어와 전기 시공만 집중적으로 하게 됐다. 최근에는 건설 단가가 낮아지는 것을 보고 수주를 받아도 문제가 있겠다 싶어 수주부터 시공까지 직접 주도해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올 2월 피엠씨 사업을 인수, 건물을 관리하면서 발생하는 인테리어 전문이나 전기공사 등 특화된 부분을 올이엔씨로 내려보내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사업을 경영하면서 ‘고객에게 받은 만큼 정당하게 주는 것’이 경영 철학이라고 한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받은 만큼은 꼭 해주는 것이 고객에 대한 도리라고 말한다. 이에 고객들 만족도 낮을 수가 없다. “어차피 이 바닥에서는 클레임이 많으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라며 당연한 듯이 말한다. 

올이엔씨를 경영하면서 지난해는 잊을 수 없이 어려운 시간이었다. 잦은 부도로 재정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관공서에서 돈을 조금 빌렸을 뿐 밑에 업자들에게는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한다. 직원들 임금은 두 번 정도 밀렸는데 직원들이 잘 참아줬다고. 자기 사람들을 챙길 줄 아는 책임감이 들여다보였다. “젊었을 때는 돈 잃어도 자신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다보니 챙겨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은 이 사람들 때문에 혹시나 잘못 되는걸 생각하면 아찔하죠.” 김 대표는 다행히 항상 견딜 수 있을 정도만 부도가 났다고 하늘에 고마워한다. 최근에도 LIG 건설과 일을 하려다 안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실제 중소업체들은 대기업이라는 이름만 믿고 일을 진행하지만 원청사가 흔들리면 바로 타격을 입는게 현실이다. 

김 대표는 이처럼 어려울 마다 정신적 버팀목이 돼 준 이들이 있다. 그는 굴곡이 많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어머님이 가정을 이끌어 나가시는 것을 보면서 심지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항상 잘 되겠지’ 하는 마음을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다. 또 형제 같이 지내는 친구. 이 친구는 김 대표가 병원에 있을 당시 어려운 살림에 돈을 모아 김 대표 몰래 병원비를 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밖에 김 대표는 오늘날 자신이 있기 까지 모두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설 수 있었다며 주변 이들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어려웠던 2010년을 지나고 올해의 사업 목표 500억은 다행이 긍정적이다. 김 대표는 이제 이엠씨 사업보다 피엠씨 사업에 주력하며 이를 많이 키우려는 계획에 있다. 올 피엠씨 건물관리에서 나오는 양질의 임무수행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원청사의 자금 지불이 불분명한 이엔씨 사업과 달리 피엠씨 사업은 인건비로 자금을 가져오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그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을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한다는 김 대표의 얼굴에 사람으로 우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며...


all ENC/ all PMC 대표이사 김태균
-1970년 경남 진주 출생
-1989년 진주 명신고 42기 졸업
-1997년 순천대학교 졸업
-1997년 대신주류 경영
               제일제당 열매식품 대상 기타 13개 대리점 경영
-2004년 해태종합개발 경영
-2005년 (주) 마이더스 경영
-2007년 올이엔씨 경영 중
-2011년 올피엠씨 경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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