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참아 온 포이동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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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참아 온 포이동 불길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06.22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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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내몬 자리에 뿌리박힌 주민
가난이란 죄목에 불법 변상금 족쇄
'가족과 집' 지키려는 살아있는 불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지난 12일 오후 4시56분,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현 개포4동 1226번지)가 불길에 휩싸였다. ‘개포동 판자촌’이라 불리는 이곳은 나무와 비닐로 덧대 만든 판자집이 밀집돼 있어 불길이 십시간에 번졌다. 사람 두 명이 나란히 걷기 어려운 골목길도 불길이 번지는데 한몫했다.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었다. 불길은 가옥 96채 중 75채 가량을 태우고 소방헬기가 출동한 뒤에야 진압됐다. 대한 적십자사 건물과 신식 주택들을 사이로 새까맣게 주저앉은 모습이 개포동 한 가운데 이빨 빠진 모양을 하고 있다.

화재 원인을 놓고 추측이 난무했다. 일부 주민들은 화재 발생 장소에 사람이 살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물다는 점, 화재 시 소방당국의 소극적인 초기 진화 태도 등을 이유로 ‘누군가’의 방화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서울 내곡동 재개발지역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2006년부터 2년간 연쇄적으로 불을 질렀던 용역업체의 행태와 같이 재개발지역에는 종종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한 방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화재의 범인은 마을에 거주하는 10세 초등학생으로 밝혀졌다.  ‘범인’으로 지목된 구룡초등학교 3학년 김모군은 “과학실험하려고 했어요”라며 나무젓가락에 불을 놨다가 박스에 넣었는데 갑자기 불이 확 번졌다고 말했다. 아이는 불로 잿더미가 된 마을을 가리키며 “실수로 한 건데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어요. 실수였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나라가 버린 사람들

포이동 266번지의 화재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주민들이 주거개선대책을 요구하던 2003년부터 화재 피해로 인한 위험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좁은 골목길, 마을 곳곳에 널려있는 LPG가스 통, 나무에 천과 비닐을 덧대 만든 집 등 마을은 화재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었다.

포이동266번지사수대책위원회 조철순 위원장은 “이전부터 끊임없이 공무원들에게 마을을 보여주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작은 불만 나도 다 타죽는다. 우린 여기 아니면 갈 데 없다’고 얘기를 했는데, 지금까지 서울시나 구청은 모르쇠로 일관 했습니다. 불이 나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입니다”고 말했다. 

부유층의 도시 강남에 포이동 266번지가 들어선 것은 1980년대 군사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정부는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의 도시 빈민자들을 이곳(당시 포이동 200-1번지)으로 이주시켰다. 자활근로대는 1979년 만들어진 단체로 전쟁고아, 넝마주이 등 ‘거리 미화’를 위해 경찰에 의해 관리 대상이 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포이동으로 옮겨진 뒤 국가의 관리 아래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실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찰의 ‘후리가리’(일제 단속) 기간 무분별한 검거와 무차별한 고문, 삼청교육대 혹은 군대 등으로의 강제 연행 등이었다.

1988년에는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거리 미화’작업이 있었고 다른 지역의 철거민 등도 이곳으로 유입됐다. 이들은 ‘나라의 자랑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올림픽 기간 동안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1988년 말,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공식적인 자활근로대가 해체되고 이 지역에 포이동 266번지라는 새로운 주소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기존 200-1번지 주민들의 주민등록 등재를 받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공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토지변상금을 청구했다. 1989년 3월에도 개포4동에 동청사를 짓겠다며 그곳 원주민들을 포이동 266번지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그해 8월부터 새로 이주한 이들에게도 불법변상금 고지서가 청구됐다. 주민들의 토지변상금은 적게는 몇 백만 원에서 많게는 몇 천만 원 까지다.

조철순 위원장은 “강제이주 당시 대통령령으로 ‘자활근로대를 국유지 땅에 살 수 있도록 모든 숙소와 생활 도구를 지원하라. 자활근로대를 키워라’라고 해서 정착하게 된 것인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법도 안 지키고 자기들 마음대로 해놓고 우리에게 법을 지키라고 하면 우리도 못 지킵니다. 끝까지 싸울겁니다”고 말했다.

 

‘여기는 포이공동체 입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2003년부터 서울시와 강남구청을 상대로 시위를 시작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도 변상금이라는 족쇄가 이들을 붙잡는다는 것을 알고부터다. 한 주민이 임대아파트를 신청해 나가게 되자 압류가 들어와 보증금을 모두 잃게 된 것. 또 같은 해에 공권력을 투입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계고장이 나오자 주민들은 그때부터 투쟁에 들어갔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세 가지였다. 강제이주 인정, 점유권?주거권 보장, 토지변상금 철회. 애초에 정부가 살도록 한 곳인 만큼 이들의 거주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 강제이주 등에 대해 구청은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최근 들어 이곳 주소로 주민등록이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2009년 대법원은 주민들이 낸 법정소송에서 “30일 이상 거주목적으로 살았다면 주민등록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이들 앞으로 개포4동 1226번지라는 주소가 생겼고 집으로 우편물 하나 받을 수 있게 됐다.

화재 이후 주민들은 강남구에서 임시 거소로 마련한 구룡초등학교 강당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여자들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마을회관에서, 남자들은 마을회관 앞 천막에서 잠을 청한다. 정부를 향한 투쟁이고, 마을을 사수하려는 의지다. 조 위원장은 “우리가 공무원들한테 얼마나 당했으면 구룡초등학교를 못 가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시와 구청은 절호의 찬스를 얻은 거에요. 우리가 (학교로)가고 마을이 비어버리면 이 기회에 우리를 밀어버릴 겁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 13일 기자화견을 열고 “열악한 주거환경이 화재의 피해를 키웠다”며 그동안의 주거개선대책 요구를 무시해 온 서울시와 강남구에 화재 피해의 책임을 물었다. 또 포이동 266번지를 재난지역선포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라며 구청장의 즉각적인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신영희 강남구청장은 지난 14일 포이동을 방문했다. 구청장은 “구청 대책팀을 조만간 조성할 것”이라며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서울시와 합의해서 하겠다”며 대답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주민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서로 ‘담당업무가 아니다’ 혹은 ‘담당자 부재’ 등을 이유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조철순 위원장은 “지금 서울시나 구청은 명분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활근로대 증, 신상카드 등 증거자료를 다 제출 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주거권은 생활권과 함께 합니다. 자활근로대가 정착해서 하는 일이 넝마주이입니다. 나이 먹어서 취직도 못하고 갈 데도 없고, 다른 기술도 없고 배운 건 이것뿐입니다. 할머니들도 밤에 잠 안오면 나가서 파지 줍고 열심히 생활 합니다”라며 “임대아파트 들어가면 전기세만 못 내도 전기 끊고, 그러면서 누가 언제 죽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여기 살면서 서로 들여다보고 어우러져 삽니다. 우리 주민들을 갈라놓는 건 절대 안됩니다”고 말했다.

또 “이곳이 우리 삶의 터전이니 우리가 이곳에 직접 집을 지을 것이고, 공권력 투입하면 죽기 살기로 막을 겁니다.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예요. 철거를 하든 말든 끝까지 지을 것입니다”고 결의를 다졌다.

지난 17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도 주민들은 강남구청 앞에서 현 위치에 주거 복구와 토지변상금 철회 등을 주장하며 “물러나지 않을 싸움”을 계속했다. 한 주민은 “바로 이곳, 포이동 266번지에서 우리 포이동 식구들과 함께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바라는 전부입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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