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허창수-조남호 회장님, 뭐가 그렇게 두려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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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허창수-조남호 회장님, 뭐가 그렇게 두려우십니까”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1.06.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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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조남호’ 국회 청문회 불출석…입법권 위에 재벌총수, 그들이 불편한 이유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최신형 기자]

‘혹시나 했더니 결국 역시나’였다. 결국 그들은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어제(29일) 각각 예정돼 있었던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공청회와 환경노동위원회의 한진중공업 청문회에 불참했다.

‘허창수-조남호’ 회장에게는 입법권의 통제도, 문민적인 통제도 불가능했다. 허 회장과 조 회장 앞에서 보여준 국회의 무기력함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들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회장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재벌이다. 재벌들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재벌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용어이자 악의적인 규정이라며 경제를 정치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반박한다. 그들도 얼마나 정치적인지는 후에 살펴보기로 하고, 왜 국민들이 대기업을 재벌이라고 부르는지부터 잠깐 얘기해보자.

한국의 대기업은 독점적 기업형태에 의해 출현한 카르텔이나 콘체른과는 다른, 기업의 창업주나 상속자에 대한 기업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불과 3∼4%의 주식만을 보유하고도 삼성을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나.

게다가 그들은 문어발식 경영, 세습 체제, 정경유착을 통한 불법지배체제 등을 일삼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한국의 비정상적인 자본주의 구조를 만드는 데 일조한 대기업 총수를 ‘재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사이 허 회장과 조 회장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눈길을 끄는데, 아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또 불편함을 넘어 거북하다. 왜 국민들은 정당한 우리들의 몫을 그들에게 강탈당해야 하는가. 수탈과 착취를 일삼는 전형적인 인질경제의 한 단면을 볼 때마다 매우 불쾌하다.

재벌총수의 수장인 허 회장은 정치권의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을 놓고 ‘포퓰리즘’이라고 폄훼했다. 또 허 회장은 지난 24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회동에서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의 발언을 요약하면, “경제를 정치적으로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철칙으로 삼으며 툭하면 ‘경제를 정치로 재단하지 말라’고 말하는 재벌총수가 포퓰리즘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용어를 쓰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왼쪽)ⓒ뉴시스

원래 포퓰리즘은 지난 1890년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보수양당 체제에서 농민과 노조의 지지를 바탕으로 탄생한 인민당의 정책에서 시작됐다. 포퓰리즘이란 단어 안에는 대중영합주의라는 부정적인 뜻도 있겠지만, 반대로 소수집단의 결집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뜻도 있다. 도대체 이 나라의 경제수장들은 그 뜻을 알고나 말하는 것일까.

서민들은 연간 1000만원이 훌쩍 넘는 대학등록금에 울고 있다. 또 서민들은 물가고에 울고 있다. 그러나 성과금 잔치를 벌이는 재벌들은 사회적 책임을 나누는 대신 재벌감세 철회를 반대하고 나섰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국세청에서 발간한 <2006~2008 법인세 공제감면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산규모 5000억 원 초과 대기업의 공제감면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55.1%에서 2008년 58.4%로 매년 증가하는 반면, 자산규모 5000억 원 이하 기업의 공제감면액 비중은 44.9%에서 41.6%로 매년 하락했다.

뿐만 아니라 법인세율 추가 인하에 따른 감세효과의 2/3도 재벌 대기업 몫으로 나타났고, 이미 단행된 법인세 감세효과의 63%도 대기업에게 돌아갔다.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국가 채무에 따른 이자 지급액만 50조원에 육박한다는 게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나오지 않는가. 이쯤 되면 한국 재벌들이 추구하는 시장경제는 정글식 자본주의요, 무한경쟁으로 질주하는 폭주족이나 다름없다.

허 회장은 입법권의 보이콧을 통해 재벌왕족 시대를 꿈꾸며 한국 사회를 재벌공화국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야욕을 드러냈다. 또 최근 정치권에서 재벌들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며 재벌 흔들기를 하려하자 이를 사전에 차단하며 ‘재벌을 건들지 말라’는 시그널을 정치권에 보냈다. 입법-행정-사법권 위에 재벌총수가 있는 셈이다. 국민들이 천문학적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고도 고용창출을 외면하는 그들의 태도를 오만하게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재벌의 위선은 허 회장 뿐 만이 아니다. 조 회장이 출석하기로 예정돼 있던 29일 국회 환노위의 한진중공업 청문회는 조 회장과 환노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의 전원 불참으로 최종 무산됐다. 한나라당 7·4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당권후보들이 재벌 총수의 국회 청문회 출석을 요구하더니, 끝내 한나라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노사 간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월 6일부터 한진중공업의 대규모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왜 아직도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나. 경영상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사측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한진중공업 사태의 본질이 아니던가. 정부여당이 김 위원장을 외면하는 사이 한진중공업 측은 김 지도위원에게 전기, 물, 음식공급을 다 끊어버린 채 비인도적인 처우를 일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은 “최고경영자를 국회에서 부르는 것에 대해 신중히 하는 것이 좋지 않나”라며 오히려 재벌 감싸기에 나섰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12월 15일 생산직 인원의 1/3에 대해서 정리해고를 통보한 다음달, 170억 원이 넘는 주주배당을 실시했다. 결국 한진중공업이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한 다음, 이윤을 착취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는 셈이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이 외면하더라도 김 위원장과 12명의 노동자가 울부짖는 절규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한진중공업 사태는 그저 쓰다버리면 끝인 일회용품에 불과한 노동자들의 현 주소이기 때문이다. 국가도, 정치도, 언론도, 민중들의 삶 위에 있을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천부적인 권리인 인권보다 더 우선시 하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같은 평범한 진리도 투쟁과 연대 없이는 가질 수 없다는 게 역사적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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