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제외 여야4당 패스트트랙 처리 논의로
민주당 준연동형의 비례대표 75석 의견 모아
세부 이견 있어 본회의 통과될지는 두고 봐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캐나다 등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하고 있다. 2016 UN세계 행복보고서, 2915년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인식지수 등에 따르면 이들 나라는 국민 행복도는 높고 부패 지수는 낮은 나라로 꼽힌다. 독일과 뉴질랜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취하고 있다. 3월 본회의를 앞두고 우리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갈지 주목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신속법안처리)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엔 가능할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향한 야3당의 대장정을 되돌아본다.
"1987년 제6공화국이 출범됐지만, 지역주의 기반의 현행 소선거구제는 우리 정치와 경제의 발전을 번번이 가로막아왔다. 승자독식 양당제의 직접적 수혜자인 기득권 양당으로는 민생 정치의 실현이 어렵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민생이 정치다. 새해벽두인데 전국 각 도시에서 불 꺼진 가계가 굉장히 늘어나고 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민심 그대로의 선거제도가 이뤄져야 한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지난 한 해 야3당이 노력해온 이유는 의석수 때문이 아니다. 불과 1% 남짓한 신뢰도로 불신의 아이콘이 돼버린 국회를 바꾸지 않고서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강자들 사이에서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필수적 제도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정부가 촛불 혁명에 의해 탄생했지만 다양한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계층 간의 갈등 젠더 갈등 이념 갈등이 팽배한 상황이다. 이제는 사회적 소수의 이익이 반영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격차를 완화하는 정당체제를 이뤄야 할 때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여성 대표성, 청년 대표성은 물론 소수자 등의 국회 진입이 확대되며 정당 개혁, 공천 개혁을 추동해낼 수 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바른미래당 싱크탱크 바른미래원이 지난 1월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한 토론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하나같이 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원 의석수를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선거법을 개혁해 다당제 민주주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혼합형 비례대표제라고도 불리는 이 선거제도는 독일식정당명부제비례대표제나 뉴질랜드 방식을 모델로 하고 있다. 소수정당도 원내 진출이 용이한 공정한 의석배분, 다양한 민의가 수렴된 정책 입법화, 정책의 질 향상, 지역구도 완화 등의 이점이 있다.
현행처럼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게 1표를 던지는 ‘1인 2표’를 유지하되, 전체 의석을 정당투표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가 작년 11월 정책 간담회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300석의 국회의석이 있을 경우 A당이 10% 득표를 하면 A당은 300의석 중 10%의 30석을 배정받는다. 또 30석에 대한 지역구와 비례대표 배분 방식은 만약 A당 지역구 당선자가 20명이라면, 그 20명은 우선 국회의원이 되고, 모자라는 10석은 비례대표로 채우게 된다.
야3당은 그간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철에 사활을 걸어왔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도 가동했다. 녹색당, 비례민주주의연대 등 선거제도개혁 추진을 위한 정치개혁연대와 함께 서명운동, 릴레이 세미나, 대중문화행사 등 전방위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합의점을 도달하기는 어려웠다. 작년 6월부터 답보상태를 거듭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유불리에 따라 셈법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야3당 및 정치개혁공동연대 간담회 전언에 의하면 이렇다. 6·13지방선거 이후 자유한국당은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는 조건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요구했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대승을, 자유한국당은 영남 텃밭마저 여당에 뺏긴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겪었다. 한국당으로서는 위기였다. 보수가 분열됐고, 민심이 등 돌린 상황에서 1지역 1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경우 민주당에 승기를 넘겨줄 가능성은 더욱 크다는 관측이었다. 때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는 것으로 하되 지역을 묶어 1지역 2~4명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 쪽으로 가닥을 기울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포함된 현행 소선거구제에 목소리를 냈다. 야당일 때부터,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지만, 지방선거 승리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민생 경제 어려움 등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한국당은 다시 소선거구제로 입장을 선회했고, 민주당도 소극적 행보를 보이면서 결과적으로 고착 상태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열흘간 국회 본청 로텐더 홀에서 단식을 했다. 역대 최고령자의 단식이었다. 당원들은 릴레이 단식에 함께했고,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도 동참했다. 건물 밖에서는 민주평화당의 정동영 대표를 중심으로 천막 농성이 동시 진행됐다. 손 대표는 손다방 푸드트럭을 통해 전국을 순회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나갔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구제 개편을 촉구했다.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이를 계기로 작년 12월 15일 선거제도 합의에 서명할 수 있었다. 의원정수 10% 한도 내에서 증원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극 검토하되 선거제 개혁과 동시에 분권형 개헌논의에 착수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정개특위 활동도 6개월 연장했다. 모 아니면 도의 사즉생 각오로 임한 손 대표의 단식으로 일궈낸 성과였다는 분석이다.
1월 합의 처리는 무산됐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재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을 향해 가고 있다. 국회 정개특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11일 선거제 개혁 단일안 관련 의원정수 300명 중 비례대표를 75석으로 하는 걸로 잠정 합의했다. 이는 민주당이 제안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안을 야3당이 수용한 것이다. 앞서 야3당은 원래 360석을 목표로 하는 독일식 100% 연동형, 민주당은 현행 300석을 유지하되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으로 나눠 배분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패스트트랙은 정개특위 협상에 불참해 온 한국당에 대한 최후의 압박카드이기도 하다. 내년 총선을 통해 선거구제 개편이 반영되려면 늦어도 총선 일 년 전인 4월 15일까지는 국회에서 의결돼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3월 15일까지 선거구획정을 국회로 보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단일화안은 이번 주 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패스트트랙에 따른 법안 처리 기준이 최장 330일인 만큼 이달 15일까지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다. 이외에도 여야 4당은 공수처법, 국정원법,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법 등 민주당 요구의 법안들도 패스트트랙으로 함께 처리하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연동형과 공수처법 등 연계 처리에 반대하며 비례대표제 폐지와 의원정수 10% 감축안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또 여야4당이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것 관련 “의회 쿠데타”라고 규정하며 의원 총사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정개특위 회의결과 브리핑 자리에서 “공수처 설치 경우 한마디로 청와대가 직접 칼을 차겠다는 것”이라며 “결국은 의회 권력, 정치권력에 관해서 그들만의 이념을 위한 법안을 지금 선거제와 패스트트랙으로 빅딜 하겠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내각제에서 실시하는 제도”라며 “오직 두 개의 국가인 독일과 뉴질랜드만 채택한 제도다. 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통령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윗도리는 한복 입고 아랫도리는 양복 입는 거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대통령제라면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서 의원 정수를 10% 감축하자는 것이 저희의 안”이라며 “이것은 전 세계의 선진국들이 다 채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합의 직전 내놓은 한국당의 뒤늦은 제안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견해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1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한국당의 요지는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내각제, 분권형 등의 개헌 없이 연동형으로 가기 어렵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전후 설명 없이 돌연 새로운 안을 내세운 것은 단순히 제동을 걸기 위해 부랴부랴 대안을 내세운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무리수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김관영 원내대표실 관계자도 통화에서 “한국당의 제안은 여야 4당이 절대 받지 못하는 안을 던져 논점을 흐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가운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제 세부방식을 놓고 여야 4당간 이견이 만만치 않아 본회의 처리 가능성은 정작 어렵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 원내대표실 측은 이에 대해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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